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가, 선배를 기억하는 그들은

: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의 특별한 행보

 

건축계를 대표하는 3대 문화재단을 꼽는다면 김수근문화재단, 정림건축문화재단, 목천김정식문화재단으로 압축된다.

김수근문화재단은 공간그룹의 설립자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유가족과 제자 및 문화예술계의 지인 및 후배세대가 함께 만든 재단(1988년 12월 23일 재단설립, 문화부 인가)이며, 정림건축문화재단은 정림건축의 설립자 건축가 김정철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정림건축과 유가족과 후배 건축인들이 함께 만든 재단(2011년 4월 21일 재단설립, 서울시 인가)이다.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은 앞의 두 문화재단과 다르게 현직에서 퇴임한 건축가 김정식 선생이 직접 설립(2008년 4월 20일 재단설립, 문화부 인가)하여 초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형식성의 측면에서 차이를 갖는다.

그 외에 건축인이 관여한 공익법인 준 눈에 띄는 것으로 역사건축기술연구소(대표자 김동욱, 2011년 6월 9일 설립, 문화부 수리기술과 소관), (재)국제건축문화교류재단(대표자 김원, 2012년 3월 30일 설립, 문화부 국제문화과 소관) 등이 확인되었다.

활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김수근문화재단의 성격은 재단을 구성하는 문화예술계와 건축계의 명망 있는 인물들의 면면에도 불구하고 ‘김수근건축상’(최초의 명칭은 ‘김수근문화상’으로 출발하여, ‘미술부문’, ‘공연예술부문’, ‘건축부문’의 3장르에 걸쳐 시상했으나, 현재는 건축부문에 한하여 시상하면서 상의 명칭도 김수근건축상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다) 하나로 집약된다. 재단의 명성과 달리 활력소가 필요해 보인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은 정림건축의 활동과 연계한 ‘정림학생건축상’ 운영, <건축신문> 발행, ‘포럼앤포럼’, ‘푸른꿈건축학교’, ‘새싹꿈건축학교’등 다양한 건축기획 프로그램의 운영과 지원으로 건축의 기초교육과 젊은 건축가 및 아티스트, 인문학자들의 가교 역할을 해오며 건축의 대중화와 건축과 문화예술교류에 힘을 쏟고 있다.

그에 반해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은 성격 면에서도 앞의 두 문화재단과 크게 다르다. 설립 초기 친환경건축설계아카데미 연구지원기반으로 건축문화사업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이기도 했는데 2010년 이래 건축아카이브 연구 및 지원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 이사장은 중견 건축학자들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우리 건축에 시급한 사안으로 한국 현대건축사의 자료들이 멸실되기 전에 최소한이나마 중요한 건축가들의 자료를 모아 후학들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에 의지를 모은다. 문화재단의 설립과 동시에 의례적이며 과시적으로 운영하는 그 흔한 건축상의 제정이라는 손쉬운 길을 외면한 채 오롯이 우리 현대 건축 자료 집성에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발판을 놓은 전봉희(서울대)교수와 배형민(목천건축아카이브 운영위원장, 서울시립대)교수를 필두로 조준배(앤드 건축 디자인 랩)소장, 우동선(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 이병연(충북대)교수, 최원준(숭실대)교수 등의 조력이 주효했다.

이들은 ‘20세기 한국건축기록물의 수집과 보존의 필요성’에 의기투합하여 ‘건축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며 ‘미래 한국건축의 연구와 창작에 기여’한다는 취지하에 목천재단 내에 목천건축아카이브를 구축한다. 이들이 말하는 아카이브의 특징은 이렇다.

▲자료의 수집, 보관에서부터 활용과 연구로 활동성 있는 문화생산자의 역할 ▲민간과 학계의 자발적 기관으로 시대의 필요성에 부응하고 건축전문가의 시각에서 현대한국건축역사와 문화 조명 ▲건축가의 자료기증과 공개를 통한 공공자산화(역사와 교육자료) ▲건축전문가와 일반대중과의 문화적 접목점(온라인 웹 서비스와 실물 건축자료관) ▲해외아카이브 학술단체와의 교류(이상, 목천건축아카이브 리프렛 참조)

글 작성을 위해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이하 목천재단) 사무국에 저간의 활동일지를 요청하였다. 건축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2010년∼2013년 현재까지 목천재단 목천건축아카이브의 일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리 오래지 않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구성원들에게서 찾아지는 열의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기록하는 자들을 별도로 기록해야하는 충분한 이유가 행간에 숨어 있다 할 정도로 소명감의 깊이가 전해졌다.

이들은 목천재단 김정식 이사장의 자료 수집을 필두로 하여 안영배, 엄덕문, 김정수, 4.3그룹, 정인국, 윤승중, 박춘명, 강윤, 원정수·지순, 장석웅 선생(목천건축아카이브 운영위원회 내부 논의 및 추진 순) 등 주로 한국현대건축 1세대 건축가로 분류되는 선배들의 자료수집과 구술채록 등의 사업을 벌여오고 있고, 2012년 12월 6일에는 4.3그룹의 아카이브 진행에 따른 연구 성과물을 가지고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이란 제목의 포럼을 개최하는 등 괄목할만한 활동을 펼쳤다. 같은 해 2월 목천건축아카이브 운영위원회와 별도로 연구전담 조직인 현대건축연구회를 결성하여 앞의 행사를 준비하고, 연구회의 발족을 알리는 공식적인 첫 대외 행사를 겸해 건축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2013년 7월 5일, 목천재단 사무국 10층 홀에서 원정수·지순 선생의 자료 기증식을 겸한 구술채록 최종회가 동시대 건축가들과 대화의 형식으로 개최되었다. 이 자리엔 김정식, 박춘명, 안영배, 윤승증, 유걸, 김원, 황일인 선생이 대화자로 동석했고 조대성, 임창복, 이성관, 김자호, 이상진, 구영민, 오동희, 조정호, 김태성, 배형민, 김영철, 우동선, 김현섭, 최원준 제씨가 배석했다.

이날 특히 시선을 모은 것은 고령의 선배 건축가들의 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아카이브 운영위원들과의 구술채록에 한하여 곁을 두었을 뿐 외부 세계와는 적이 단절되어 있던 이들이 한 장소에서 모처럼의 회동이 성사되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로웠다. 그날 행사에 참여한 제한된 후배 건축인들만이 저들의 육성을 듣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을 정도다.

돌이켜보면 1980∼90년대 한국건축의 중심에 섰던 건축가들 대부분이 오늘날 60∼70대 연령층에 이르렀고, 동시에 건축가로서의 활동도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터라 지난 시절, 60대만 되면 뒷방늙은이가 되어버린다는 구설에서 자유로워진 건축계의 두터운 층위에 안도할 수 있는 것은 이전 시기와 달라진 풍경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30∼40대 연령층의 건축가들이 미디어를 중심으로 집중 소개되고 있는 반면 현장에서 밀려난 선배 세대의 존재에 대한 무관심과 기회부재는 건축계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로 주시될 만하다. 당연히 고령 건축가들의 부재는 건축계 안팎에서 공히 관심의 대상이 아님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한편 현재 40∼50대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중간세대 건축가들의 층이 얇아 선후배 세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선배들의 염려와 따가운 지적도 공공연히 발언되고 있는데 우리 건축의 세대론에 담긴 구조적 불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곱씹을 이유가 있다.

가끔 모임에 나가보면 40, 50대가 거의 없어요. 대부분 30대죠. 세대 간 단절(generation gap)이 생기는 거예요. 예전 서울건축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윗세대들이 많았어요. 그 사람들이 이젠 다 자리 잡았고 50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30대가 많은 거죠. 역피라미드가 아니라 아예 와인잔처럼 중간 세대가 없는 구조예요. 어떤 사회나 피라미드 구조여야 안정이 되는데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그 윗세대들이 제대로 후배들을 보살피지 않았고, 그 결과 세대 연결이 되지 않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30대들이 정말 걱정됩니다.(구본준, <건축신문> 6호, 인터뷰 기사 ‘조성룡, 한국 공공건축의 오래된 미래’ 중에서)

여기서 거론되는 중간세대를 연령대로 선명하게 끊을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서울건축학교 활동기의 주축 세대를 중심으로 한 이전과 이후가 세대 단절의 분기점으로 규정될 수 있으리라. 통상의 세대론이 10년 단위 혹은 15년 단위로 매듭을 짓고, 그 안에 걸쳐 있는 세대는 동 세대 건축가로 정위시키는 것에 무리가 없으니 작금의 한국건축계는 90년대 초반에 결성한 4.3그룹 구성원들이 활동하던 시기의 주연령대인 30∼40대 이후 이들의 상호도생(相互圖生)에 근거한 자급자족형의 건축공부와 후배세대 껴안기가 저들이 40∼50대에 이른 시기, 즉 서울건축학교 시기에 당시 30대였던 현재의 50대를 보살폈다는 계산이 선다. 문제는 그들이 껴안아서 행복했을 것이라고 잠정 판단하는 현재의 50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책론의 이유가 다른 데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들 50대 중간세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 위에 놓여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울건축학교 선배들의 호명(呼名)이 건축가로서의 입신에 공증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졌던 건축계 일단의 분위기는 저들 세대가 스스로 일어서서 함께 도모하는 건축가 그룹의 선명성을 앞세우는 소명을 부인케 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할 수 있다.

어쩌면 현금의 30∼40대는 자발적으로 상호도생의 의미를 현재화 할 수 있는, 4.3그룹과 서울건축학교 세대에 이은 두 번째 세대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는 면에서 나는 조성룡 선생의 세대 간 연대 단절의 우려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대는 끈으로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듭으로도 연결되는 것이다.

그보다는 현재 60∼70대 건축가들을 포함한 그 윗세대가 너무 빠른 속도로 건축계의 화제에서 벗어나 있는 현상을 우려한다. 소수 대표 주자들에 의해 당해 세대의 유명과 무실이 견인되는 것으로 족하다고 변론하겠지만 그들은 대부분 세대론으로 묶을 수 없는, 솔직하게는 묶이기를 거부하는 각자도생적 존재로 변해 있음으로 이는 다수의 고령(화에 접어든) 건축가들과는 무관한 일이 된다.

그런 면에서 목천재단이 최우선 사업으로 벌이고 있는 건축아카이브의 원로 건축가 구술채록 작업 등은 의미가 크다. 이들의 1차 작업이 건축가의 생애와 작업의 소산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이 목표로 하는 2차, 3차 건축(사)학적 성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제언하건대 일련의 구술채록 및 자료화 과정의 형식 여하에 따라서는 고령의 건축가들과 신진 건축인들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의미 있는 기회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는 선배 건축가들의 현존을 눈과 귀로 확인하며 우리 현대건축의 역사를 증언과 대화의 형식으로 풀어내는 고정적인 자리가 마련된다면 이는 건축하는 후학 및 후배세대들에게 큰 기회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목천재단은 민간 차원에서 본격적인 건축아카이브의 시동을 건 선도적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특성화된 공익재단의 모범이 되고 있다. 반면 국가적으로 건축이 지식서비스 산업의 한 축을 감당하게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시점이며, 세종시에 도시건축박물관(가칭)이 들어설 예정으로 있으나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건축아카이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는 발원과 구상은 아닌 듯싶다. 실제로 건축아카이브와 관련한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낼 마땅한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이 같은 정황을 보건대 목천재단이 주도하는 민간차원의 건축아카이브 구축 사업은 향후 상당 기간 고진감래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자금 투입과 자료보관소의 공간적 한계가 현안이 될 정도는 아니어서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실상은 그것이 문제가 되어 선별적 아카이빙의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건축계보다 앞서 민간 차원의 아카이브 작업을 해오고 있는 미술계가 한국미술 아카이브에 따른 정부의 지속적이며 항구적인 지원제도의 결여로 크게 곤란을 겪고 있는 등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건축계에 투영된다고 가정하다면 건축아카이브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진단해도 지나치지 않다. 건축아카이브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의 연구와 실행방안에 대한 논의는 한시바삐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그 같은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한 방편 중 하나로 목천재단은 고령의 선배 건축가들을 공개석상에서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구현에 앞장 서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일상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 자체로도 우리 건축과 일반 사회에 미치는 효과는 지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와이드AR> 35호, 전진삼의 para-doxa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