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인천 중구청(장)이 중심이 되어 관내 우현로 39번길을 개항 각국거리로 조성한다며 지난 7월 16일 대대적인 착공식을 가졌다. 총사업비 11억5천만 원. 관련 소식을 SNS로 처음 접하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벌건 대낮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며칠 뒤 찾아간 현장에는 공사내용과 공사기간(7월 14일∼9월 22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한 쪽 줄이 풀린 채 바람을 맞고 있었다. 해가 길어진 여름의 한복판, 초저녁 시간이었는데 거리는 한산했다.
오래 전에 중구청 앞길을 일본풍 가로로 조성해놓고 당당했던 저들로 인해 참으로 분통터지는 경험을 했던 터라 이번엔 어처구니없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관광을 테마로 지역 상권을 살리고, 원도심의 회복을 통한 주민통합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한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건 아주 흉포한 계략에 지나지 않는다.
시나리오 역(逆)구성
한마디로 가로 경관을 각국 건물의 외관으로 위장해놓겠다는 발상인데 참 어이없다. 생뚱맞게 족보도 알 수 없는 파사드로 기존 가로의 모습을 성형 수술하겠다는 것이니만큼 모든 게 진정성 없는 코미디다. 어떻게 저와 같은 발상이 가능했을까? 한번 저들의 입장에서 따져 물어보자. 도대체가 어떤 머리, 어떤 씸(심)통이었기에 이 같이 해괴한 일이 백주에 벌어지고 있는가.
첫째, 외지인이 찾아오는 관광명소, 천박할수록 좋다.
디즈니랜드, 롯데월드, 서울랜드 등등에 샘플이 즐비하다. 멀리서 찾을 것 없다. 관내 송월동 동화마을을 보아라. 얼마나 많은 외지의 시선이 궁금증을 달래러 벽촌을 찾아오지 않았나! 관광객들은 숭고함보다 천박함 앞에서 쉽게 호주머니를 연다. 길을 보았다. 길을 찾은 것이다. 오, 마이 갓! 신의 한수가 아닌가! 예전엔 왜 몰랐을까! 반대하는 놈들은 단지 그 당시만 시끄럽게 굴 뿐이다. 무시하면 그만이다. 대통령도 국회 청문회 결과를 무시하는 판에 우리가 하는 일은 명분이라도 있지 않나?
둘째, 전문가는 시간 까먹고, 돈 까먹는 봉이다.
원형 복원? 건축유산? 시간 죽이고, 돈 버리고, 이득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큰 돈 들이지 말고 도시를 재생시키자. 전문가 자문? 시비나 안 걸면 다행이지 그들과는 담을 쌓아라. 자문회의? 하더라도 형식만 갖추면 되는 거야. 공공디자인팀 들어오라고 그래. 너희들이 직접 그려봐. 실시설계는 적당히 돈 집어주고, 지역 업체 등 떠밀 듯 맡기면 그만 아닌가! 오, 그래. 그거야. 도시재생이 별거냐. 그림 한번 멋지다. 근사해. 극장 간판처럼 보이면 어때. 그게 신기해서 모여들 텐데. 일단 우리 배가 부르면 저 떠버리들 입도 틀어막을 수 있지. 쟤들이 언제 우리에게 돈 퍼다 나른 적 있남?
셋째, 연구용역의 결과물이란 허세를!
명색이 구청장이 앞장 서는 일인데 요식은 갖춰야지. 연구용역이란 이름으로 적당히 업체 골라서 맡겨. 혹시라도 상황이 나빠지면 책임 전가할 수도 있고, 너희들이 그린 그림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말이지 중요한건 일이 되게 하는 거야. 용역 수행의 끝이 첫 삽 뜨는 날이 되어야해. 그러나 조용하게 추진해. 더듬이 들이대는 귀찮은 놈들이 많을 테니. 마침 전임 송 시장이 우현로 35번 길에 러시아특화거리를 조성하겠다고 다리를 놓았잖아. 기회는 딱 지금이야. 숨 고를 시간도 사치야.
넷째, 콘텐트보다 표정이다.
머리 믿고 까부는 놈들은 절대 사절! 일단 만들어놓고 보면 그 안에서 먹고사는 건 다른 문제야. 두고 보라고, 일단 만들어만 놓으면 지갑 풀려고 나선 인간들이 그 건물 안으로 줄지어 걸어 들어갈 테니. 반대하는 주민들? 중이 절 싫으면 제 발로 걸어 나갈 테지. 걱정은 금물. 콘텐트?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특징 있는 가로풍경에 적당히 맞춤한 업종들을 배치하면 되지. 그러니 건물의 표정관리가 무지 중요해. 싼티 나도 좋아, 천박하다 소리 들어도 괜찮아, 점잖 떠는 현대식 건물 치고 돈벌이 제대로 되는 거 봤어. 게다가 여기가 어디야, 중구야 중구! 원도심! 구도심! 짝퉁이면 어떻고, 가면이면 어때? 일단 표정에서 이야기 거리만 있으면 족하지.
다섯째, 소뿔도 단숨에 뽑아야 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늘이 도우신 게 분명해. 보란 듯이 구청장에 다시 뽑히지 않았던가. 이럴 때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의지를 받드는 것뿐이야. 너희가 주군을 모시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하늘엔 하나의 태양이 있을 뿐, 오직 나만을 바라보라고. 지금 이 순간에 줄을 잘못 서면 너희에게 더 이상의 내일은 없어! 어서 서두르게 서둘러.
여섯째, 언론은 철새야, 두려워할 필요 없어.
언론사? 우리가 적당히 모이를 주면 돼. 때를 잘 맞춰야겠지. 힘들게 굴면 어르고 구슬러. 티나겐 굴지마, 폭력을 휘둘러선 안 돼! 사방에서 놈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걸 알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지. 시시때때 접대나 잘 해. 안 먹겠다면 말로나마 잘 때워, 먹든 안쳐먹든 중요한 게 아니지. 우리가 줄곧 관심을 표하고 있다는 것만 상기시키면 되거든. 돈도 절약하고 생색은 내고 이 또한 일거양득의 전술 아닌가.
일곱째, 노인네건 어린애건 똘(돌)아이들은 귀찮은 존재!
그렇지. 지역 내 좌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전통적으로 인천이, 중구가, 동구가 똘아이들의 천국 아니던가! 그러니 놈들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지. 가두시위니, 기자회견이니, 시민토론회니, 심포지엄이니, 공청회니 들고 나올 테니 만반의 대비를 하라고. 논리로 대응해서는 밀릴 것이 빤 하니 엉거주춤 모드로 맞서야 해. 피켓 들고 시위하면 그러라고 해. 확성기 들고 나발대면 귀 막고 일해. 우리 뒤엔 표심이 있거든. 우리가 나가서 몸싸움 할 일 없네. 주민들이 나서게 조종하는 거야. 본거지 주민들의 살아보겠단 의지가 바깥 놈들의 생때만 못할까 보냐. 그래도 힘들게 돌아간다면? 나만 믿으라고. 내가 누군가! 똘아이 기질 하면 나만한 인간 어디서 다시 보랴!
여덟째, 지역 오피니언리더는 껍데기다.
지역의 리더들은 많아. 정작 리더십이 문제야. 지난 날 중구가, 중구 주민이 피해를 입은 건 리더십 부재에서 기인했던 거야. 맞아, 중구 주민들이 구청장 제대로 뽑은 거야. 내가 아니면 누가 중구를 재건할 수 있겠어! 오피니언리더? X까라고 그래. 걔들은 껍데기야. 껍데기는 가라! 중구청장 납신다. 중구주민 납신다.
아홉째, 고양이에게 생선을!
중국관광객들은 뒤집어질 거야, 짝퉁을 찬미하는 나라 인민들이니까. 일본관광객들, 조계지 고양이 동상에 뿅 갔다지 아마. 아, 중구의 부흥은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역사성, 진정성이 밥 먹여 주나. 역사 어쩌구, 진정성 어쩌구 내세우는 순간 우리 모두 고물이 되어버리는 거야.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게 되지. 역사는 상품화해야 해. 다다익선! 그게 우리 것이 아니어도 좋아. 가짜면 어때. 무슨 상관이야. 사람동네에 시시비비는 늘상 따라 다니는 거야. 모두가 뒷짐 지고 있음 그게 더 이상하지. 가방 끈 긴 놈들이 짓거리는 헛소리에 불과해. 놈들은 배가 부르거든. 현재의 가로 풍경이 얼마나 천박한 줄을 놈들은 간과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손을 들어 줄 거야. 그걸 믿어 보자고.
이런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지역주민의 생계를 걱정하는 양하며 신도심의 칼바람에 맥없이 쓰러져 자칭 불구가 되었다고 앙심을 품게 된, 전형적인 원도심 쇠락 핑계형 전략의 배경과 관광명소(장터) 개발만이 살길이란 구상은. 어떠한 변명과 주장이 따른다손 쳐도 정당성으로 위장한 인천 원도심의 빗나간 가로 조성사업이 가져올 파장은 생각 이상으로 상처가 깊고, 천박한 도시의 오명(汚名)은 오래 갈 것이다. 나는 무슨 근거로 이렇게 단정 짓는가?
갈지자 행보, 중구의 문제들
첫째, 공공디자인에 대한 오해
언제부턴가 동네방네 벽화 그리기가 전국적으로 공공디자인의 대세로 행세하고 있다.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은 최근의 사례다. 동화마을을 보겠다고 전국 각처에서 찾아오는 외지인이 많아져 동네가 살아나고 지역경제에도 탄력이 기대된다는 행정가들의 주장은 노이지(noise) 마케팅의 전형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는 자세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는 일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진 몰라도 노출 빈도가 많아질수록 지역의 정체성과 무관한 장소 만들기로 인한 최소한의 신뢰구조마저 깨져 이 동네에 대한 불신이 커지게 되고 궁극엔 내용을 알고서는 일부러 찾지 않는 것은 물론 그로인해 지역공동체마저 위기에 봉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벽화그리기가 온통 나쁜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동네의 생활상과 문화, 역사성을 근간으로 국내외의 시각예술을 다루는 전업 작가들에 의해 조성된 수원 행궁동 벽화마을은 백미 중 백미다. 동네의 스토리텔링이 벽화로 표현된 사례로서 지역을 기반으로 생활문화 예술 활동을 해오고 있는 민간단체 대안공간의 눈의 수고가 골목길 벽화에 고스란히 묻어 있는 현장이다. 공공디자인의 출발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 사는 사람들의 관계가 어우러질 때라야 만이 설득력을 갖춘다.
둘째, 관광산업에도 철학적 배경이 필요
김OO 중구청장이 중구 구민들에게 관광산업만이 살길이라고 펴는 주장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목표는 선명해 보이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작금의 개항 각국거리 조성사업은 관광산업에도 철학이 개입되어야 함을 적시케 하는 사태에 다름 아니다.
관광산업은 억지춘향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역의 특화된 테마가 판을 벌리면, 거기에 예술과 문화가 접목이 되고, 지역주민의 참여가 일상화 되고, 그 다음 행정의 지원과 전문 기획자들이 개입하면서 하나의 문화산업, 관광산업으로 발전하는 모형이 합리적이다. 달리 말하면 금번 우현로 39번길 개항 각국거리 조성사업의 경우 이 가로의 특이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층 연구 없이, 개항 각국거리로 조성하면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밀려올 거라는 얄팍한 발상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불과할 뿐 도시의 백년대계를 고민하고 역사의 깊이를 장려해야 할 기초자치단체장이 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새로운 가로 경관을 구축하려드는 행정(가)의 마인드가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철학적으로 빈곤함이 어떻게 도시를 망치는 가를 후세들은 뼈아픈 교훈으로 목격하게 될 것이다.
셋째,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중구 관내에는 역사적 건축물과 거리로 관광 명소화 된 장소들이 무척 많다. 국가지정문화재 인천답동성당을 필두로 시지정문화재인 (구)인천일본제1은행, 인천우체국, (구)제물포구락부, (구)인천일본18은행지점, (구)일본58은행 인천지점, 용궁사, 홍예문, 내동 성공회성당, 용동우물, 조병수가옥 등 17개소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선린동 공화춘, (구)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구)인천부청사, 제물포고 강당 등이 있고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근대건축물 탐방로, 월미도, 신포문화거리로 인해 가히 근대기 개항도시 인천의 중심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게다가 오래된 창고를 개조하여 조성한 인천아트플랫폼, 인천근대문학관과 카페 팟알, 제물진두 순교기념관 등 공적, 사적 건축물들이 최근 10년 사이에 새롭게 등장하면서 인천을 향한 외부의 시선은 근대기 이 땅의 역사를 표상하는 건축물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도시로 주목하고 있다. 더욱이 인천문화재단이 이 동네에 거점을 두게 되면서 국내외 예술인들이 접촉, 교류하는 주무대가 됨은 물론 그동안 이 지역을 소외했던 다수의 문화예술인과 활동가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문화의 풍향계가 활발히 작동하며 동네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등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관광을 위한 조악한 프로그램의 구상에 앞서 문화예술의 개입으로 이 동네가 지금, 뜨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한다.
이 같은 내용을 줄곧 현장에서 지켜본 4선의 구청장이 모를 리 만무한데 개항 각국거리 조성사업과 같은 위장막의 가로 경관 조성이라는 자충수를 두는 것은 알도가도 모를 일이다.
넷째, 자동차 없는 거리가 우선
우현로 39번길의 가로 경관은, 꼭 그 가로만의 문제는 아니고 그 일대 가로 전반의 문제임에 분명해 보이는데, 실로 겉보기에도 노후화의 진행속도는 물론이려니와 저급한 수준의 파사드, 무분별한 입간판의 난립, 가로 스카이라인의 파괴 등등으로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터라 정신이 제대로 박힌 계획가 혹은 디자이너라면 누구든 어렵지 않게 수술을 권할 수밖에 없는 상태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이 기폭제가 되었겠고, 어차피 집수리 차원에서 건물의 표정 관리를 해야 했을 마당에 인천시(러시아 특화거리 제안)와 중구청(개항 각국거리 조성사업)이 앞장서서 가로경관 개선이 특효약이 될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그 속이야 어떻든 주민들이 마다했을 리 만무해 보인다. 그렇게 따지면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구 관내 신포시장 인근 모든 점포는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선 단순 가로경관의 개선 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거주지로서의 환경개선이 이뤄질 수 있게 지원해주기 위한 지구단위계획 차원 이상의 중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곳의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보행자가 불편을 느낄 만큼 열악한 자동차 중심의 가로 시스템이 문제다. 중구 관내의 길이란 길은 온통 주차장이다. 공영주차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중, 주말 통틀어 이 동네 가로 어디에서도 차 없는 풍경과 마주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렵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서라기보다 주민들의 차량과 방문객들의 차량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거리의 틈이란 틈은 죄다 메우고 있다.
구청장이 자신의 관할구 도시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이였다면 우선순위 이슈로 차 없는 거리(car-free-street) 만들기에 지혜를 모았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구청장은 눈뜬장님 행세를 하는 격이다. 개항장 도시 인천의 원도심 중구가 타 도시에 비해 풍부한 건축유산이 집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을 찾는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 만들기에 실패한 현실에서 기인한다.
다섯째, 지금은 창조적 인재들을 모을 때
중구를 관광객 중심의 장터로 변신시키겠다는 구청장의 의지는 그자체로 그럴듯해 보인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지역경제와 민심을 붙잡고, 기사회생을 염원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의 충성심을 누군들 나무라랴.
스스로 개발지상주의자가 된 배경에 지역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국외 및 국내 타지에서 어렵사리 모여든 창조적 인재들이 인천아트플랫폼과 인천문화재단을 중심으로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자원을 방기하고 있음이다.
관광객 유인책을 작금의 개항 각국거리 조성사업과 같은 방법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 역사적 기반을 응용한 창조적 산업의 발굴과 육성으로 천천히, 그러나 시간의 더께가 곧장 도시 마케팅의 튼튼한 자산이 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저들과 함께 풀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시종 말 잘 듣는 부하직원들 또는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업자들과의 관계만을 통해서 도시를 운영해나가려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여섯째,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때
개인적으로, 올해와 내년, 인천문화재단 공모사업 중 하나인 지역공동체 문화 만들기 추진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지역공동체의 함양을 위한 문화예술의 개입 프로그램을 통해 수용자에서 생산자로서 주민들의 공동체성을 깨우고 개발하고 추진하는 지역 안팎의 창조적 인재 풀에 섞여 저들의 계획과 의지를 북돋고, 방향성을 점검해주는 일이다.
수십 팀에 달하는 지역 기반 아마추어 및 전문 기획자들의 공모 제출안을 심의하고, 멘토링 하였던 장소가 인천아트플랫폼과 인천근대문학관 등이었는데 정작 작금의 개항 각국거리 조성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이 바로 인근의 중구청이고 보니 참으로 난감하고 신산(辛酸)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 했는데 딱 그 꼴이다.
너무 오랜 세월, 이 동네를 품어온 지역의 활동가들이 많아서였는지, 사사건건 시시비비로 일관해온 저들의 움직임이 거북해서 그랬는지, 정작 인천 중구 행정가들에게서는 지역 기반으로 움트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인천시 역사자료관을 머리맡에 이고도 역사성의 가치와 지역 문화의 진정성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장삿속 밖에는 확인되는 게 없다. 누가 장사를 하지 말라 하던가! 하되 지역이 공동체로서 거듭나고, 그 공동체 문화를 매개로 하여, 지역 문화의 특이지대를 만들어가라는 주문인데 중구에는, 구청장에게는 진실로 나침반이 되어주어야 할 주변인도,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중구청장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가식적이며 허황된 도시 이미지 관리로 인한 역풍, 역효과에 관한 것이다. 옛날 극장의 간판 갈아 끼우듯 도시 가로의 표정을 손쉽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발상, 몇 개월 또는 수년 간 사용 후 폐기하는 축제용 가건물과 같은 취급으로 가로 풍경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발상-이미 그 동네 상권을 지배해온 많은 수의 주민들이 수십 년에 걸쳐 건물에 자행해온 악덕을 미화, 장려하는 듯한 오판-의 끝은 도시 공간의 미학적이며 윤리적 황폐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단체장이 지역 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그가 나서서 도시 가로의 풍경을 공창(公娼)화 하여 돈을 벌어들이겠다고 하는 것만큼 망령된 자세가 있을까 보냐.
거리의 미세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로써 문화적 층위를 깊게 할 때,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로부터 거리가 활력을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도시(민)는 공간의 미덕이 가져오는 재생의 가치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도시동네가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기를 기대하는 이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도시재생의 비뚤어진 환상을 심어주기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도시동네의 진정한 거주자로 거듭 날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야말로 죽어가는 거리를 되살아나게끔 구청장이 놓아야하는 초석에 다름 아니다.
[전진삼, 계간 황해문화_84호_14년_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