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UM》의 탄생을 축복하며

건축 지식인의 빈곤이 불러온 한국 건축 잡지 시장의 불안정한 생태계

 

 

신생 건축 잡지 《DOCUMENTUM》을 받아들고 가슴으로 밀려오는 신산(辛酸)한 바람에 잠시나마 상념에 잠긴다. 간절함과 벅참이 교차한다. 건축판에 기록의 의미가 열풍처럼 번지는 이즈음의 시류에 맞춤한 잡지다. 《DOCUMENTUM》(발행인 김용관, 편집장 김상호). 창간을 전후로 뱉어지는 발행 편집자들의 소회를 귀담아듣는 것이 예의일 테지만 이 잡지를 펼쳐들고 있노라면 굳이 그 같은 행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책을 발행하는 주체들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어떻게 하려 하는지, 지면 한가득 속속들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어떠한 선언적 문장보다도 보이는 그 자체에 힘이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제호로부터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발행주체의 의지에 무한한 공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맛본다.

 

새 잡지는, 새 잡지를 응원하는 건축판의 분위기는, 곧잘 새로운 것을 탐하는 사적, 공적 욕망의 덩어리들이 모여서 기존의 잡지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거울로 비추인다. 건축인 다수가 기존의 건축 잡지와 행동을 같이 하지 못하는 잡다한 이유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새 잡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악어새처럼 공생(그것이 상리공생-서로 이익이 되는 관계-이든, 편리공생-한쪽만 이익을 보고 다른 쪽은 이익도 손해도 없는 경우-이든) 구조를 연상시키는 그런 추임새의 윤곽에 우리 건축판과 건축저널리즘이 공조하지 못하는 아픈 사연들이 개입되어 있음을 본다. 철새처럼 몰려왔다가는 어느 한순간 사라져버리는 그들은 늘상 악어새의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

 

월간지 《C3》(2014년 7월 현재 통권 359호 발행)가 올해 9월호로 창간 30주년을 맞는다. 월간지 《건축문화(A&C)》(2014년 7월 현재 통권 398호 발행)는 올해 9월호를 기해 대망의 400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월간지 《SPACE》(2014년 7월 현재 통권 569호 발행)는 오래 전에 500호 발행이라는 기념비적 시대를 열었고 근년에 잡지 매각에 따른 발행주체의 교체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2년 뒤에 맞을 창간 50주년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다. 이들 잡지로 말미암아 한국건축 잡지 역사의 지면이 매월 갱신되고 있음을 보는 건 특별한 기쁨이다.

 

그 사이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를 아우르는 참신한 기획과 편집으로 90년대 중후반 1만 부를 웃도는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했던 《플러스》, 부산경남지역 기반으로 야심차게 창간하여 전국지로 부지런한 행보를 보였던 《이상건축》, 건축비평과 사회성을 강조하며 신진 건축가들과 비평가들의 호응을 끌어냈던 《POAR》 등의 건축 잡지가 김수근, 김중업 사후 세대교체기를 겪는 1986∼1996년 사이에 등장하여 건축저널리즘의 일신된 면모로 건축판의 층위를 두텁게 해나가는가 싶었는데 외환위기의 시기를 힘겹게 지나오며 이들 모두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이상건축》과 《POAR》는 창간 후 10년을 고비로, 《플러스》는 25년의 고개를 넘어서는 도중 안타깝게도 폐간되었다.

 

계간지 《비평건축》, 격주간지 《건축저널》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춤으로써 발간 당시 보여준 파격과 의욕적 존재감을 떠올리는 일부 소수의 독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그보다 오래 전에 건축, 인테리어, 가구, 조명 등의 토탈디자인 매체를 표방했던 격월간지 《꾸밈》의 충격적인 폐간으로 말미암아 전문 상업 잡지의 침몰이 현재형이라는 자각을 불러일으킨 이후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어지는 후발 잡지들의 폐간 소식이 건축판에 미치는 영향은 상고(詳考)되기는커녕 가십거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미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돌아보면 앞서의 《꾸밈》, 《이상건축》, 《플러스》, 《POAR》 및 최근의 《SPACE》에 이르기까지 모두 현직의 건축가, 비평가가 창간한 잡지로 경영에 실패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외부 편집 전문 인력의 투입, 매각에 의한 발행주체의 변경, 폐간의 반복된 과정을 겪었다.

잡지는 기본적으로 발행자의 최초 의지가 중요하고, 의지를 북돋을 수 있는 자금력이 뒤를 받쳐줘야 하는데 종종 후자의 요인으로 인해 최초의 발행의지가 꺾이고, 차마 폐간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운영하다가 급기야 외부의 자금력에 기대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불안전한 발행의지를 지닌 제2, 제3의 발행주체들이 바통을 이어받게 되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잡지시장의 속성에 난타당한 연후에야 잘못된 선택을 후회했고 퇴로가 막힌 상태에서 종국엔 잡지를 덮어버렸다. 잡지의 발행권을 사고파는 시대가 지났음을 저들이 간과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근년에 매각 절차를 밟은 《SPACE》의 상황은 이례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나마도 얼마 되지 않았던 전체 건축 잡지 독자의 수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발행주체의 변경으로 인한 배신감 또는 관심 없음으로 변질된 독자의 성향이 종이 잡지와의 거리두기를 선호하게 되는 것은 예고된 현상이었고, SNS를 통한 1인 미디어 시대의 개막과 전자책 시대의 도래와 겹쳐지면서 종이매체로서의 건축 잡지의 추락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심화되었다.

 

현재 각 건축 잡지사의 운영은 서점 및 정기독자에 의한 판매수입을 근간으로 취재 관련하여 수집된 자료를 가공한 작품집 형태의 단행본 출판과 건축 인접 장르로 확장된 잡지의 추가 발행에 의한 수입원의 다각화 그리고 광고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편 잡지는 독자의 구매에 의한 자립구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음으로 인해 각각의 상업 잡지 발행주체들은 잡지저널리즘의 발전에 올인 하기 보다는 여타 부대사업에 총력을 쏟고 있음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과거 10년 전의 상황과 현격히 달라진 게 있다면 단행본 출판 시장이 침체기에 있는 국내 여건을 피해 이들 잡지사의 출판물 다수가 국외 시장으로의 수출을 전제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 땅의 종이매체가 보여주는 건축저널리즘에 과도할 정도로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대체로 상업 잡지가 지닌 속성으로부터 기인한다.(이 글에서는 건축 잡지(신문 포함)저널리즘에 대한 논의를 최소화한다. 깊은 논의는 다음 기회에 재론토록 하자.) 구조적으로는 잡지사의 허약한 체질과 만성이 되어버린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좋은 인재가 뿌리를 내리는 데에 한계가 있고, 전체 건축 잡지사를 통틀어 종사자의 수가 제한적인 까닭에 통상의 직장으로서도 존재감이 취약함은 물론이려니와 전문직으로서의 기자, 편집자에 대한 건축계 내에서의 인식조차 미미한 것이 이유가 된다. 정황이 이러할진대 건축 잡지 바깥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에 날을 세우기조차 애매하며, 그것의 한 증상이 독자의 증발로 드러나는 잡지 시장의 생태계에 대하여 뭐라 항변할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개개인이 외국 건축의 신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손쉬워진 오늘날 종이매체의 생존전략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사적이다. 국내외 건축신정보를 분류 가공하는 편집태도를 기본으로 제작에 임하는 것은 필수항목이 되었다. 또한 자국어 포함 2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시장의 글로벌화를 꾀하는 것 또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국내외를 망라하고 제한된 독자(또는 소비자)를 겨냥한 맞춤한 편집전략으로 카테고리형 잡지 또는 단행본의 형식을 빌어 제작과 동시에 전량 소비를 목표로 하는 등 영업력과 편집력이 동시에 운용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대응하는 잡지(출판)사의 경영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뿐 아니다. 예전처럼 책의 소비에 대한 예측 이전에 발행부수를 앞세우는 무모한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거품을 줄이고 구독자의 수를 정량화하여 그에 맞추어 발행 목표를 수정,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잡지사 대부분 최적의 발행 수량 파악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는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잡지를 구성하는 실제 독자수가 매우 중요하다.

 

한번 물어보자. 국내 건축 잡지 시장을 움직이는 유효한 독자(기증 독자를 제외한) 수는 전체 잡지를 통틀어 얼마나 될까?

공익재단이 발행하는 무가지(《건축신문》) 및 협회지(《건축사》, 《건축과 사회》, 《건축사신문》)를 제외한 건축 잡지(신문 포함) 《SPACE》, 《건축문화(A&C)》, 《C3》, 《건축세계(AW)》, 《와이드AR》, 《AN뉴스》, 《DOCUMENTUM》의 자발적(서점판매 및 정기독자를 합한) 총 구독자수는 7천∼1만 구좌 사이일 것이라 추정한다. 실제 구독자수에 대한 집계는 발행부수보다도 더 극비로 관리되고 있는 터라 인쇄소, 서적유통회사와 도서 방문판매영업을 하는 이들의 구두 정보를 기초로 집계할 수밖에 없기에 다분히 선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지만 이것조차 최대치로 추정한 것이다. 당연히 90년대 극에 달했던 발행부수의 거품은 꺼진 지 오래다.

상업 잡지가 죽을 쑤고 있는 상황과 달리 (사)대한건축사협회의 협회지 《건축사》지는 매월 1만 부 이상을 발행하며 건축 업계의 잡지(상업지 및 기관지 포함) 중 단연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서점 판매 및 정기구독자에 의한 수입과 무관하게 발행하는 전체 부수를 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공급하고 잔여분은 유관기관에 무상 제공하고 있으니 발행부수 전량이 소화되고 있는 유일한 잡지임에 틀림없다. 이 잡지는 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징수한 회비의 일부가 잡지 제작에 투입되고, 단체는 회원 관리차원에서 《건축사》(2014년 6월 현재 542호 발행)를 매월 발행하여 무상 공급해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방의 건축인 사이에서는 이 잡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협회 동정, 기관 소식, 몇 개의 아티클, 그리고 회원들의 작품 중 선정작을 게재함으로써 기록한다는 의미에서의 기본적인 잡지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렇게 길들여진 소위 건축전문가들에게 상업 잡지의 건축저널리즘이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 가다.

꼼꼼히 읽든 건성으로 읽든 매월 책상 위에 배달되는 협회지 독자층의 눈높이를 자극하며 그들의 곁눈질을 가능케 하는 방도는 잡지 편집자의 기획력과 글로벌한 정보력에 달려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을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는 잡지라면 《C3》가 단연 선두를 달린다. 이들은 매호 글로벌 건축의 트렌드를 몇 개의 주제어로 선별하여 단행본에 가까운 잡지를 생산하고 있다. 《AN뉴스》는 국내 건축 및 인테리어업계의 광대역 네트워크를 가동하여 포트폴리오형 지면을 구성하고 있는 매체다. 잡지의 지령이 갖는 전통과 국내외에서의 인지도 및 다루는 주제의식에서 《SPACE》가 독보적이라면 《건축문화(A&C)》는 게재하는 건축 작품의 스펙트럼 면에서 국내 잡지 중 가장 폭넓게 편집에 반영해오며 지방과 수도권을 아우르는 오래된 독자층의 구독률이 높은 잡지로 정평이 나 있다. 여기에 비평 기반 한국 건축의 지형도를 떠내는 본지(《와이드AR》)까지 가세한 건축 잡지의 경쟁력이라면 뭔가 이전과는 다른 성과를 내야 옳을 터 현실은 수십 년을 답보상태, 아니 점점 더 나빠지는 잡지환경과 마주하고 있음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이유를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건축인의 수적 빈곤에서 찾는다. 전국의 건축학과 대학교수 중 자발적으로 국내 건축 잡지의 구독자가 된 자는 몇인가? 내로라하는 신진, 중견 건축가들 중에 자발적으로 국내 건축 잡지 한두 권쯤 구독하는 자는 몇인가? 통계로 확인하는 전국의 건축사사무소가 무려 8천 개소를 웃돌고, 건축사 면허를 취득, 협회에 등록한 이들이 1만 명을 훨씬 웃도는 데 그들 중 협회지를 제외한 국내 건축 잡지 구독자는 몇인가? 더욱이 학생은 제하더라도 스스로 건축가라 호명하는 이들 그리고 소위 건축 지식인으로 불릴 수 있는 청년 건축인들까지 가세한다면 전문가 사회가 배경을 이루고 있는 건축 잡지 시장으로서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인데 불구하고 현실은 상상 이하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참담한 결과가 앞서 언급한 주요 건축 잡지들의 폐간 혹은 매각을 부채질한 격이 되었다.

 

건축 산업의 진흥과 공공건축의 발전을 위해 법제도로 무장한 건축 환경의 구축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래서 건축가 혹은 건축사들의 위상이 보전됨은 의심할 여지없지만 건축인들이 의식적으로 배제했거나 부인하고 있는 건축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의 회복과 기여야말로 건축문화의 발전과 함께 건축을 향한 민도(民度)를 신장하는 데에 필요 불급한 것이다.

 

단언컨대 건축 잡지 시장의 위축은 건축 지식인 사회의 빈곤지수를 일컫는다. 그나마 희망의 끈을 이어주는 것은 구독자와 후원자로서 국내 건축 잡지의 존재감에 힘을 실어주는 극소수의 건축 지식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DOCUMENTUM》과 같이 호기롭게 출현한 건축 잡지가 지속가능한 발행 체제를 갖추는 것은 발행주체의 몫에 더하여 여직 긴 동면(冬眠)에서 깨어나지 않은 다수의 건축인들이 독자의 대오에 합류하여 지식인의 표상을 몸소 실천할 때 가능하다.

어렵게 탄생한 《DOCUMENTUM》에 건축인 다수의 응원이 모아져 잡지가 저널리즘에 입각한 콘텐츠만으로도 사랑받고 승승장구한다는 유쾌한 사례를 우리도 한번 가져보자. 적어도 건축인의 한쪽 손, 가방 한켠에 국내의 건축 잡지 한 권쯤 들려있는 초상(肖像)이 행복의 건축을 향한 우리의 미래를 밝혀주는 건축의 지수(指數, Architectural Quotient)로 작동될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와이드AR> 40호, 2014년 7-8월호, 전진삼의 para-doxa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