전진삼의 건축탐정 AQ (인천 편)
“형태 분절을 통한 위압적 괴리감을 축소하고 수평적 요소의 사용으로 이용자와의 친근감 조성과 옥외시설물의 조형화로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예술회관 현상설계의 낙선작 가운데서 유난히 눈에 띄는 작품이 한 점 있었다. 다름 아닌 ‘태건축+신건축’의 공동 응모작이다. 당신 신건축 소속으로 디자인책임을 맡았던 신진 건축가 E는 당시 주목받는 건축평론가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한국현대건축의 태두로 불리는 김중업 선생의 후기 제자로 그의 상징이기도 한 굵은 콧수염의 마스크가 이국적(정확히는 이슬람권 중동아시아인의 수려한 인상)이어서 간혹 도로교통위반으로 교통경찰관과 대면해서는 얼렁뚱땅 위기를 모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무용담(?)으로 말한다.
(교통경찰관이 수신호로 차를 세운다. 그리고 운전석 옆으로 다가선다. 걸음걸이에 힘이 실렸다. 운전석 창문이 스르르 내려오고 E의 얼굴과 마주 대한다. 순간 교통경찰관, 눈살을 찌푸린다. 엄청 당황한 눈치가 역력하다.)
“에, 에, 음, 음. 웨라 유 프 롬?”
(운전석의 E, 아무 대답이 없다. 교통경찰관은 식은 땀줄기를 등허리로 쏟으며 머릿속으론 계속해서 짧으나마 영작을 하기에 바쁘다. 돌이켜보면 지금부터 20년 전의 상황인데 그래도 이 경찰관은 외국인 앞에서 영어 한 마디는 할 줄 아는 인텔리겐차 교통경찰관 임에 분명하다.)
“아메리칸?”
(E는 역시나 대답이 없다. 교통경찰관은 서너 차례의 언급으로 나라이름 지식이 바닥이 난다.)
“잉글리쉬? 프렌치?”
(평소 건축계에서도 유머 있는 입담으로 한 이름 하는 E였음에도 교통경찰관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 찍소리 않고, 운전석에 앉아서 눈을 흘기거나, 입을 삐죽대거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데요?”
(드디어 E가 입을 열었다. 순간 더더욱 당황해하며 뜨악한 표정으로 삿대질을 하는 교통경찰관)
“아니, 한국 사람이잖아! 당신 누구 가지고 노는 거야!”
“이봐, 교통아저씨, 언제 나에게 코리언이냐고 물어봤어? 왜 다짜고짜 영어야 영어는, 그리고 화는 왜 내시오?”
결국 딱지는 끊었지만 교통경찰관도 난처했던지 싼 거로 끊어주더란 얘기다.
아무튼 이 사람 E가 디자인한 예술회관은 당시 제출되었던 10여 작품 중에서 세 개의 다른 조형언어를 지닌 외관에 우리 전통건축의 수법으로 불리는 채 나눔의 설계 작법으로 배치함으로써 그전까지의 기념비적이며 권위주의적이던 문화회관의 전형을 깨는 발상을 앞세운 것이다. 그의 건축론은 이후 세간의 화제를 뿌리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집을 짓되 일부러 ‘불편하게 살기’를 권유하는 설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건축가 E의 독자한 생각은 아니었다. 바로 그의 스승 김중업 선생의 건축철학에 기반했던 것이다. 김중업 선생은 “일상생활의 어떤 기능과 동작과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쓰기 편한 집’을 설계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과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그의 역할”(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열화당, 1984)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한 주장을 담은 대표작 중 하나가 주한 프랑스대사관이며 채의 나눔과 서로 다른 매스와 불규칙한 건물배치가 특징을 이룬다.
그런 면에서 E의 제안은 다른 경쟁작들과 달리 세 개의 서로 다른 매스와 채의 나눔, 그리고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적인 제스춰의 배치수법 등에서 스승의 행로를 꼭 빼닮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외부공간은 중앙공원의 녹지축을 존중하며, 건물과 건물의 사이공간과 조경 오브제 등으로 어우러지는 건축적 산책로가 잘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까지는 여전히 이 같은 반골 기질이 통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E의 응모작은 입상조차 못했지만 현상설계 이후 E는 서울사무소의 짐을 싸들고 친구가 운영하는 인천의 설계사무실에서 동업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인천의 지방건축가를 자처하게 된다.(계속)
나오는 사람
E(실명: 이일훈)=1978년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실무를 익히던 초창기엔 건축평론을 병행했다. ‘채 나눔’이라는 건축설계방법론으로 많이 알려졌다. ‘탄현재’ ‘궁리채’ ‘가가불이’ 등은 채 나눔 방법론으로 구현된 작은 집들이다. 천주교 ‘자비의 침묵 수도원’ ‘하늘 담은 성당’과 불교 ‘도피안사 향적당’ 등의 종교건축을 빗기도 했다. 그를 만나는 건축주들은 일단 인간 이일훈의 면모에 쉽사리 빠져든다. 그리고 지적 충일함의 존재와 분방한 상상력의 보고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건축 스튜디오 ‘후리’를 운영하고 있다. 1953년생
[인천신문, 제357호, 2007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