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삼의 건축탐정 AQ (인천 편)
“왜 보자고 한 거야?”
손 교수는 다짜고짜 자기를 불러낸 이유부터 물었다.
“기껏 이거 확인하자고 하는 건 아닐 테고.”
이거라니! 멀쩡한 지하 원형광장을 수익사업 한답시고 임대점포로 쑥밭을 만들어놓은 인천도시철도공사의 횡포로 인해 속에선 분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당장은 거기에 매달려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예술회관역 지하 광장 한 켠의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은 근대건축 공부하는 친구 덕 좀 봐야겠다. 엣다, 이것 좀 봐줘.”
“뭔데 그래?”
손 교수는 안경을 들어 올리고는 내가 내민 복사자료를 바작 끌어다 훑기 시작한다. 나이 탓이란다.
<이승만 정부는 1953년 12월 23일 부산에서 본대와 7개 지구대(부산, 인천, 목포, 군산, 포항, 묵호, 제주)를 내무부 치안국내에 설치하고, 해군에서 181톤 경비정 6척을 인수하여 시 도 경찰국에서 차출한 경찰관 60명 그리고 해군 예비역장병 79명 등 658명으로 ‘해양경찰대’를 발족하였다. 1955년 2월 7일 해사행정을 통괄할 해무청이 발족되면서 내무부 산하에 있던 해양경찰대는 상공부 해무청 소속으로 이관되고 ‘해양경비대’로 개칭하게 된다.>
“이게 뭐야?”
웬 뚱딴지같은 자료냐며 손 교수는 특유의 빙긋거리는 표정을 지어댄다.
“거기 해무청 말이야. 1957년에 설계됐다는 인천 해무청사를 찾아야겠어.”
“그건 또 왜?”
“이 자료도 한번 읽어 봐.”
<인천 해무청 계획안(1957)과 명보극장(1956)도 앞서 언급한 필 그림 홀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인천 해무청사의 경우 계획안과 실제로 지어진 건물이 완전히 다른데, 김중업이 전시회를 통해 주로 선보인 것은 계획안이었다. 아마도 계획안이 발전되는 과정에서 초기 의도들이 상당 부분 변형된 듯한데, 김중업이 실제로 지어지기를 기대한 것은 초기의 계획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3층 규모의 소규모 오피스 건물인데, 그 기본 개념은 필로티 위에 얹힌 박스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조형 개념을 그대로 구사하였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부가된 입면요소들은 1950년대의 건물, 특히 샹디갈 건물의 모티브를 모방하였다. 김중업은 건물 전면에 샹디갈 행정청사의 장관 블럭에서 나타나는 조형적 모티브를 약간 변형하여 가져다 놓았다. 이미 지적했듯이 그는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룬 적이 있었다. 이 건물 외에도 샹디갈의 행정 청사에서 사용된 모티브가 중앙 공업 연구소(1959)의 계단실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샹디갈의 원래 건물에서 이들 모티브들은 다른 건축 요소들과의 맥락 속에서 구사되면서 그 탁월한 조형적 의미를 획득했지만, 여기서는 그 원래의 맥락은 다 제거되고 오직 이 모티브만이 입면의 지배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조형물 뒤에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처리했는데, 멀리온의 분할은 르 코르뷔지에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정인하, 『김중업건축론: 시적 울림의 세계』66쪽, 시공문화사, 2003)
“어라? 김중업 선생의 초기 작품이 인천에 지어졌다는 거 아냐? 이거 의왼데?”
김중업은 1952년 10월 25일부터 1955년 12월 25일까지 프랑스 파리의 르 꼬르뷔제 사무소에 머물면서 현대건축사에 큰 궤적을 남기는 건축물들의 설계과정을 경험한다. 그때까지의 한국에 이식된 근대건축의 태반이 일본을 통한 것이었던 반면 김중업의 코르뷔지에 사사는 서구건축이 한국인 건축가에 의해 직수입되는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 한국근현대건축사 기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당시 김중업이 수행한 프로젝트는 인도 샹디갈의 행정청사, 샹디갈 고등법원의 타피스리, 샹디갈 주의사당, 샹디갈 주지사관저, 빌라 쇼단 등이었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옥상정원, 필로티, 건축적 산책로, 기하학적 비례체계, 건축과 자연과의 조화, 모듈러 등의 강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비록 르 코르뷔지에 건축의 모방에 그쳤을지언정 인천에 김중업이 설계한 해무청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현존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어 손 교수를 불러낸 참이었다.(계속)
나오는 사람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년 스위스 출생. 프랑스에서 활동한 건축가며 작가이자 도시계획가로 알려져 있다. 현대세계건축의 1세대 거장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빌라 사보아, 롱샹 성당, 유니테 다비따시옹 등 위대한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건축을 향하여』, 『도시계획』, 『모듈러』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1920년대 후반 ‘근대건축 5원칙’을 주창하며 모더니즘 건축의 전위에 섰던 그는 1965년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생전에 자신이 디자인해 두었던 묘지에 묻혔다.
[인천신문, 제394호, 2007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