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한국전통공원, 재현의 危害

전진삼의 건축탐정 AQ (인천 편)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제 기댈 데라고는 지역 문화계 원로들의 움직임뿐이다. 그러나 아직 그분들이 시장 면담을 신청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금양, 무얼 그리 깊게 생각해?”

 

봄에는 봄 같지 않게 봄을 보내었는데 가을이 되니 가을을 느낄 겨를 없이 가을이 지나가버렸다. 거리엔 밤새 내린 진눈깨비의 눈발에 낙엽들이 뒤엉켜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 풍성했던 가을단풍의 아름다움이 다시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세상의 가치들도 매양 같은 운명이다. 미추는 반복되는 것이지 고착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풀어졌다.

 

“언제 왔어?”

“요 앞에서 점심약속이 있었지. 밖에 나가서 차나 한잔 하는 것이 어때?”

 

바깥바람은 제법 매웠다. P교수는 분위기 있는 찻집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대뜸 차에 오르라고 주문하고는 내처 몰기 시작했다. 파라다이스 호텔이 저 멀리 눈에 들어왔다. 옛날 그 언저리에 인천해관이 있었고, 영국영사관 터였기도 한. 그리로 가나보다 싶었다. 그러나 차는 그곳에 멈추지 않았다. 대학에서 조경을 강의하고 있는 그가 택한 행선지는 월미공원에 조성된 한국전통공원이었다.

 

“하하, 취미도 참 고상타. 누가 조경학 박사 아니랄까봐 쉴 때조차 정원을 찾누.”

 

이 한국전통공원이 어떤 곳이던가? 인천시가 178억 원을 들여 5만㎡의 대지에 관광단지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한국전통건축과 궁궐정원 및 별서정원 등을 통 크게 재현한 곳 아니던가? 재현의 이름으로 짝퉁을 만들어낸 것이다. 놀이동산의 기치로. 주중이긴 했지만 원내에서 구경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외부 공영주차장에 수십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산행을 즐기고 있는 터였다.

 

 

수년 전, 서부공원사업소가 이곳에 위치했을 때에 공원자문회의에서 말 같지 않은 계획이라고 반대했던 그 때의 계획안이 보란 듯이 실현되어 있었다. 사실이지 준공되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은 바 있었으나 일부러 들여다보지를 않고 있었다. 그냥 싫었다면 이유가 될까? 어쨌거나 P교수 바람에 그 현장에 서있게 된 것이다. 이제 몇 년 뒤엔 자유공원으로부터 바로 이곳까지 모노레일이 닿는다고 하니 모든 것이 관료들의 생각대로 되어갈 참이다.

 

“금양, 여기 오자고 한 건 말이야. 전통건축과 옛 정원을 재현해보겠다는 지방 관료들의 무지와 주먹구구식 행정의 단면을 함께 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전통공원 부지 내에는 창덕궁 후원의 애련지, 부용지 등과 경복궁 교태전 뒤의 아미산 굴뚝및 안동 하회마을의 고택 양진당, 담양의 소쇄원 그리고 일반 초가집 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각각의 재현물 앞에는 재현대상의 해설판이 사진을 곁들여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재현대상의 안내판 역할을 하는 해설판의 사진에 원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전통건축과 원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양진당도, 소쇄원도 해설판에 활용된 사진은 공원현장의 모습을 찍은 것이었다. 원래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재현된 것과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획의 친절함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재현의지의 진의가 의심스러웠다.

 

그보다 더한 것은 양진당의 방방이며 초가집 방바닥에 깔려 있던 비닐장판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안으로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은 곳곳에 붙여놓았다. 시민의 혈세로 비싼 돈 들여 만들어놓았다는 이곳에서 최근 지역의 모 일간지 주최로 어린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과 그림 백일장이 개최되었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익혔을까? 사소한 것 하나부터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행정가들의 직무태만이 짝퉁의 위해로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건가?

 

반대여론이 있든 말든 일단은 짓고 보자는 식의 업적지향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이 도시의 진정성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어설픈 복원, 똑같지 않아도 된다는 얄팍한 전략의 재현 등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자유공원의 정상이 저 멀리 눈에 들어왔다. 끝내 존스톤 별장을 짓겠다고 발 벗고 나선 몽매한 행정가를 붙잡아줄 마지막 보루는 지역 문화계 원로들이 시장과 담판을 벌이는 것이리라.(계속)

 

나오는 사람

P(실명_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조경설계/미학/비평을 전공하여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펜실바니아대학교에서 포스트-닥터 연구를 수행했다. 조경비평과 이론, 현대 조경설계, 환경미학을 넘나드는 다수의 논문과 비평을 발표해왔다. 저서에 <현대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등이 있다. 단국대 조경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천신문, 제404호, 2007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