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잡지 만드는 일
1인 혹은 소수의 동호인들이 만드는 인디잡지 몇 종을 제외하고는 상업 잡지 만들면서 안위를 구할 수 있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잡지 창간하고 처음 몇 번은 그런 감정이입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잡지 만드는 일이 습관처럼 다가왔고 더 이상 자기 위안적 매체로써 잡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 동종업계와 상업 잡지의 구도
업계라니 얼토당토않은 설정이다. 극히 제한적인 소수의 독자가 잡지의 존재감을 알아주고 응원해준다. 굳이 답변하자면 상업 잡지 대부분은 동종업계와 유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업계를 들썩일 만큼의 위력적인 상업 잡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업계를 대변하는 잡지는 단체가 발행하는 기관지, 협회지 등이 할 일이지 상업 잡지의 목표는 아니다.
3. 누구를 위해 잡지를 만드는가
응당 독자가 되어야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독자의 생각은 짐작으로 대충 때우고 편집실의 열띤 논쟁과 판단으로 잡지의 콘텐트를 구성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잡지가 시장에서 별무반응을 보일 때 혹자는 독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만 애당초 독자를 배제한 편집실의 닫힌 구조가 야기한 것이다. 편집실 바깥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할 일이다.
4. 누구의 잡지인가
통상 발행인, 편집장, 기자, 광고영업 책임자, 기타 등등의 순으로 얘기된다. 그러나 잡지는 이들 누구의 것도 아닌 독자의 것이다. 현실은 그런 구도가 깨진 채 발행인의 독단과 편집자의 권한 행사로 일그러져 있는 잡지가 많다. 잡지가 발행주체의 확성기가 아닐진대 고집하는 순간 독자들은 떠난다. 한번 떠난 독자의 시선을 되돌리는 것은 무척 어렵다.
5. 누가 저널리즘을 말하는가
발행인이 늘 기억해야 할 일이다. 저널리즘은 지면에의 기록을 통해 매체가 지향하는 가치관에 대한 정의이다. 통상은 발행인의 위임 하에 편집실에서 전권을 행사한다. 사진 한 컷, 원고 게재 여부 등등 잡지의 편집방향에 위배되는 콘텐트들은 가차 없이 칼질을 당한다. 문제는 기준이다. 잡지의 수준을 가늠하는 디자인과 제작상태까지 여기에 포함된다.
6. 잡지저널리즘은 무엇인가
주간, 월간, 격월간, 계간의 발행주기에 따른 정보성과 심층성 본위의 제작 태도와 관련이 있다. 대체로 잡지 자체로는 손익구조를 맞추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자. 디지털 매체의 확산과 종이 매체의 쇠락이 구조화되는 가운데에 발행주체의 확고부동한 발간의지가 이전시기보다도 중요해진다. 그 위에 편집자의 뛰어난 통찰력이 더해질 때 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
7. 대중지와 전문지
대부분의 잡지는 대중이라는 코드를 지워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얼굴 없는 대중들과의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잡지는 어느 정도 권위와 권력으로 무장된 지식인의 도구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것을 소비해줄 대중과 맞닥뜨릴 때 저들이 설정한 잡지 내 위상으로 인한 혼란을 겪는다. 대중과 전문가 사이에서 잡지는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 고민할 일이다.
8. 잡지의 그늘
선 굵은 편집자가 장기적으로 잡지를 지배하는 편집조직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경영상의 압박에 누구든 견뎌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잡지사 내부 편집조직의 층이 얇고, 젊고, 가볍다. 경영자들은 몸집이 가볍고 젊은 조직을 선호할 수도 있겠지만 잡지는 그만큼 허약해질 수 있다. 지속가능한 편집조직을 염두에 두자.
9. 승자가 되는 길
발행주체 스스로 잡지를 두려워하라. 상업 잡지는 단행본이 아니다. 논문집은 더욱 아니다. 아이디어를 모아서 잡지에 담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잡지가 혁신될 것이란 아마추어적 생각은 접는 게 좋다. 발행인은 편집자를 믿고 책임을 맡기되 늘 독자의 눈으로 감시하라. 발행과 편집의 상호 견제와 자극이 잡지의 중심을 잡는데 이로울 것이다.
10. 독자의 얼굴
문제는 늘 독자다. 저들 대부분은 얼굴 없는 전문가들이다. 전문적 독자라면 소위 이 시대 지식인의 초상을 공유한다. 그들을 움직이면 잡지도 살아남는다. 그러기 위해선 정기성을 띤 독자층의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하여 독자와 소통하자. 점차 독자가 얼굴을 갖게 될 것이고, 잡지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아 나설 것이다.
11. 광고 지면은 작가의 포트폴리오다
잡지가 판매되는 수입을 통해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는 쉽지 않다. 광고는 잡지의 주된 수입원이다. 각종 매체는 광고수입의 극대화를 위한 여러 유형의 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작가 연하는 사람과 조직에서는 그것의 상업적 속성에 대한 시비로 잡지 광고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사례가 흔하다. 지면 광고가 건강한 포트폴리오 발표의 장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전진삼, 환경과 조경_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