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건축학술상 새 운영방안 공표

: 대한민국 건축학 최고 권위의 학술상을 향한 행보

 

올해로 7회를 맞이하는 심원건축학술상의 운영방안(별첨 참조)이 대폭 손질된다. 지난 6년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기획의도(건축 역사·이론·미학·비평 등 건축인문학 분야의 신진연구자와 예비 저자 발굴 프로그램)와 다르게 우수 석·박사 논문상으로 위상을 점하게 된 심원건축학술상은 매번 기대에 못 미치는 저조한 응모율과 씨름을 해야 했다. 홍보와 운영의 면에서 미진한 점이 지적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응모 가능한 실질적인 연구자의 수적 제한이 가장 두드러진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도 여섯 번의 공모 중 두 번은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심사위원회의 심적 갈등과 고충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상의 권위를 만들어가는 초기 단계에서 위원회가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것이 이유가 되었지만 건축학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역사이론계의 현실이 반영된 판단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특히 가중되었다.

심원건축학술상(이하, 심원학술상)이 ‘학술’이라는 이름표의 무게에 눌린 채 응모작 대부분이 학위 논문의 제출이라는 정식으로 굳어졌다. 일부러라도 심원학술상을 목표로 한 연구물을 기대했던 6년의 기다림이 무의미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한건축학회가 시상하는 우수논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위상을 점해 온 것이다. 물론 금회 포함 네 번에 걸친 수상작의 면면은 학회의 논문상이 범접하지 못할 주제의식과 깊이 있는 내용의 연구물들을 발굴하였다는 면에서 심원학술상이 건축학계에 미친 긍정적 효과가 컸음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1회 수상작 박성형의 『벽전』은 대표적이며 상징적이다. 이것이 석사학위 논문이고,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책장에 꽂힌 채 빛을 보지 못하였던 것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드라마틱했다(심원학술상의 제정이 계기가 되어 연구자가 용기를 내었고, 당해 동시 추천되어 최종 심사를 겨뤘던 박사학위 논문을 제치고 첫 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는 점에서 감격의 크기와 감동의 깊이는 비단 수상자의 몫만은 아니었다. 이후 서정일의 박사학위 논문 증보판 『소통의 도시』(2회), 이강민의 박사학위 논문 증보판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4회)로 이어지는 수상작의 출현은 탁월한 연구 내용과 함께 연구자 개인에 맞춰진 차세대 인물본위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것이었다.

이 같은 강점을 바탕에 깔고도 미심쩍은 부분은 상존했다. 그것은 연구자의 수적 열세에 대한 반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는 아카데미즘 내부에서의 연구 풍토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은 심원학술상이 그 같은 풍토를 뒤바꿔놓을 수 있는 촉매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였고, 시기상조였다는 점이다. 정작 대학의 중추인 교수사회에서 건축학의 획을 긋는 성과물들이 줄줄이 생산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직시하건대 석·박사 학위 과정을 통하여 좋은 연구물들이 생산될 거라는 기대는 성급한 것이었다.

건축인문학의 위기를 공유하며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호기롭게 나선 심원학술상의 다부진 행보가 답답한 현실과 직면하여 존재감에 대한 재정비의 필요성을 부추겼다. 건축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사업회의 운영주체가 전폭적인 지지와 인내심으로 건축학의 연구 환경을 응원해온 의지가 박약했다면, 지난 시간 내내 상의 격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한 운영위원회의 결연한 의지가 없었다면 진즉에 사라졌을 제도였다. 반전을 위한 역발상이 필요했다. 하루아침에 역사·이론계의 심지 굳은 연구자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강화되는 풍토로 뒤바뀐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설상가상 대학에서의 건축학 교육이 설계 위주로 재편되면서 이론부문은 상대적으로 홀대되었고, 심각하게는 유능한 인재들을 이론가의 연구실로 불러 모으는 것이 힘겨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은 신진 연구자 및 예비 저술가에 국한시켜 젊은 층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건축학의 한복판을 조준하지 않았다. 일부러 표적의 중심을 비껴 간 것이 건축학의 연구풍토를 깨우지 못했다는 판단에 이르게 했다. 심원학술상의 발전적 변화를 도모하기 위하여서는 미발표작 뿐 아니라 단행본으로 출간된 발표작에까지 응모작의 범주를 확장시켜 당해에 출판된 학술적 가치가 높은 도서를 경쟁에 가담시킴으로써 신진 연구자는 물론 건축학의 질 높은 연구서 저자들의 경쟁 의지를 북돋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동시에 연구 및 출판문화의 진작을 도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이는 아카데미즘을 기반으로 활약하는 교수사회의 학문적 성과를 진작하고, 경계하며, 심도 있는 연구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에도 일정부분 기여하리라 여겨진다.

이상과 같은 입장을 전제로 제7회 심원학술상의 공모요강은 기존과 같은 큰 틀을 유지하되, 응모작의 범주를 기존의 ‘미발표작’과 함께 ‘발표작’으로까지 확장시키고, ‘발표작’이 수상작으로 선정될 경우에는 상금과 해당도서의 구입(각 대학 건축학과 등에 사업회 명의로 기증) 및 해당 도서에 부착할 수 있는 수상작 인증 라벨을 수여하는 것으로 시상의 형식을 조정하는 방안을 도입하게 된다.

또한 추천작이 선정된 후 심사위원회 구성원과 추천작가가 공동 참여하는 공개포럼을 개최하여 최종심사의 밑 자료를 삼고 심원학술상의 위상을 공고히 함은 물론 나아가 내실 있는 학술 행사로 건축사회에 기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넘어서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우선은 신진 연구자의 연구물(석·박사 학위 논문)이 선배 학자들의 연구물과 경합할 만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냐는 것이다. 더하여 최종 심사를 앞두고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경쟁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의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기관 및 출판사를 통해 발간(예정)된 단행본들이 일정 부분 콘텐츠에 대한 검증장치와 편집단계를 거치며 수정·보완하여 완성된 연구물임을 감안할 때 수상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게 될 터, 궁극엔 지난 6년에 걸쳐 쌓아온 무명의 신진 연구자 발굴이라는 심원학술상의 초기 정체성을 심하게 위협하는 사태로 번지지 않겠냐는 우려까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고비가 어느 것 하나 수월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새로 위촉되는 2기 심사위원회 위원들의 고민이 많을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1기 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응모작에 대한 충실한 독회는 물론 공개 포럼을 통해 심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게끔 개편된 심사절차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기에 그러하다. 내용적으로는 들여다봐야할 건축학의 지평이 넓어진 까닭이며 운영 면에서는 심사위원 스스로가 최고·최상의 연구물을 발굴해내는 것부터 역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점가에서는 그나마 유행에 민감한 글감과 대중적 글쓰기로 소수의 대학 교수 저자들이 주목받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지만 심원학술상은 그들의 저작행위가 닿아 있는 상업적 목적의 정점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비록 읽히는 데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논쟁적이며 학술적 성과가 큰 덕목에 주목한다는 초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로써 선후배 연구자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건축학의 지향점을 모색하는 장치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유명무실한 시상제도가 아니라 이 방면 연구자 및 작가들의 활동이 정기적이며 지속적으로 점검되며 그로써 긴장과 희열과 환호가 나눠지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변화된 운영방안을 통해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심원학술상이 명실상부 국내 건축학의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정위되는 것이다.

현재 대한건축학회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 또는 이들이 주체가 되어 있는 단체를 대상으로 시상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 그중 개편되는 심원학술상에 필적할만한 제도는 학회 ‘학술상’에 제한된다. 이 학술상은 이미 오랜 역사와 전통이 이어져왔고 매년 동시에 여러 명이 수상의 영예를 나누어 가지지만 건축계와 건축학 분야 내에서조차 회자되고, 기억되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과의례적인 학술상의 위상으로 겉돌고 있는 인상이 짙다. 당연히 건축 바깥 세계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심원학술상이 이들의 보완적 장치이자 건축학의 부흥을 위한 건강한 경쟁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와이드AR> 39호, 전진삼의 para-doxa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