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좌담회]
일시: 2015년 4월 13일(월) 5:30~9:30pm
장소: 누리레스토랑 문간방
참석: 이기옥(건축가, 필립건축 대표), 정영한(건축가, 아키홀릭 대표), 이정훈(건축가, 조호건축 대표), 박정현(비평가, 본지 편집자문위원,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전진삼(본지 발행인, 사회)
전진삼(이하 전발):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건축가협회(이하 가협회)와 새건축사협의회(이하 새건협)가 주도하는 ‘젊은 건축가상’,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카드가 후원하는 형식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 본지가 주최해오고 있는 건축세미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약칭 땅집사향), 지난해 새건협과 서울의 5개 대학이 함께 만든 젊은 건축가 초청강의 ‘10by200’, 새건협이 주관하는 해외 순회 건축전, 가협회의 젊은 건축가위원회를 주축으로 추진하는 ‘HauShow’, ‘국제건축문화교류사업’ 및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들 모임인 ‘젊은 건축가포럼 코리아의 컨퍼런스 파티’, 정영한 대표가 기획 운용해오고 있는 ‘최소의 집’ 연작전시와 함께 서울시 공공건축가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작금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건축가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대학교수와 건축가들이 모여있는 ‘도시건축포럼B’, 인천에서는 본지가 개입해온 ‘아이콘 초이스’ 등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 내 젊은 건축가들의 동향을 주시해오고 있으며, 기업의 후원 프로그램으로 유니온스틸의 건축가 지원사업, 아모레 퍼시픽 건축가 지원사업 등 상대적으로 젊은 건축가들을 향한 지원 프로그램들이 그 어느 시기에 비하여도 양적으로 많아진 게 사실이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 각자는 앞서 말한 사업들 가운데에 한두 개 이상의 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던 분들이기에 각자의 경험담을 통해 그것들이 건축가들의 날개 달기 프로젝트로써 얼마나 유효했는지를 점검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한다. 최근 새건협 주도의 런던 전시 ‘아웃 오브 디 오디너리(Out of the Ordinary, 이하 런던 전시)’에 큐레이터 및 초대작가로 참여한 박정현 편집장과 이정훈 대표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좌담을 시작하기로 하자.
박정현(이하 박편): 전진삼 발행인이 오늘의 좌담을 위해 사전에 보내준 자료를 보면, 건축가 지원 프로그램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젊은 건축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의외로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젊은 건축가상’은 제일 큰 프로젝트이고, ‘YAP’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입되어 있지만 MOMA와 현대카드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로 국내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새건협에서 주도했던 ‘10by200’는 일회성 프로젝트이고, ‘런던 전시’ 역시 올해는 젊은 건축가를 중심으로 하였지만, 과거 해외교류 전시의 경우는 건축가 세대 전체에 해당하는 전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서 제시한 건축가 날개 달기 프로젝트들이 젊은 건축가에만 국한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태석 대표의 젊은 건축가포럼 컨퍼런스 파티나, 정영한 대표가 주관하는 ‘최소의 집’ 연작전시는 개인적 차원에서 해오고 있는 것이다. 젊은 건축가가 부각되는 현상은 분명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공적 자금이 투여되어 젊은 건축가들을 띄어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상대적으로 다른 세대의 건축가들을 위한 지원 프로젝트들이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든 건축계의 지원과 활동이 젊은 건축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인지는 궁금하다.
45세
이기옥(이하 이기): ‘지원’이라는 개념은 부족과 결핍에 따른 사회적 보완책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 성장기에 사무실을 열었던 기성세대는 상대적으로 부족과 결핍을 느끼지 않았고, 개인적인 성향을 강하게 나타낸 그들 세대에게는 공적 지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70년대 생은 이제 40대가 되었고, 그들로부터 시작된 ‘젊은 건축가’들은 시대적인 상황을 이유로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 있는 집단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민주화와 국제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대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는 이전 세대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세대로 성장하였지만, 그들이 사회에 나와 건축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인 2000년대 말 이후부터의 경제적인 현실로 인해 상대적인 결핍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영한(이하 정영): 매번 젊은 건축가를 화제로 이야기를 할 때 의문이 드는 것이, 45세 규정이 등장하곤 하는데 여기서 ‘45세 이하’라는 세대 구분론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짚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기: 우선 공통적으로 45세 이하라는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사례를 먼저 짚어보는 것이 유용할 듯하다. 문광부의 젊은 건축가상과 사협회의 신진건축사대상이 그 기준을 45세 이하로 하고 있고, 서울시에서 위촉하는 공공건축가 중 신진건축가의 기준도 45세 이하로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단체나 행사에서도 이 숫자를 젊은 건축가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유추해보면 ‘45세’라는 나이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기준이 아닌가 싶다. 현재 나이 45세, 즉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는 이전에 비해 유학을 많이 가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유학을 가서 학업을 마치고 현지에서 경험을 쌓으면 대략 5~6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 뒤에 한국으로 돌아와 이러 저런 경험을 쌓고, 사무실을 여는 나이는 자연스럽게 마흔을 훌쩍 넘기게 된다. 그 선봉에 서있는 이들의 나이가 우리나라에서 젊은 건축가의 기준이 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미 기성 건축가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최근 일어나고 있는 건축계의 변화를 감안해 보면 이 45세라는 기준이 계속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2000년대 말부터 해외로 유학 가는 학생들의 비율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건축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유학이라는 기간이 빠지거나, 최소한의 실무경험 후 작업을 시작하는 20, 30대라는 정말 젊은 나이의 건축가들의 등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정훈(이하 이정):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로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 건축과의 경쟁률이 타과에 비해 무척 높았던 기억이 난다. 91년부터 96년 즉 IMF 직전까지 대학사회에서 건축과의 인기는 절정에 이른 황금기였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껏 건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친구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 세대의 사람들은 유학도 많이 나간 특징을 공유한다. 건축에 관한 한 호경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유학을 간 경우가 많았다. 공부에 대한 욕심도 많았던 세대였다. 하지만 이들이 유학에서 돌아올 시점에 국내사정은 돌변했다. IMF의 혹한기를 지나오면서 한국의 건축설계시장은 턴키 시장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건축가라는 집단이 건설사 밑으로 예속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실력이 좋았던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대부분 아틀리에를 등지고 대형사무실에 들어가서 턴키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런 걸 가까이서 지켜보게 된 젊은 건축가들의 내면에 ‘반발’이라는 키워드가 자라났다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프라이드가 강했고 밀도 있게 공부하며, 멋있는 건축가 선배들을 보면서 자기의 꿈을 키웠던 세대가 맞닥뜨린 현실은 턴키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다. 건축 본연에 대한 고민과 이상을 꿈꾸는 것은 무모한 세태였다. 그러다 보니 일종의 반발 심리가 커졌던 것 같다. 자연스레 이대로 가다가는 자멸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대형사무실과 거리를 둔 젊은 건축가들이 하나, 둘 사무실을 오픈하면서 건축생태계의 자정 작업과 함께 새로운 세대의 부상을 알리는 물꼬를 튼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기: 말씀한 내용은 젊은 건축가뿐만 아니라, 소규모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모든 건축가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턴키 제도의 혜택을 입은 건설사와 몇몇 대형 설계사무소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건축계의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이정: 부연하자면 턴키가 대세이던 시절, 한국의 대형 설계조직에서는 무분별하게 외국 건축가들과 조인하고 그들의 디자인을 수입해서 경쟁하던 때였다. 당연히 외국 설계회사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하여 외국 유학 경험의 친구들이 필요했다. 대형설계사무실에서는 외국어가 되고, 해외경험도 있고, 말이 통하던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유학을 한 친구들이었고, 그들은 건축가의 역할이 아닌 코디네이션을 주된 업무로 취업하게 되었다
전발: 이정훈 대표가 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대형설계사무실에서 유학파 세대를 불러모으는 방식에서 모종의 지원 프로그램이 개입한 것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시에 일부 젊은 건축가들에게서 그 같은 네거티브한 방식의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반발심과 저항 의지가 생겨나게 되면서 젊은 건축가로서의 독립의지를 불태우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젊은 건축가상이라던지, 여타의 지원사업이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그 사회가 안고 가는 부정적인 시스템에 대한 저항의 발로에서 기인하는 공적 프로그램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정훈 대표가 말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기성 사회에 대한 반발 심리는 나름 설득력이 있는 발언이다.
이정: 젊은 건축가상 제도가 2008년에 제정되었다. 내가 수상할 당시의 전과 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개인 사무실을 오픈했던 수만 놓고 비교해보면 초기 지원자에 비해 근년에 지원한 젊은 건축가들이 사무실을 오픈한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저들 대부분이 사무실을 오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대형설계사무실에서 더 이상 좋은 조건으로 유학파를 뽑아가지 않았던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기: 젊은 세대들이 큰 조직 안에서 경험 쌓기를 거부하고 각자 사무실을 차리는 이러한 현상을일종의 ‘조급함’으로 해석하는 기성세대의 시각이 존재한다. 이러한 시각 차이로부터 세대 간의 소통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이정: 지금의 상황은 젊은 건축가들이 일정 기간 수련을 하고 자기가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시장이 없다.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사무실을 오픈했다. 그 이유가 우리보다 전 세대 선배들은 교수를 하거나 대형사무실의 간부로 들어갔다. 두 경우를 놓고 보면, 지금 우리 세대는 교수가 되고자 한다 해서 쉽게 될 수 있는 세대도 아니다. 또한 대형사무실을 선택하였던 선배들의 모습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본질로 돌아가서 왜 건축을 시작했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개인 사무실을 여는 동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기: 이러한 현상은 80년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90년대에 한국이 처했던 아주 특별한 상황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박편: 사회학에서는 80년대 학번과 90년대 학번을 완전히 별개의 종족으로 구분한다. 386세대 학자들이 제시하는 세대 구분론에 따르면 80년대는 진정성의 시대이고, 90년대에는 동물의 시대이다.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나아가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와 90년대 중반 이후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 또한 전혀 다른 문맥 위에 놓여 있다.
호명
전발: 화제를 돌려보자. 민간차원에서든 공공차원에서든 건축가 지원 프로젝트가 근년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는 것은 중요하게 바라봐져야 하지 않을까? 동시에 기성 세대 건축가에게 기회가 주어지기 보다 젊은 건축가 중심으로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 자체가 이야기의 초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각각의 프로젝트들이 결과적으로 젊은 건축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프로젝트인지 아닌지, 다른 의미에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 같다.10by200에 호명된 건축가 중에 상당수가 건축 본연의 실제 프로젝트가 아닌 외연을 탐구하고 있음이 주목되었다. 신진건축가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생존을 위한 다각적인 접근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 지점을 고민했던 입장에서 정영한 대표의 생각은 어떠한가.
정영: 말씀하신 건축 본연의 실제 프로젝트가 아닌 외연 탐구를 주목하는 이들 중 나를 호명한 것에 대해 조금은 의아했다. 물론 현재 본인이 기획한 최소의 집 전시에서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고는 있지만 2013년 이전까지는 실제 프로젝트만을 지속해 왔다. 30대 초에 독립 하여 현재까지 작은 아틀리에를 약 12년간 지속해왔기 때문에 10by200에 호명된 건축가들에 비해 작업 수가 많았다 그러나 그 작업들을 했던 당시를 떠올려 보면 지금의 현실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생존을 언급하기 전, 젊은 건축가에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 조차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생산된 작업들이기에 작품의 수준을 논하기 전, 나름의 치기 어린 과정을 통해 생산된 작업을 동시대에 활약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 그리고 이론가, 패널과 다음 세대를 이어갈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자리였다.
2000년대 초반에 열악한 상황에서 독립했던 몇 안 되는 이들 중 일부는 유명 건축가 아틀리에에서 출발하여 독립한 이들, 또는 서울건축학교(sa)를 졸업한 이들과 같이 국내에서 수학한 건축가들이 있었으나 그들을 지금의 호칭처럼 하나의 젊은 건축가 세대로 묶기는 애매했다. 다양한 성격으로 집단화 되어 있었고 개중에는 나이와 상관 없이 독립한 이후에도 첫 작품이 없는 이들 그리고 젊은 건축가상 수상과 관계없이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서 작업의 기회를 모색하는 이들 모두가 동시대의 젊은 건축가인 것이다. 젊다는 것보다 이러한 제한적 현실에서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자신의 건축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과거 한두 개의 작품으로 시대를 풍미하고 묘연히 사라진 선배 건축가들의 모습에서 한때 난 우리 건축의 미래를 본 적이 있었고 그러한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10여년 전 지금 활동하고 계신 50년대 중후 반부터 60년대 생 건축가들이 파주 북시티나 헤이리 아트밸리를 통해 등장했을 당시 그 누구도 그들을 ‘젊은 건축가’라고 호칭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을 ‘생존’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았다. 물론 IMF이후 건축적 호황이라고 불릴만한 시대였지만 당시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만45세 전후의 젊은 건축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보았을 때 10년 전에 비해 현재 젊은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냉혹하지만 외연의 작업을 통해 또 다른 건축적 성취의 과정은 의미 있다고 본다. 특히나 우리와 같은 젊은 세대가 필요로 하는 레퍼런스 아키텍쳐 (reference architecture)가 부재한 이러한 현실에서 젊은 건축가들의 움직임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 속 생존만을 위한 몸부림이 아닌 생존을 넘어선 움직임이라 봐야 될 것이다.
전발: 10by200의 젊은 건축가 중 1인으로 정영한 대표 자신이 지목된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영: 그 부분은 오히려 박정현 편집장에게 묻고 싶다. 어떤 기준에 의해서 호명되었는지.
박편: 호명하게 된 주체는 새건협의 《건축과 사회》 편집위원들이었다. 처음에는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우려 하였지만, 그분들은 이미 기성 세대에 편입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와이즈 건축의 전숙희 소장을 부르려고 했는데 잘 알려진 건축가였기에 패널로 바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젊은 건축가상을 받지 않은 알려진 건축가를 불러내기로 했다. 말하자면 알려지지 않아서 모르는 건축가를 어떻게 알고 초대하느냐는 딜레마가 있었다.
전발: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불림 받은 건축가들 공히 실물로 완성된 건물이 많지 않다 보니 건축의 외연에 관심하고 있는 것을 이들 세대의 하나의 현상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들이 건축의 경계 안팎을 넘나드는 것에 대해 현장을 지켜본 비평가 입장에선 어떻게 바라보았나?
박편: 나는 이전 세대 건축가들과 최근의 젊은 건축가 세대와의 가장 큰 차이를 건축에 대한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4.3그룹 건축가들부터 시작해서, 그 전 세대는 무언가를 이야기 할 때 늘상 건축으로 말하기를 즐겨 했다. 단체활동이나 사회참여 활동에서조차 ‘건축으로 말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젊은 건축가들은 집 짓는 일과 설치와 전시 등을 구분해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건축이 반드시 설계하고 집 짓는 일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정: 이전 세대에게 건축은 엄숙하고, 경건하고, 무거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건축은 더 이상 엄숙하지도, 무겁지도 않다고 하는 것이 맞다.
박편: 지금 이야기하는 젊은 건축가 세대의 또 다른 특성이라면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사회에 나와서 설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나처럼 출판사 편집장도 있고, 미술관 큐레이터도 있고, 기획자도 있다. 설계를 하지 않으면서 건축계에서 발언한 사람들이 우리 앞 세대에 얼마나 있었나? 하고 살펴보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 또한 건축 내부의 다양성이라는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정영: 건축가들 또한 사회 참여도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대부분 개인 클라이언트의 집과 건물에 해당하는 민간 프로젝트가 공공 프로젝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렇다 보니 건축가들은 대체로 관념적인 건축 언어를 도구화 하여 건축을 탐구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박편: 10by200 열 번의 시리즈 중에서 건축적으로 제일 진지했던 분은 당연 정영한 대표였다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에 비해 작업한 양과 성과도 다르고 자기 건축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에서 차별화 되었다. 공교롭게도 정영한 대표가 제일 연장자였고, 오히려 예외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대부분의 젊은 세대 건축가는 다작의 설계를 통해 집을 지으면서 정보를 습득하는 세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영: 결국 레퍼런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우리 건축가들의 작업이 세계적 수준으로도 동시성을 지닐 만큼 유효한 것인지부터 또는 그것들을 지속적인 비평을 통해서 필터링 되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자문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현실적으로는 기라성 같은 앞선 선배들의 작업이 여전히 전 세계의 공통어로서의 건축이 유효한지에 대해 세대간의 관심이나 소통이 전혀 없다는 것이 내부적으로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영향들을 세대 물림 할 수 없으니 우리라도 먼저 자리를 마련하여 세대간의 소통을 넘어 사회와 그리고 대중과 소통할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이기: 소통의 부재라는 한국 사회의 화두는 건축계 내부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급격히 근대화를 맞은 한국사회는 짧은 시간대 안에 여러 세대가 촘촘히 공존하고 있으나, 다른 세대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차이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각각의 세대가 경험한 시대에 대한 입장 차이를 인식하고 공유하는 것이 여러 세대가 소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영: 세대 구분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국 건축 안에서 명확한 세대 구분이 있느냐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볼 필요성이 있다. 세대를 구분하는 키가 공존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에서 찾는 것이라면 사실 젊은 건축가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박편: 내 생각엔 한국건축에 세대 구분론이 존재한다고 본다. 재료를 사용하고 프로그램을 해석하는 입장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단적인 한 가지 예가 건축주의 변화다. 2008년 이후 전국적으로 땅콩집 짓기 열풍이 몰아치면서 생애 최초의 자기집을 장만하려는 건축주의 나이가 무척 젊어졌다. 대중매체와 인터넷 미디어의 효과가 작용한 것이겠지만 건축을 접하는 건축주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짚어보면 아파트 주거 문화에 대한 반발심리와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문화적인 배경도 참조할 수 있다. 아파트 값이 붕괴되면서 아파트 이외의 주거형태와 아이들의 참교육환경으로서 주거형태에 대한 젊은이들이 자각이 두드러진 것도 이유가 된다 이들 젊은 건축주는 대개 또래의 젊은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건축가가 많이 생겨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인 셈이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관계하는 방식도 분명히 달라졌다.
정영: 건축주의 세대 변화론은 이해되지만 건축계 내부의 세대 구분론에 대해 대중들은 특별한 관심이 없다. 건축하는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본다면 본질적인 세대 구분의 의미는 없다는 것인데 가까운 일본의 경우를 들어보자. 일본의 젊은 건축가들은 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주택시장에 뛰어든다. 그들은 이미 학교에서 그들의 레퍼런스 아키텍쳐를 통해 영향을 받고 현실로 나아가 실제적으로 수련을 쌓으며 자신의 언어를 구축해 나간다. 나는 그것 자체가 결국 세대 구분 론을 대체한다고 여기는데 우리나라에는 신진 세대 건축가가 자연스레 사회로 인입되는 공식이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 생각한다. 건축계 안에서는 여전히 5, 60대 건축가들도 3, 40대 젊은 세대도 경쟁으로서만 건축을 하는 풍경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클라이언트 층이 젊어지고 건축 외부의 환경도 바뀌었지만 그것 이상의 세대론의 의미를 찾아볼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젊은 건축가에서 기성 건축가로 편입되는 명확한 시점의 기준이 필요하다. 현실 속에서 다양하게 성취해온 작품의 수가 아닌 작업의 일관된 태도와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해 나가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까지 포함되어야 그들을 기성 건축가라 호칭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편: 과거에는 토건과 아트로서의 건축을 구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젊은 건축가들에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건축계가 나서서 토건의 몫으로 남아 있는 주택시장을 노려야 한다. 그 시장을 차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건축상황도 곧 일본이 겪은 길을 따라 갈 것이다. 점차 인구가 줄어 들고 수요가 적어지니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 사업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기대할 수도 없다. 자연히 도시에 잔존한 중소 규모 주택을 가지고 재생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다. 작은 프로젝트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건축의 일이 아니라고 치부해온 시장을 되찾는 것이 건축계 전체의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소통
전발: 정영한 대표는 ‘최소의 집’ 전시 기획으로 대중사회와 계속 호흡을 해오고 있는데, 현장에서 마주친 관객들의 수준은 어떠했나? 앞으로 연작 시리즈 기획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 정도는 아니었나?
정영: ‘최소의 집’ 출발은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지만 정작 대중들은 그들에게 맞는 적정공간의 이미지가 없었으며 그들의 생활이야기가 밀착된 다양한 공간의 이야기를 제시할 건축가들이 부재한 현실에 주목했다. 불과 10년전까지 집이란 아파트와 일부 계층에만 국한되어 있는 개인 주택(호화 주거)으로 주택시장이 양분화 되어 있었으며 건축가에게 주어진 기회는 큰 규모의 개인 주택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건축언어를 실험하고 생활이야기와 괴리되어온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제한적인 주거환경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전시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애당초 전시장 안에서의 대중과 소통의 괴리가 심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부분 전시를 보러 오는 이들의 질문에는 아파트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의 공간 크기인지 그리고 평당 얼마인지 등에 대한 질문들 마치 대형 건설사의 모델하우스에서 오고 가는 질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이 전시를 통해 라이프스타일의 이해와 분류, 분석 과정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하기로 했다. 예비 클라이언트들이 자신에게 맞는 생활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면, 결국 방의 개수 밖에 언급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전시 기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점이라면 대중과의 밸런스를 맞춰가되 그들에게 다양한 건축과 건축가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동시에 집의 본질적인 가치를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지속되다 보면 대중의 건축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동반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편: 그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에 몰리던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서울시에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자연히 LH에서 분양하는 신규 택지에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택지 크기는 70평으로 모양은 직사각형으로 똑같고, 주변의 맥락은 거세된 필지라는 것이다. 기준은 결국 얼마에 지었느냐 식의 얘기만 입에 올리게 되는 것이다. 아파트 중심의 사고가 단독 주택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기: 탈 아파트라는 시대적인 변화로 인해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고, 경제적인 집, 작은 집에 대한 주문이 늘어났다. 이는 이전의 고급주택에 대한 주문과는 그 내용을 달리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여유가 그리 넉넉하지 않은 건축주들이 젊은 건축가를 호출하고 있다. 비슷한 위치, 비슷한 규모의 대지에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건축주의 주문에 따른 결과물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건축적 색깔을 띠고 있지만, 다른 의미로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정영: 내가 ‘최소의 집’ 전시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집이 가지는 수많은 가치들 중 그 크기와 비용에 한정 지어 생각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었다. 싼 것,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본질적인 것들을 대중과 어떻게 공유하고 이 시대에 활동하는 건축가들이 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세대간의 인식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나에겐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건축계 내부에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외부의 대중과 건축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균형을 갖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집 짓기의 갑작스러운 열풍으로 대중이 좀더 쉽게 집을 소유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공유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집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공유하기엔 아직 해야 할 일 들이 많이 남아 있다. 집은 항상 부동산의 가치로 회자되다 보니 당연 대중들의 시선은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나 그들의 고민 보다는 토건으로 그 관심이 몰려 갈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사회적 협력주거라는 모델이 최근에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공유에 대한 개념이 서툴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모델을 제시해도 그것을 경험하려는 사람들의 인식 구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성공할 수 없다. 인식 구조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의 개편도 중요하겠지만 사회의 다양한 공유 모델을 위한 건축가의 실천영역 또한 확장되어야 될 것이다
전발: 이정훈 대표가 철강회사 럭스틸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설치작업은 넒은 의미에서 건축과 일반사회와의 관계를 여는 작업이었다고 본다. 작업 자체에 대한 건축가 스스로의 평가가 궁금하고, 대중사회와의 연결 고리라는 관점에서 건축가의 설치작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정: 건축이라는 직종은 경제에 상당히 많은 액티비티를 일으키는 중요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마켓을 리드하는 사람들이고, 마켓에 양질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가치를 제시하는 사람들인데 실제론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한다. 먹이사슬이 전무하다. 럭스틸에서는 건축가와의 협력작업의 결과물이 단순히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닌 건축계의 반향을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왔다. 경험으로나 역량으로나 굉장히 부담스러운 기회였지만 이러한 기업의 펀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우리가 리드하는 마켓의 시장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경기가 좋았을 때 기업으로부터의 펀드 개념을 이용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놓았더라면 다양한 수요를 소화해낼 수 있는 구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 같은 시장의 가치를 파악하고 잘 활용하고 있다. 신선한 디자인이 나오면 그것을 가지고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의해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그게 다시 시장에서 선순환이 되는 먹이사슬의 구조를 알고 적절히 이용하기 때문에 건축가를 무시할 수 없는 사회 구조가 안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플랫폼
전발: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분들의 작업들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단체활동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제도권 안에 있는 단체와의 거리를 두는 이유나, 단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인상들에 대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기: 나는 가협회 소속 젊은건축가위원회에서 주관하는 Haushow 프로젝트와 문광부에서 주관하는 ‘국제건축문화교류사업’의 진행을 맡았다. Haushow는 2013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건축계 내부의 건축잡지가 아닌 대중잡지를 파트너로 정했다.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40대로 구성된 6명의 건축가들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클라이언트와 1대 1로 만나 7개월에 거쳐 설계를 진행했고, 이 과정을 《여성중앙》에 게재했다. 이후 그 결과물을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토크쇼를 통해 공개하였다. 그리고 그 중 한 개의 프로젝트는 실제로 지어지게 되었고, 건축가와 건축주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는 30대 젊은 건축가 7팀의 ‘옆집탐구’ 전시회를 시작으로 작년부터 <시즌2>를 진행 중이다. 또 일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집짓기 교육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기획을 위한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에 비해 작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국제건축문화 교류사업은 문광부로부터 충분하지는 않지만 예산이 지원되고 있어, 여건이 좀 나은 편이다. 이 사업을 통해 9팀의 젊은 건축가를 선정해 해외문화 탐방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그 결과물들을 정리해 출판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공유할 예정이다. 3,40대의 젊은 건축가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련단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정: 공적 기관까지는 아니지만, 단체에서 해줘야 하는 역할이라는 게 있다. 그런 역할이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럭스틸이나, 현대카드가 건축을 매개로 하여 마켓을 확장하고 대중과 소통하려는 것이 최근의 흐름인데 그와 같은 프로그램이 왜 나왔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박편: 우리나라 직능단체의 문제는 이익단체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협회라면 응당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세 개의 단체 중 실질적으로 세력이 크고, 예산도 가장 넉넉한 사협회의 이미지는 설계를 하는 사람들의 협회가 아니다. 대척점에 가협회가 있지만, 건축계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 못한다. 재정적 문제도 있지만, 직능을 위해 아무것도 할 제도적, 법적 힘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RIBA가 힘을 가진 이유는 이익단체로서 영국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아돌프 로스의 로스하우스가 한때 빈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설계 변경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을 때, 오스트리아 건축가협회가 보여준 태도는 인상적이다. 건축가가 한 일을 가지고 왜 논란을 만드냐며, 직능단체로서 설계 변경에 보이콧을 선언한다. 우리나라에서 서울시 신청사 공모전의 결과를 둘러싸고 숱한 공방이 오고 갈 때 우리나라의 건축3단체는 구성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3단체가 하나의 단체로 합치기 전에는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젊은 건축가들은 늘어나는데 이 단체에 유입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기: 어느 단체나 늘 묵묵히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 단체가 유지되어 나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상황에 지친 나머지 하나, 둘 빠져나갈 때는 많이 아쉽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젊은건축가위원회를 운영해 오면서, 외부에서 단체를 바라다 보는 시각 역시 세대간 시각 차이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젊은 건축가 그룹의 적극적인 활동이 더욱 필요하다.
정영: 나는 일찍이 그러한 건축 단체의 구조를 알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최소의 집’ 전시를 기획하면서 단체의 후원을 원하지 않았다. 세 개의 협회가 합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건축가들은 직능 단체로부터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본다.
이정: 처음 젊은 건축가포럼 코리아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이야기 했던 부분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말고 우리끼리 판을 만들고 플랫폼을 제시하자는 것이었다. 젊은 건축가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도 마땅한 창구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창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젊고 새로운 작업을 한 건축가에게 발표의 기회를 주고, 그것을 성장하는 학생들이 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다면 가라앉은 건축계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되도록 집단주의를 멀리하고 모임의 구성원들도 건축가가 중심이긴 하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섞어서, 새로운 멤버들을 찾으려고 의도했다. 이제 포럼이 시작된 지 몇 해가 지났다. 개개인의 권위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구성원 각자의 자발적 참여가 포럼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정영: 기존에는 그와 유사한 시스템이 전무후무했다. 건축가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생적으로 풀어나가는 움직임에 대한 모습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젊은 건축가포럼은 그런 측면에서 건축계의 한 단계 진화를 알린 신호탄이라 생각한다.
이정: 개인적으로 몇 번에 걸쳐 젊은 건축가포럼을 진행해봤다. 젊은 건축가들을 찾아서 전화해보면 그들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포럼에 참여의지를 밝히곤 했다. 그때마다 느낀 것이 열망이 엄청나구나 하는 동류 의식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 세대가 공히 할 이야기는 많은데 플랫폼이 부족하다.
이기: 가협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구성원은 대부분 나이가 50대 이상이다. 젊은건축가위원회가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의 작은 연결고리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이정: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한국에서는 제대로 실무를 할 곳도, 건축가에게 사사하는 개념도 없다는 것을 적시해야 한다. 기댈 곳도 없고, 배울 이도 없는 것이 답답한 현실이다. 자연히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자기 일을 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기: 누가 누구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인지, 또 그 날개를 달고 가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정영: 단체가 이런 변화되는 현상에 개입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단체가 주가 되어 휘둘렀던 시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 ‘젊은 건축가포럼’이 되었든, ‘최소의 집’이 되었든, 박창현 소장이 하는 ‘인터뷰’든 게릴라 식의 움직임을 객관화하고 동시에 긍정적 시선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이고, 그들을 단체 내로 끌어들이려 도모하기보다는 각각 프로그램의 고유성을 지켜봐 주면서 단체가 어떤 형식으로 지원해 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 까 한다.
이정: 의외의 말로 들리겠지만 건축판에도 적당히 거품이 끼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외국에서의 일인데, 어떤 부유한 클라이언트가 주택을 짓고자 하는데 건축가가 바빠서 못 간다고 하니 헬기를 보내오더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이런 게 거품처럼 들리고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생각이 드냐면, 사회라고 하는 곳이 비전을 사고 파는 곳이지 않는가. 외국 건축가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던 일본의 어떤 친구 얘기도 떠오른다. 언젠가는 구마 겐코가 되고 시게루 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다고. 꿈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누구를 롤모델로 하고 싶지? 라고 했을 때, 우리에게 그 ‘누구’가 있냐는 것이 핵심이다. 과연 한국에서는? 선뜻, 없다는 것이 절망적인 부분이다. 생태계가 무너진 까닭이다. 그런 측면에서라도 일정 정도의 거품이 우리 건축 사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영: 우리 모두 10년 뒤에는 생물학적인 이유만으로도 젊은 건축가의 호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있다. 그러나 10년 뒤 지금 우리와 같이 활동할 또 다른 세대의 젊은 건축가들조차도 우리가 겪고 있는 열정의 희생을 강요당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단지 젊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희생과 재능기부를 강요받고 있다. 젊다는 것을 경제적 논리로 삼아 열정 페이(저가의 설계비)를 사회가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 해외에는 건축가라고 하는 집단이 다층화되고 있다. 저급한 수준의 건축가도 존재하지만 일반 클라이언트 사회에 특A급의 건축가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건축 집단을 높게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조성되어 있다.
정영: 건축가의 노쇠현상은 지금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다. 젊었을 때 세인의 관심과 주목에 휘둘리다 보면 정작 자기 건축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러 힘을 쓰지 못하고 멍해지는 구조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한국도 점차 유학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레퍼런스가 없기 때문에 저들 대부분의 젊은 세대 건축가들의 출발은 많이 힘들 것이 예상된다.
이정: 그래도 최근 런던 전시를 다녀와서 조금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외국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주목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어떤 시스템이 도입되느냐에 따라 건축판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의 확신이 들었다.
정영: 나는 그런 시스템의 도입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체적으로 우리가 후배들을 위한 건강한 무브먼트를 만들어 줘야 좋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은 과거에 없던 것이기 때문이다.
비평
전발: 파리에서의 전시나 런던 전시는 새건협이 주도적으로 개입하여 수행하였지만, 협회 내 자체 인력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다. 대학의 역사이론 교수나 비평가들이 동참하여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에 계간지 《건축평단》이 창간되었다. 비평공간의 필요성을 느끼는 비평가들이 세력화되면서 건축계에 어떤 형태든지 개입하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오늘 좌담의 마지막 화제로 비평이 가져야 하는 건축계 안에서의 방향성이나 위상 이런 점들을 함께 이야기 하면 어떨까.
이정: 프랑스에서의 짧은 경험이지만, 비평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비평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비평이라는 것이 사회의 프레임을 제공하기도 한다. 비평의 존재 이유는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닌, 대중에게 좀더 서비스된 의미에서 프레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문의 독해가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평은 독해가 어렵다. 그러한 비평은 깊이 있는 비평이라는 영역에서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비평이 그렇게 되면, 비평의 창구 역시도 없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비평의 지평이 다양하지 못한 것은 이 같은 얇은 층위에서 오는 것 같다. 깊이로서의 비평과 친절한 비평이 있어야 한다. 그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미 있음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비평이 절실하다.
이기: 언제부터인가 비평은 죽었다거나, 비평의 필요성 자체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이는 비평이 건축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 나온 얘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의 건축 현실에 맞는 새로운 비평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건축가가 작업을 통해서 건축을 생산해 낸다면, 비평가들은 글쓰기라고 하는 도구를 통해 현실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영: 건축문화가 성숙하려면 건축가, 이론가, 비평가 서로의 작업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고 끊임없는 자극을 통해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축가 스스로가 이론을 무장하고 현실적으로 건축작업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그 수위를 유지함이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건축가의 작업을 객관화 하여 들여다보는 생산적인 비평의 글쓰기가 요구되지만 한동안 그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에서 《건축평단》의 등장은 좋은 현상으로 보인다. 다만 비평의 대상이 될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 또한 건축가들로부터 능동적 참여를 유도할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참여의 방식이 달라지면 비평의 내용 또한 누구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사용자 (또는 거주자)들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어 비평의 결과가 또 다른 건강한 건축의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정: 건축 글쓰기를 통한 대중과의 연결고리라는 점에 있어서 최근 들어 그 역할을 일간지 기자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다양한 계층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비평이야말로 건축판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건축가로서 자기가 작업하는 게 어느 위치에 있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건축가 스스로가 자기점검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비평이 그 역할을 해줌으로써 건축가로 하여금 단계 상승을 위한 환경조성이 가능할 수 있다. 외국건축가들도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언어적 훈련을 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내놓은 키워드가 당대의 중요한 메시지가 되고 메시지가 타 분야를 리드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서 굉장히 생산적인 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 면에서 비평의 역할이 파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시장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거시적이든 통시적이든 비평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영: 비평 자체가 가지는 스펙트럼이 커져야 할 것이다. 앞서 논의한 건축계 내의 세대 구분론과 더불어 비평 또한 건축계로 진입하는 다양한 세대의 건축가들에 대한 객관적 시선과 비평을 아끼지 말았으면 하고, 지속적인 비평 문화를 위한 그들의 생산적인 비평과 글쓰기를 위해 좀더 건축가들은 건강한 작업들을 생산할 수 있게 노력하여야 하며 동시에 그러한 작업들이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또한 기대해 본다. 과거에는 없었던 다양한 젊은 건축가들과의 포럼, 전시, 협업 등은 생존을 위한 건축 외연의 활동으로만 볼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객관적 시선을 갖는 비평의 또 다른 출발이라고도 생각한다.
이정: 비평이 활성화 되어 건축가의 작업을 생산적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편: 분명한 것은 저널리즘과 비평은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둘은 역할이 다르다. 비평이 힘을 지니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젊은 건축가들이 쏟아져 나오는 수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역사이론 연구자들이 많지 않는다는 것이다. 5년제로 바뀌고 나서 공부하려는 이들이 더 줄었다. 그리고 건축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이 현장을 잘 모른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건축가 사회와 비평가 사회의 제일 큰 괴리가 일어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이론비평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은 잡지를 거의 보지 않는다. 우연히 비평을 할 기회가 생기기 전에는 나 역시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글이 글을 대상으로 삼는 문학 비평과 건축 비평은 다르다. 미술 시장의 흐름과 미술가의 자율성을 전제하는 미술과도 사정이 다르다. 공부하고 살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글을 생산하는 매체의 책임도 피해갈 수 없는데, 《와이드AR》이나 《SPACE》등 몇몇 지면들 공히 글을 생산해 내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좋은 글이 생산되지 않으니 건축가들 또한 저널리즘에 관심이 없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건축가와 비평가가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유지할 때 생산적인 비평이 가능하다. 프로젝트를 보고 즉각적으로 반응해 비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인상 서술에 그칠 공산이 크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건축담론에서 제일 시급한 것은 비평이 아닌 역사다. 한국현대건축의 역사는 건축가에게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모두 미답지로 남아 있다. 자신의 작업 또는 비평의 대상을 역사의 흐름 속에 위치시킬 수 있는 문맥이 매우 약하다. 정영한 소장이 말한 레퍼런스는 역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전발: 장시간에 걸쳐 우리 건축판의 건축가 날개 달기 프로젝트에 대한 의미와 성과,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한국건축의 생태계를 점검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본지는 2015년 연중 기획으로 젊은 건축가들과 그들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호(44호)에 박창현(a round건축) 대표의 ‘르뽀, 70년대 생 건축가의 리얼 인터뷰’ 글에 이어서 이번 호에는 여러분들의 좌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젊은 세대 건축가들의 현재와 꿈의 일단을 짚어볼 수 있었다. 좋은 시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 드린다.
(녹취 및 정리: 공을채 <와이드AR>외래기자, 감수: 박정현 <와이드AR> 편집자문위원)
[<와이드AR> 45호, 기획좌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