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건축학술상 탄생의 비밀

심원건축학술상의 의의

건축이론과 역사, 미학과 비평 분야의 신진 학자와 예비 저술가를 대상으로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응모 받아 그 중 매년 1편을 선정하여 소정의 고료 지급과 함께 1년 내 저술을 후원하는 이 상은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가 주최하는 첫 번째 문화 사업이다.

건축계에서 잘 지은 건축물에 수여하는 여러 종류의 ‘건축상’은 그나마 익숙한 편이지만 이처럼 건축의 인문학적 배경의 연구물에 가치를 부여하여 시상하는 제도는 낯선 것이 사실이어서 아직까지는 그 관심 또한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더욱이 내용과 형식성의 문제에선 이 같은 유형의 시상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는 타 장르와 비교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로 시행 6년째를 맞이하는 심원건축학술상(이하 학술상)은 지난 6월 21일(금) 저녁, 제5차년도 사업을 결산하는 행사가 2012년도 당선작의 출판기념회(이강민 지음, 『도리구조와 서까래 구조』, spacetime 발행)로 열려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이 학술상을 수상한 사람은 박성형(1회, 『벽전』 출간), 서정일(2회, 『소통의 도시』 출간), 이강민(4회, 상동) 3인으로 모두 40대 초중반에 걸쳐 있는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저작을 세상에 내보이게 한 학술상은 비로소 건축계 인사들과 인접 학계 인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이 글은 이 학술상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화답하는 의미로 기술코자 한다.

 

건축가와 건축주

우선 이 학술상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부친이 경영해온 자동차부품 생산 공장인 경주 M공장의 건축 리모델링 설계를 추진하게 된 현재의 사업회 이사장은 대학 후배로부터 서울에서 작은 사무소를 운영해오던 건축가를 소개받는다. 그의 이름은 김광재다.

건축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건축가는 건축의 세계를 안내하는 교육자가 된 양, 궁금해 하는 젊은 건축주의 의문을 풀어주는 등 성심껏 서비스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건축의 문외한이었던 이사장과 건축가와의 만남은 계약서상의 갑과 을의 관계 이상의 친밀한 사이로 발전한다. 설계비를 웃도는 건축가의 열정적 행동은 매주 한차례 경주와 서울을 오가는 비행 편수가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건축주가 되레 미안한 마음을 가질 정도로 건축가의 설계에 관한 한 서비스는 늘 넘침이 있었다.

그래서 젊은 건축주는 지나가는 소리로나마 다음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약속했던 것 같다. 설계비는 많지 않을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같은 언질이 건축가를 신바람 나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약속불이행

그런데 경주에서의 공장 리모델링 설계를 마치고 사무연구동 설계를 진행하고 완공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 건축가는 갑작스럽게 찾아든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건축가의 정염이 멈춰 선 것이다. 젊은 건축주는 한동안 그의 빈자리를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내뱉은 많은 말들이 빈말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그때부터 젊은 건축주는 한 가지 숙제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건축가와의 약속불이행에 대한 속죄 의미를 담아 지속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경우든 건축가가 운영하던 설계사무소의 이름을 앞세워 그의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고히 해나갔다. ‘심원’은 건축가의 설계사무소 이름이었다.

 

심원건축학술상의 탄생

2008년 가을, 나는 이사장과 마주 앉았다. 건축가의 유작이 되고 만 이사장의 경주 공장 사무연구동의 비평을 쓰게 되면서 그와 첫 만남을 가진 뒤, 수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건축가 김광재의 유작에 대한 비평작업은 사적으로는 건축가 생전에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의 빚을 갚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2003년 어느 봄날, 내 작업실을 방문한 그가 언젠가는 나로 하여금 자기 작업의 비평문을 쓰게 하는 날이 있을 거라며, 자기 다짐처럼 내뱉고 등을 보인 그 모습이 필자가 기억하는 그와의 마지막 장면이었기에 그의 유작에 대한 비평문 작업은 숙명적인 것이었다.

비평 글을 쓰기 위해 취재차 경주 현장을 찾았을 때, 당시 상무로 재직하던 이사장은 서울 출장 중에 있었는데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부리나케 경주로 되돌아왔을 정도로 김광재 관련한 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였다. 그런 그가 김광재를 기념하는 사업으로 모종의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솔직히 처음 나는 반신반의했다. 재력이 있는 2세 자본가들이 통상의 문화 사업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내 눈으로 그의 심중을 열어 보기 전에는 믿기가 어렵다는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진 날, 그는 검은 색 상의에 백팩(back pack)을 메고 나타났다. 당시 30대 후반의, 2세 경영자 수업을 받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한, 그러나 의기가 오롯해 보이던 그의 인상이 내 시선을 고정시켰다. 분에 넘치는 일은 애당초 시도조차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읽혔다. 작더라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문화사업의 첫 단추를 꿰겠다는 뜻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왔다.

 

심원건축학술상의 의미

첫 번째 사업의 장르는 건축분야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는 앞서의 건축가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유명 건축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않던 건축가 김광재를 통해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며 건축가들이 저들의 재능과 노력에 비추어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동정을 해오던 터였기에 문화 사업의 첫 단추는 건축계 안에서조차 빛을 받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건축인들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것으로 하자는 것에 어렵지 않게 합의를 보았다.

건축이론과 역사, 미학과 비평분야의 신진 학자와 예비 저술가들을 발굴하여 저술 후원을 하자는 발의는 그렇게 출발하였다. 건축설계를 주업으로 하는 건축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건축이론가들의 수적 열세는 이 분야의 전망을 흐리게 하는 요인이 될뿐더러 건축지식 생산 시스템의 결함을 방조하는 것이란 생각에 이르렀고, 그들의 지원 사업이 현행 과학재단과 학술재단 및 건축학회 등에서 이루어지는 것 외에 민간차원에서는 전무하다는 것이 그 지점에 시선을 둔 이유가 되었다.

 

첫 번째 수상작

2008년 5월, 심원건축학술상의 첫 번째 운영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이 상의 제정 의지에 뜻을 같이 한 중견 건축학자와 비평가(배형민, 안창모, 전봉희, 전진삼)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운영위원회는 사업회의 설립취지를 충분히 반영한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의 공모요강을 발표하게 된다.

학술상은 매년 11월 중순까지 접수된 응모작 가운데 1차로 추천작을 선정한 뒤, 심사위원회의 독회를 거쳐 익년 4월 기 선정된 추천작 중에서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또한 최종심사에 오른 추천작은 당해년도를 포함하여 2년간 추천작 지위를 유지케 함으로써 최종심사에서 탈락했을 경우, 응모자로 하여금 기왕의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재심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이 상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2009년, 첫 번째 당선작의 영예는 상고시대 이후 근세조선의 시기에 이르는 우리나라 벽돌건축의 조영원리를 다룬 박성형의 ‘벽전(甓甎)’이 차지했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학위 취득 후, 10년 간 응모자의 책장에 꽂혀있던 논문이 세상에 드러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 논문에 대한 이야기는 소문만 무성했는데 실체를 확인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터였다.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받는 이 논문이 연구주제의 특별함과 자료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로부터 환영받는 저술로 모습을 바꾸기에는 여러모로 부담감이 컸던 탓에 출판의 문빗장이 굳게 닫힌 채 연구자들의 기억 밖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수상작

2010년, 2회의 당선작은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의 도시건축을 연구한 서정일의 응모작이 선정되었다. 이제까지 서구 현대건축의 중심에서 늘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던 루이스 칸의 건축이슈를 대형시설, 도시 시설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논문이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루이스 칸의 건축아카이브를 샅샅이 조사하여 소통의 구조에 기반한 도시 건축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은 그동안 서구 건축의 전모를 그들의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연구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관점에서 특별한 평가를 받았다.

학술상의 두 번째 당선작은 앞으로 이 상의 관심 영역이 국내외를 넘나드는 참신한 주제발굴에 닿아 있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향후 이 학술상의 응모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의 범주가 넓어진 것이다.

 

네 번째 수상작 그리고

2011년 3회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한 채 우울한 1년을 보내고 2012년 제4회 당선작은 가뭄에 맞은 단비처럼 동아시아 문명과 목조건축의 구조원리를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의 특성에서 찾아 설파한 이강민의 응모작을 선정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의 구분은 상부의 지붕틀을 지탱하는 방식에 대한 연역적 추론에서 비롯된 가설로 적층의 원리와 입가의 원리를 바탕으로 발전해온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을 대상으로 선사 및 고대유적에서 중세 말까지 유적을 상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를 맡은 전봉희(서울대)교수는 이 연구물이 우리 학계에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지적 체계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목구조론에 새로운 활력을 넣은 것으로 기대한다고 상찬했다.

그러나 지난해 공모하고 올해 5월 발표한 제5회 당선작 선정에서는 저조한 응모작의 수적 열세가 고스란히 질적 위축과 맞물리면서 수상작을 내지 못하는 위기를 맞이하였다. 6회 수상작 선정까지 또 한 번의 기다림의 시간을 맞은 것이다.

 

심원건축학술상의 주인공들

지난 5년에 걸쳐 3인의 젊은 건축이론가가 이 학술상을 통해 세상에 등장했다. 상을 주관하는 입장에서는 더 많은 호응 속에 매년 1명의 스타 탄생으로 귀결되는 시나리오를 쓰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 번이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당선작 없음’을 공표하면서 운영위원회 구성원들은 상격의 기준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에 나름 의미를 두고 있다. 근본적으로 건축이론가의 길을 선택한 이들의 층위가 얇다는 것과 그들의 진로가 쾌청하지 않은 까닭에 이 상의 응모자가 수적 열세와 질적 미진함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부끄러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 보다는 단 한 명의 응모자가 제시하는 이론적, 대안적 학문의 오롯한 세계를 만나는 것에서 기쁨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 배출한 3인의 수상자는 이 학술상의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이들이 주목한 주제의식과 연구과정 그리고 일련의 성과들은 한국건축 이론분야의 한 획을 긋는 소중한 자산인 까닭이며 이들의 학문적 성과를 잇는 익명의 신진 학자 및 예비 저술가들이 오늘도 책상과 연구 현장을 오고가며 우리 건축의 건강한 내일을 비추고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의 공모요강이 발표되었다. 이 글을 읽는 건축이론과 역사, 미학과 비평 분야 젊은 인재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전진삼, 웹진 민연 1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