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소수 건축의 별, 기찻길 옆 공부방

전진삼의 건축탐정 AQ (인천 편)

 

 

 

건축가 E가 인천에 설계하여 지은 <기찻길 옆 공부방>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좌중에는 인천시 역사자료관이 매월 개최하는 월례 포럼에 참석차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과 문화재 해설사 등 인천에 관한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 이십 여 시민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었다. 여간 잘 하는 강의가 아니고서는 저분들의 지식욕을 채워드릴 수 없을 텐데…

 

“금양, 평소 해오던 것처럼 하세요. 주제는 뭐든 좋아요.”

역사자료관 강덕우 박사의 꾐에 빠져 엉겁결에 대답했던 것이 한 달이나 전의 일이었다.

 

“근데, 들어오다가 보니까 오늘 강의 제목이 ‘인천의 근대건축’ 관련한 내용이던데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강 박사는 흘려듣고 있었다.

 

“미국의 루럴스튜디오(rural studio) 얘기를 준비해왔는데, 괜찮을까요? 가난한 주민들을 위하여 행복한 집짓기를 해온 대학집단의 얘긴데.”

“그거 참 좋네요.”

 

그렇게 해서 시작한 강의의 끝은 개발지상주의를 앞세운 인천시의 도시현안에 가려서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고 지나고 있는 소수 건축(minor architecture)의 현장을 전하는 것으로 준비하였던 것이다.

 

동구 만석동 9번지 일대, 도시의 슬럼지구를 지키고 있는 이름 없는 공부방에 대한 얘기를 이미지와 함께 들려드리자 장내의 분위기는 이상기류에 휩싸인 듯 숙연해져 있었다. 앞서 강의한 미국 앨라배마주의 루럴스튜디오는 가난한 흑인들을 위하여 대학교수 사무엘 막비가 학생들과 함께 슬럼에 뛰어들어 건축설계로부터 재료의 구입 및 시공 전반에 걸쳐 자원봉사를 결심한 학생들을 동원하여 새로이 집을 지어주는 따뜻한 얘기를 담고 있었다. 그런 내용의 연장선상에 우리가 사는 인천의 한 구석에서 건축과 사회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건축행위가 있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포럼참석자 대부분은 가벼운 전율을 느끼고 있는 눈치였다.

 

<기찻길 옆 공부방>은 30여 평 대지에 3층 규모로 지은 건물로 3개 층의 전체 바닥면적이 50여 평도 안 되는 작은 집이다. 건물의 주요 외장재는 스프릿 블럭과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하여 회색빛 짙은 외관을 갖고 있다. 이 집의 주기능은 동네 어린이들을 위한 공부방이다. 오늘날 대도시의 재개발사업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달동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에서 동네 아이들을 위한 소박한 집짓기를 꾀한 집주인은 대부분 도시의 일상공간을 뒤덮고 있는 정체불명의 설계와 집장사식의 집짓기를 거부하고 서울에서 활동하는 E를 만나 설계를 의뢰한 것이다.

 

예산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고, 주변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자를 유명 건축가에게서 찾고자 했던 건축주의 발품은 기어코 E의 수락을 받아내었고, 건축가 E는 건축가 이전에 건축의 진정성을 구현하기 위한 숨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한때나마 인천에서의 지역건축가로 역할을 모색했던 E였기에 대망의 끝을 보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짐을 싸들고 올라온 것에 대한 막연한 보상심리도 작용했던 듯하다.

 

건축가들의 어설픈 건축논리에 대하여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쓴 소리를 해댐으로써 독설가로 유명한 건축비평가 LJK는 <기찻길 옆 공부방>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밑바닥 삶의 조건과 건축이라는 고급행위의 결합은 이미 쉽게 예기할 수 없는 난제를 발생시킨다. 엄격히 말해서 <기찻길 옆 공부방>에는 ‘건축적으로’ 새롭거나 고양되어 있는 물질적 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 빈민가의 집을 작품으로 생각하는 E, 그는 건축의 이단자다. E의 건축을 보면 건축이 모호해진다. 혹은 건축을 생각하면 E의 건축이 모호해진다.”_월간 <건축인 POAR>, 20007월호

 

2001년 3월 <기찻길 옆 공부방>은 제4회 크리악어워드(Cri-Arc Award, 2000 올해의 비평건축상)을 수상한다. 그 후 이 작은 집은 건축계 전체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건축과 사회를 향한 의식의 단서를 제공한 것에 대한 찬사와 소수 건축의 존재에 대한 눈을 뜨게 한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천시민들에게 이 집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니, 건축주는 이 집이 구경의 대상이 되는 것을 꺼려한다고 들었다. 자칫 무분별한 집 구경꾼들이 동네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하는 마음에서다. 그런저런 이유로 소수 건축의 별은 오늘도 저 홀로 떠올라서는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 동네의 밤을 밝히고 있다.(계속)

 

 

나오는 사람

LJK(실명_이종건): 건축비평가,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1955년 부산 출생, 부산대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마치고 1987년 달랑 1백만원만 들고 도미, 오클라호마대학교 건축대학에서 석사, 조지아공과대학교 건축대학에서 역사․이론․비평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해방의 건축』(1998),『해체주의 건축의 해체』(1999), 비평집으로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2001), 『텅빈충만』(2004)가 있다.

 

[인천신문 제364호, 2007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