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예술회관역 지하 원형광장 임대점포 유감

전진삼의 건축탐정 AQ (인천 편)

 

 

 

8년 전 10월 6일, 인천 지하철 1호선의 박촌과 동막 구간이 개통되던 날, 금양은 공짜 탑승을 즐기던 시민들의 싱글벙글 거리던 모습을 떠올린다. 서울지하철의 대형 전동차만 보아왔던 시민들은 폭 2.75m의 좁은 내부공간을 지닌 중형 전동차가 익숙지 않았던 탓에 바로 코를 맞대고 앉은 듯한 반대편 승객의 눈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애꿎게 전동차량의 천정만 바라보다가 그만 밀려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던 그날의 생경스러움도 떠올랐다.

 

1호선 구간 안에 살던 시민들은 가족 단위로 웅성대며 거주지 인근의 몇 정거장을 다녀오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지하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변지역의 시민들조차 일부러 지하철 개통을 즐길 양 자가용을 길거리에 주차시켜놓고 무임승차에 동참하는가 하면, 극성스런 가족들은 소란스럽게 몇 번이나 종점을 오가기도 했던 그날의 풍경은 전 구간에 걸쳐 지하철 역사와 전동차 안에서 마치 가족소풍을 떠나온 시민들의 잔칫날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손에는 한결같이 먹을 것이 쥐어져 있었고, 행장을 차리고 나선 부모들의 마음은 애들 못지않게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인천시청역 메인 홀이 제일 멋지고, 부평역은 멀대 같이 공간만 크고 친근감이 없으며, 인천터미널역은 신세계백화점과 직접 연결되어 좋다며 마치 자기집안일처럼 신나하던 시민들의 모습은 서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대중교통환경이 부분적이나마 확충되었다는 포만감에 들뜬 반응이었고 비로소 대도시의 문명적 삶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일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술회관역 개찰구를 빠져나온 금양은 <CGV 인천>을 향하여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좌우로 지하상가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은 지하역사의 통로에 임대점포가 하나둘 들어선 것을 무심히 보아왔던 터라 그것이 경직된 지하역사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효과가 있구나 하는 정도 이상을 생각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해서도 그렇겠지만 전혀 예상치 않았던 상점건축의 큰 볼륨이 지하 원형광장을 꽉 차게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평소 지상에서 내려오는 계단실이 닿는 지하광장의 볼륨이 시원하다 못해 썰렁하다할 만큼 크게 비워져있는 것이 때로 의문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거꾸로 시원한 지하광장이 사라지고 시야를 가리는 대형 점포의 입면이 눈엣가시처럼 들어온 것이다. 금양이 얼떨떨해하며 서 있는 동안 시민들은 예의 상점을 끼고 종종걸음으로 계단실로 빠져나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때였는데 겉으로 보아도 지하의 대형 점포를 찾는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수정궁과 같은 외관을 보여주는 이곳은 인천지하철공사가 재정자립을 위하여 벌이고 있는 임대점포사업의 일환으로 주요 지하철 역사의 통로와 오픈스페이스 등 열린 공간의 경제적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 뿐 아니라 다수의 승객의 동선이 겹쳐지는 주요 지하역사의 메인 홀과 통로 주변이 급속하게 임대점포로 뒤바뀌고 있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지하철의 가장 많은 통행량을 자랑하는 부평역의 지하 홀은 이미 상당면적이 점포로 탈바꿈한 상태고, 최근에는 인천터미널역도 점포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 터다. 시민의 만족을 우선하겠다는 인천지하철공사의 강령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자립경영에 대한 내부 소원과 외부에서의 압력이 결국은 지하역사 내 오픈스페이스의 임대점포사업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게 수긍을 하면서도 금양은 예술회관역 북측 지하 원형광장의 대형 임대점포는 많이 아쉽다는 생각을 가졌다. 임대점포사업의 수익모형을 잘 따져보고 수행한 사업이 결과적으로 파리를 날리고 있는 형편이라면 기왕 저질러놓은 임대공간의 콘텐츠를 다른 용도로 전환시켜봄은 어땠을까? 예를 들면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의 메트로 미술관 또는 4호선 혜화역 전시공간, 5호선 광화문역의 광화문갤러리와 광화랑처럼 작은 규모의 전시장을 배치하는 방안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나마 교통편 좋고, 복합영화관 <CGV 인천>을 찾는 젊은 층의 이용객수도 많을뿐더러 주변에 크고 작은 오피스의 상주인구가 많아 점심시간 등을 이용하여 문화생활을 향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미술공간으로 맞춤이어서 임대수입도 쏠쏠 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금양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바로 옆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눈살을 찌푸리시더니 “젊은 것이…” 혀를 차시는 듯했다. 때맞춰 나타난 SJW가 “무슨 일 났냐?” 며 머쓱해있는 금양을 불러 세운다.(계속)

 

 

나오는  사람

SJW(실명_손장원): 재능대 인테리어디자인과 교수, 1962년생. 『다시 쓰는 인천근대건축』(2006)을 저술했다. 공학박사. (사)해반문화사랑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이다. 지역의 동료 건축인들과 함께 인천건축재단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신문, 제384호, 2007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