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묵은 화제로 요즘 건축판이 뜨겁다. 건물 하나의 완성을 두고 밥 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속사정은 아랑곳 않고 집안싸움 벌인다고 보는 건축 바깥의 시선이 곱지 않다. 사태의 핵심인 즉, 원 설계자의 건축 설계와 감리 업무를 독립된 범주로 보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건축 설계라 함은 건축가(사)에 의해 실재하지 않는 건물의 구상을 도면화 하는 작업이다. 건축 감리라 함은 설계 도서에 충실하게 건물을 실현하기 위해 공정한 입장에서 공사 시공을 지도 · 감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冒頭의 이슈를 이 같은 정의에 입각해서 재정리하면, 건축가(사)가 발주자에 의해 설계의뢰를 받아 생산한 건축도면을 공사 현장에서 도면대로 지어지고 있는 지를 직접 지도, 감독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건축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이지 싶을 게다. 문제는 돈의 향방이다.
건축 설계 행위에 대해 설계자인 건축가(사)는 발주자에게 설계비를 요구하게 되듯 건축 감리 행위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감리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현행법이기에 결국은 건물 하나의 완성에 따른 설계비와 감리비를 원 설계자인 건축가(사)가 독식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문제제기를 기본 입장으로 하는 국회 의원발의가 발단이 되었다.
지난 해 말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 발의로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건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제출되었는데 내용 중에 소규모 건물(3000㎡ 이하)을 지을 때 허가권자(지방자치단체)가 ‘설계자가 아닌 건축가(사)’를 공사 감리자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건축법 제25조 제1항 단서 신설)이 알려지면서 건축계의 오랜 내부 다툼이 재연되기에 이르렀다.
전술했듯 감리는 건물이 본디 설계된 대로 지어지고 있는지 공사 과정을 감독하는 일을 말한다. 시공자가 공사 과정에서 임의로 설계를 변경해 짓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이번에 상정된 개정안은 ‘설계자인 건축가(사)가 감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설계자가 직접 감리를 할 경우 설계 및 시공 부실 은폐 등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개정 취지라고 말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이 무색하다.
건축계는 최근 극심한 위기 상황에 몰려 있다. 특히 지방의 사정은 더욱 어렵다. 대형사무소, 중소형사무소 무론하고 모두가 다 어렵다. 설계 일이 말라붙었다. 그나마 세종시 이상 수도권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서울에 적을 둔 중대형 건축사무소가 지방에서 벌어지는 건물의 규모 불문하고 설계 경쟁에 뛰어들다 보니 당장 현지 건축사무소는 경제 한파와 더불어 저들의 침공에 의해 안팎으로 압살당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단 자괴감이 엄습해 있는 것이다.
건물 설계의 기회를 빼앗긴 지방 건축사무소들 태반은 감리업무만이라도 따내야 하는 절박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설계자는 이미 건축 설계비 조로 배를 불렸으니 감리비는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명분이 서지 않고 약발이 먹히지 않으니 수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국회 의원발의를 통해 건축가(사)가 설계와 감리를 동시에 진행하면 부정을 저지를 공산이 농후 하니 분리 발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제 얼굴에 똥칠을 한 셈이다.
그것은 마치 환자가 몸에 이상 증세를 느끼고 수소문 끝에 그 방면의 명의를 찾아가 천만다행으로 환자의 초기 암임을 발견하게 되는데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와 상의하여 수술계획서를 짠 연후에 정작 수술은 환자가 거주하는 동네 의사에게 맡겨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제 아무리 명의라 하더라도 수술 도중에 엄한 일을 할 수 있으니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법망에 걸려 의사는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의사는 수술이 제대로 되고 있는 지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고, 환자 또한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일부러 유능한 의사를 찾아가서 나름 치유의 희망을 보았는데 법망에 걸려 신뢰하지 못하는 동네 의사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구성한 내용이며, 일부러 전국의 동네 의사를 폄훼하려 한 것은 아니니만큼 그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겉으로만 보면 중앙의 유능한 의사와 동네 의사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구도처럼 보이겠지만 행간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가 끼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술계획서는 환자의 상태에 따른 의사의 전문성이 개입되어 만들어지는 고유한 업역의 산물이다. 수술의 방법, 기술, 의료인력, 수술 지원환경 등 독자한 프로그램과 그것들이 일사분란하게 조율되었을 때에 환자의 생명을 책임진 의료행위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터다. 그런데 이 같은 프로세스가 무시되고 단지 환자 거주지에서 개업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의사에게 수술계획서와 함께 환자가 이송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설계자인 건축가(사)의 역할이 단지 지어질 건물의 도면을 그려내는 일에 그쳐도 된다는 발상은 건축의 완성을 책임질 건축가(사) 본연의 역할을 무시한 것이다. 건축가(사)는 도면대로 완성된 건물을 발주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시공자를 독려, 관리, 감독하는 위치에 서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지방의 군소 건축사무소가 고사 상태에 직면해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감리 업무를 분할해줌으로써 중앙과 지방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공정한 거래라고 볼 수 없다. 지난 세월 건축사 면허자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건축설계시장의 살벌한 경쟁과 재건축, 재개발, 뉴타운 조성 및 초대형 공공, 민간시설의 건설에 따른 대형건축사무소 위주의 턴키 및 PF 발주방식의 폐해가 작금의 시장 질서를 무너뜨린 원흉이라는 것을 돌아볼진대 이는 원 설계자의 건축 설계와 감리 엄무 분리라는 처방전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단 이 사안이 지방 도시 건축가(사)들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서울 등 수도권과 전국 광역시에 개업 중인 수 천 개 건축사무소 태반이 1년에 한 건의 건축 설계 수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황이 건축법 개정안 발의의 이유가 되었다는 점은 상기할 일이다. 결국 각 지역, 각급 건축사무소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고 보니 밥그릇 싸움처럼 보일지라도 목숨을 건 한 판 승부가 벌어질 판이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젊은 건축가들 태반이, 그들은 적어도 불황의 시대에 한두 개 이상의 의미 있는 건물 설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데, 금번 의원발의의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공사 현장의 작은 디테일 하나가 이들의 향후 5년, 10년 뒤 건축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들의 설계도면이 익명의 동네 건축가(사)들에게 대책 없이 맡겨져 건축 설계의 진품성이 훼손되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에 심히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의 아우성은 한국건축의 불투명한 미래와 겹쳐지며 이 사안의 중차대함을 항변하고 있는 것으로 들려온다.
경쟁은 공정한 룰에 입각할 때 힘을 얻는다. 작금의 원 설계자인 건축가(사)의 건축 설계 및 감리 업무를 강제 분리하려는 건축법 개정안은 취소되어야 마땅하다. 그 보다는 시장의 자율 경쟁 체제를 독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응원함으로써 건축가(사)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끝까지 완성시킨다는 신념에 대한 사회적 약속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하여 모색함이 바람직 할 것이다. 이 땅의 의식 있는 건축가(사)들에게 다가온 포퓰리즘식 건축법 개정안의 발의가 몰고 올 파고가 쉽게 수그러들기를 바랄 뿐이다.
[전진삼, 웹진 민연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