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대로 될 지어다

네이밍(naming), 건축사사무소 작명의 비밀

 

딱히 건축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건축설계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건축인들의 사정이 특히 어렵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님에도 어려움은 늘상 현재형이며 당하는 입장에선 곧장 어두운 미래로 연결 짓는다. 이참에 공부라도 할 요량이라면 쉽게 썼다는 장하준의 《경제학강의》를 펼쳐보아야 하나? 그 안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책이 무척 두껍던데, 독자의 눈치를 이미 살폈던지 출판사는 요약본을 별도 제작하였다. 아, 그렇구나. 저자의 브랜드만으로도 안심할 수 없으니 홍보할 바에야 제대로 하자는 거겠지. 게으른 독자와 친해지기. 다시 건축판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어렵기는 매양 마찬가진데 체감하는 온도는 천양지차다.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이 보인다. 좋은 생각이 좋은 일로 거듭난다면 누군들 좋은 생각을 안 하고 살까보냐. 오늘 나(우리)는 문제없다고 살아온 이들도 현실을 무시하기엔 건축세상의 내일이 불확실하다. 생각의 시작은 그랬다. 하는 일마다 꿈꾸듯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꿈도 꿈 나름이겠지만. 내가 세상을 향해 호명한 그 이름대로 건축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불현듯 선후배 건축가들의 사무실 작명에도 시대적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끼어들었다. 졸지에 건축사무소들의 작명 관련한 속 얘기를 들어보고, 그 안에 담긴 건축하는 태도를 주시하기로 했다. 살다보면 자신의 이름이 지닌 소박하거나 거창한 의미를 잊고 살기가 태반인데… 소위 개업 당시의 나(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유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꼬박 삼일 동안에 문자메시지 기능을 통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덤덤히 사무소를 꾸려가는 대표자들을 대상으로 설문했다. 일부, 저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무소 작명의 배경 또는 의미를 전달한 이들은 옮겨 적었다. 결과적으로 건축사사무소의 명암이 저들이 깊이 생각했거나 우연히 집어 든 이름자로부터도 기인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더도 덜도 말고 이름만큼만 살아지면 성공한 거다. 건축설계 사무소의 성패, 이름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건축설계 사무소 명칭의 유형을 구분해보면 건축의 명제를 정의한 유형(이하 A유형), 건축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 유형(이하 B유형), 건축태도 및 전략을 제시한 유형(이하 C유형), 기타 유형(D유형)으로 크게 구분된다.

A유형의 경우는 주로 50~90년대 초반에 걸쳐 개업한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주로 발견되고, B유형의 경우는 40년대 이후 최근까지 고루 등장하며, C유형의 경우는 2000년 이후 집중적으로 출현한다는 특징을 보인다고 정리할 수 있다. A유형이 건축에 대한 모호한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데 반해, C유형은 건축에 대한 정의보다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한편 B유형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거나 건축 작업의 방해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작명의 지향성을 배제하고 자유롭게 사고함을 전제로 전문가 자신을 승부수로 내건다. D유형은 우연과 아이러니에 기댄 작명수법으로 활용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이 네 가지의 유형 중 A-B-C유형은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건축 작업의 의뢰인들에게 첫 인상으로 주어지는 사무소 명칭의 이미지도 일을 수주하는데 있어서 무용하다고는 단언키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경제적으로 불황기에도 잘 되는 사무소는 이름부터 느낌이 다르다. 왜 그런가? 여기 정리한 건축설계 사무소들의 이름(해설 포함)을 음미해보면서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을 얹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기술의 편의상 ‘건축사사무소’ ‘건축연구소’는 ‘건축’으로 통일했다.)

 

A유형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이후 건축설계업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초창기, 일군의 건축가들이 공동 작업에 기반한 사무소(종합건축과 신건축문화가 대표적) 운영체제와 사업목표를 반영해 작명하는 한 현상이다. 대표 건축가가 1인이라 하더라도 구성원에 대한 배려 또는 건축의 목표를 향한 공동성을 강조하는 유형이 여기에 해당된다. 작명의 원칙이라고 한다면 2음절 중심(건축사무소, 연구소 등의 표기 제외하고)으로 한자 조어가 함의한 뜻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간혹 1음절 혹은 3음절 구성도 발견된다.

(이하 표기원칙: 사무소명_초기 대표자 혹은 중심인물)

종합건축_이천승, 김정수

신건축문화_엄덕문, 정인국, 김희춘, 김창집, 함성권, 배기형

공간건축_김수근

희림건축_이영희

정림건축_김정철, 김정식

서울건축_김종성

원도시건축_윤승중, 변용

건원건축_양원재

무영건축_안길원

일신설계_이용흠

범건축_강기세, 박영건

간삼건축_지순, 원정수, 이범재, 김자호, 이광만

광장건축_김원

아키반건축_김석철

이공건축_류춘수

예공건축_우경국

한울건축_이성관

아르키움건축_김인철

기오헌(寄傲軒)건축_민현식

 

1990년을 전후하여 개업하는 사무소의 한 패턴은 A유형을 유지하되, 보다 예시적인 작명의 배경을 내세우며 이전까지의 건축설계 사무소 명칭이 지녔던 일방향적 선언에서 한 걸음 진화된 양상(서사적이며 문헌 지향적 경향)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2000년대 개업하는 신진 건축가들의 사무소 명칭, 설계 전략 또는 건축의 외연에 대한 시선두기 등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1, 2세대 건축설계 사무소들이 그러했듯 관념적이라는 점에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로재(履露齋)건축_승효상

: 직역하면 ‘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아름다운 뜻의 이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내 방에 걸려 있습니다. 퇴색된 단청이 칠해진 틀 속에 품위 있는 글체로 쓰여져 대략 20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났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이 현판을 내게 준 사람은 한국미술사학자인 유홍준 교수입니다. 내가 그의 집 ‘수졸당(守拙堂)’을 설계해 주면서 답례로 그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것을 내게 준 것입니다. 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로재의 뜻은 주역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옛날에 가난한 선비가 연로하신 부친을 모시고 살았는데 이른 아침 마다 외투를 걸치고 노부의 처소 앞에 가서 기다리다가 기침 후 밖으로 나오시는 노부에게 따뜻해진 겉옷을 입혀드린다는 내용이며, 그 노부의 처소까지 가는 길을 이슬을 밟는 길, 이로(履露)라고 부른데서 비롯되는 아름다운 고사입니다. 나는 이 현판을 받고 그 때까지 사용하던 내 사무소의 이름을 이로재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이로재는 내 사무소의 이름이지만 동시에 내가 건축설계를 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며 내 사고의 근간을 만드는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림건축_임근배, 조용귀

해안건축_윤세한

솔토지빈건축_조남호

: 솔토지빈은 시경 북산지계편 시귀절의 일부입니다. 시의 해석에서는 온 세상, 온 누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느릴 솔(率), 흙 토(土), 관형격조사 지(之), 경계라는 의미의 빈(濱)입니다. 따라서 저는 온 세상 같은 큰 범위라기보다는 인식 또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범위라는 뜻으로 마을 같은 작은 영역일 수도 있고, 도시 같은 보다 큰 영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향보다는 도시 같은 물리적으로 구체적인 대상 안에서 구하는 것이라는 사심 섞인 해석도 더해 봅니다.

가와건축_최삼영

: 한자어 집 가(家), 우리말 조사‘와’의 조합어 입니다. ‘장인정신과 함께 하는’ 이란 뜻이기도 하지요. 한자에서 묻어나는 모습처럼 작은 주택 일들로 사는 군요. 이름 덕에 소박하게나마 생존하나 봅니다.

가온건축_임형남, 노은주

: 가온, 우리말로는 가운데라는 의미가 있고, 한문으로는 집 가(家), 평온할 온(穩)인데 혹자가 평온할 온(穩)의 그림의 의미가 일 년 추수를 마치고 수확물을 마당에 쌓아놓고 바라보는 그런 모습을 의미한다고 해서… 일 년 농사 다 마치고 겨울에 쉴 일만 남은 그런 므흣한 상황이라네요. 말하자면 설계 납품 마치고 통장에 설계비 입금 확인하며 웃음 짓는 그런 느낌.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무소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가가건축_안용대

: 개업할 때 이종건 교수님이 작명하였지요. 1) 거리 가(街)에 집 가(家), 도시건축의 의미 2) 아름다울 가(佳)에 집 가(家), 건축주를 위해서. 3) 거짓 가(假)에 집 가(家), 집 속의 집 4) KAGA. Korean Architecture as Global Architecture 5) 전화번호부 목록 1번 설계사무소

바인건축_황순우

시간건축_박유진

운생동건축_장윤규,신창훈

: 중국 회화 6법, 기운생동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경영위치건축_김승회, 강원필

세상숲 도시건축네트워크_전성은

건축사무소 공장(空場)_정우석, 김성우

 

B유형

건축가 자신의 이름을 사무소의 명칭으로 전용한 사례다. 박길룡건축으로 대표되는 선구적 세대의 출현 이후 초창기 한국현대건축의 선배 건축가들 대부분의 개업 당시 명칭은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경향이 다음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한 현상을 되짚어보면 첫째 건축가의 자아(ego)가 강한 경우라 할 수 있고, 둘째 건축설계 사무소의 이념 지향성을 담은 작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건축풍토 때문이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표자의 호, 약칭, 건축가 공통의 성씨 조합, 다른 성씨의 연결, 또는 영문 이니셜 조합 등의 패턴으로 오랜 세월 애용되어온 것도 작명의 한 현상으로 주목할 만하다. 예외적으로 이소진의 경우는 스승의 사무소 명칭을 이어받아 사용하고 있는 것도 특별하다. 최근 개업하는 젊은건축 집단들, 꼬집어서 말하면 ‘이와임 아키텍츠’의 경우 과거, ‘엄이건축’(이후 엄앤드이건축으로 개칭) 또는 ‘이손건축’의 작명 모델의 연장선상에서 어조사 ‘와’를 작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해학성과 창의성 면에서 선배세대의 고답성을 쉽게 털어버림으로써 이 같은 유형의 작명이 갖는 지평을 확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길룡건축_박길룡

김재철건축_김재철

김희춘건축_김희춘

박춘명건축_박춘명

김중업건축_김중업

무애건축_이광노

엄이건축_엄덕문, 이희태

김수근건축_김수근

기용건축_정기용

조성룡도시건축_조성룡

이로재 김효만건축_김효만

김영준도시건축_김영준

dmp(design camp moonpark)건축_문진호, 박승홍

이손건축_이민, 손진

배병길도시건축_배병길

CGS건축_신춘규

BCHO건축_조병수

KcAL_공철

SKM Architects_민성진

문훈건축발전소_문훈

PARKiz_박인수

KOOSSINO Architecture Studio_구승민

고기웅사무소_고기웅

페레이라 건축_최성희, 로랑 페레이라

KARO(Kim kijoong Architecture Research Office)건축_김기중

신 아키텍츠_신호섭, 신경미

아뜰리에 리옹 서울_이소진

: 프랑스에서 10년간 같이 일했던 스승님 성함이 Yves Lion이고, 사무실 이름이 Ateliers Lion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울로 귀국을 했는데 귀국 당시 파트너 소장이었고, 한국서 홀로서기를 위해 스승님이 1년간 지원을 해주셔서 감사의 뜻으로 Ateliers Lion Seoul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조호건축_이정훈

: JeongHoon. 외국어로 발음이 쉽지 않아 JO HO만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JO는 한문으로 지을 조(造), HO는 좋아할 호(好). 짓는 걸 즐기는 만큼 건축 잘하는 건축 잘 하는 건 없는 것 같아서요.

정영한건축+건축중독집단_정영한

이와임 아키텍츠_이도은, 임현진

 

C유형

건축가의 설계 태도와 전략, 세계를 바라보는 모형, 도시를 바라보는 태도, 작업의 범주 등을 작명에 반영한 한 현상이다. 스튜디오 메타의 작명 이후 2000년대에 개업하는 건축설계 사무소들이 보이는 작명의 일관된 패턴으로 건축과 도시를 대하는 엄숙함과 동시에 작명의 해학성에 이르기까지 넒은 스펙트럼을 발견할 수 있다. 다양성의 종이 이들을 견인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사무소 명칭에서부터 분명하게 작업의 방향성이 드러나고 있음과 영문자 조합의 지향성 면에서 A유형에 속한 선배 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시대 조류를 확인할 수 있다.

스튜디오 메타(METAA, Metabolic Evolution Through Art and Architecture)_이종호, 양남철

어반엑스(Urban_Ex)건축_오섬훈

: 접두사 ex와 urban의 합성어로써 도시의 일상을 네트워크화 한 복합적 작업과정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free from urban 즉, 현재의 도시 일상을 바탕으로 extreme, exposure, exposition의 태도로 또 다른 도시를 꿈꾸고자 함입니다.

OCA(Office of Contemporary Architecture)건축_임재용

: 1989년 미국 LA에서 사무실 개업할 때 지은 이름입니다. Contemporary라는 단어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계속 업데이트 내지 업그레이드되는 뜻이 좋아서… 열심히 하자는 의미입니다. 참고로 당시엔 OMA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제공건축_윤웅원, 김정주

: 서비스를 제공해준다고 할 때의 ‘제공’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서비스정신으로 무장되어있는 사무실입니다!

M.A.R.U.(Metropolitan Architecture Research Unit)_김종규, 정일교

건축디자인사무소 anm(architecture+more)_김희준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_조민석

: 과거와 현재, 지역과 전체, 이상과 현실, 개인과 집단과 같은 21세기 공간적 조건들을 규정하는 수많은 마찰들 속에서 개별적이고 단일화 된 시각이 아닌, 다중적인 상황들에서의 효과적인 복합성에 초점을 둡니다. 다양한 범위의 스케일을 넘나드는 각각의 건축적 프로젝트에 대해, 매스스터디스는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비전에 초점을 두고 공간체계/매트릭스, 건축재료/공법, 건물의 유형적 확산 등의 주제들을 탐색합니다.

스튜디오 EON_함성호

: 까발라에서 규정하는 신의 이름입니다. 말해지지 않는다란 뜻이에요. 공간에는 성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스튜디오 지티(ZT)_김동원

: 대학 다닐 때 만들고 지금도 돌봐주고 있는 작업실 이름이 Zeitgeist(시대정신)이었습니다.

SCALe건축_하태석

: 1) 여러 스케일과 none-scale을 넘나드는 멀티스케일 건축 2) Smart Convergence Architecture Lab etc.의 약자를 뜻합니다.

poly.m.ur_김호민

: poly는 다수복합성이란 의미로 다수다양성을 지향하는 건축을 추구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바우건축_권형표, 김순주

: 바우는 ‘Blog Architects Unit’ 약자의 조합어 입니다. 초기 파트너들과 블로그를 통해서 수년간 교감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지요. 그 자체로 ‘짓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건축가로 짓는 과정에 더 집중하고 싶었던 바람도 있었구요.

와이즈건축_장영철, 전숙희

: 예전에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tree branch pavilion) y자형의 나뭇가지들이 바닥에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 힌트를 얻었습니다. Ys라는 것이 Young & suki의 이니셜 합침이기도 하고요. 발음상 Ys Whys Wise가 비슷했고요. 살아오면서 건축을 부풀려서 포장하는 사람들을 보고 저희는 정직한 작업을 해야겠다, 그런 것이 작업을 오래 할 수 있는 현명함이 아니겠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에이라운드(a round)건축_박창현

: a는 건축(architecture)의 a인데 A와 구별해 마스터로서의 건축가가 되지 않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round는 판 또는 스테이지의 의미로 건축영역을 뜻하며 a와 round를 띄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생각했던 around는 동양적 접근의 정확한 무엇보다 어림잡는 무엇을 뜻하는데 그것은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보여지는 단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로고도 순환의 의미로 둥글고 무한의 뜻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이름과 로고가 딱 저 같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ENGINEFORCE ARCHITECTS_윤태권

사이(SAAI)건축_이진오, 임태병, 박인영, 김성준

: 우리말의 ‘사이’가 시간, 공간의 관계를 아우르는 단어라 정했습니다. SAAI는 약자가 아니라 웹사이트 도메인을 찾다가 정했습니다.

노바건축(studio NOVA, Nature Of Visionary Architecture)_강승희

로칼디자인(lokaldesign)_신혜원

: 홍콩에서 사무실을 등록했을 때 지은 이름입니다. 어느 곳에서 작업을 하든지 그 지역과 환경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적절한 디자인을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Lokal은 영어 Local을 독어, 스칸디나비아어로 표기하는 것을 따랐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그래픽이 예뻐서이기도 합니다.

네임리스(NAMELESS)건축_나은중, 유소래

: 건축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해석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호한 이름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단순히 장난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의적인 가치와 해석을 포용할 수 있는 동시에 단순하고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시스템랩(The SYSTEM LAB)_김찬중

디자인 헌터스(DESIGN HUNTERS)_한정훈

SOA(Society Of Architecture)_강예린, 이치훈

OBBA(Office for Beyond Boundaries Architecture)_곽상준, 이소정

이미지 내러티브 웍스_김원진, 황태훈

서로(瑞路, SEORO)아키텍츠_김정임

: 서로는 말 그대로 서로서로에서 따온 말입니다. 우리의 일의 대상인 건축도 마을, 거리, 도시, 지구의 한 부분으로 결코 따로 분리하여 볼 수 없는 것이고, 우리의 일도 건축주, 시공자, 공무원, 컨설턴트, 재료상들과 사무실 내 동료들 모두 각자의 의지와 생각들이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완성되는 것이기에 서로건축입니다. 작명에 대한 최초 아이디어는 우리 딸과의 대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깊은 풍경(the scape)_천경환

: 풍경에 깊이를 불어넣기 위한 모든 배려

 

D유형

우연과 아이러니에 기댄 작명법이다. 많은 예시를 찾을 수는 없지만 차세대 건축인들의 작명법으로 기댈만한 수법일 수 있다. 여기서도 여전히 C유형과 같이 영문자 조합에 편중되어 있는 것도 주효한 현상으로 지목할만하다.

 

ONE O ONE Architects_최욱, 최진석

: 101(기초반). 영문글자가 예뻐서입니다.

EAST4건축_박준호

: EAST는 서방국가에서 봤을 때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4는 숫자 중에 가장 안정적인 모양이어서 사용했습니다.

AGE건축_박민철

: 첫 사무소로 개업한 간향건축을 끝내 유지하지 못하고 여러 고비를 넘어 제자리로 돌아서게 되었을 때 가까운 선배의 도움으로 과거의 좋은 기억과 새로운 목표를 떠올리며 Architects Ganyang Et cetera.라 이름 하였습니다. 이니셜을 모아놓고 보니 Aging Architecture란 건축의 지향성이 덤으로 따라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품 있는 건축. 괜찮게 느껴졌지요.

오퍼스(op’us)건축_우대성, 조성기, 김형종

: 오퍼스(opus)는 작품번호라는 뜻입니다. 베토벤은 작품번호에 op.96,,, 식으로 번호를 붙입니다. op는 opus의 준말입니다. 복수가 되면 opera라고 씁니다. op’us는 중간에 살짝 아포스트로피(’) 표시를 해서 우리들(us)이 하는 작품(op.)이란 뜻이 되는 것 같아서 지은 것입니다.

 

나가며

앞에서 기술한 건축설계 사무소들의 명칭 가운데 해설이 붙은 내용들을 통해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설문과 웹사이트 검색을 동시 진행하면서 사무소 명칭에 함의된 사업의지와 저들 작업의 방향성이 균형감을 이루고 있다고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었어도(그것이 중요하다는 글의 주제의식 또한 아니었기에 배제키로 하고) 작명의 배경이 확실한 사무소의 경우 작금의 어려운 경제난도 거뜬히 헤쳐 나가고 있음을 판단하는 데에는 크게 망설임이 없었다.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영문자 조합 지향성의 네이밍 전략도 따지고 보면 생존본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유학파든, 토종이든 젊은 세대 건축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이 현상이 거창하게는 글로벌리즘에 대한 대응의지가 표출된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이 시대의 트렌드로서 수용한 태도가 아닐 수 없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네이밍 센스가 곧 건축가 자신의 이미지와 곧장 연결된다는 것에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모두에 적은 바대로 ‘이름대로 될 지어다’ 하는 소망의 구절이 빈말이 아니기를, 2014년을 서둘러 정리하며 세모(歲暮)의 인사를 겸해 글을 맺는다.

 

[<와이드AR> 42호, 2014년 11-12월호, 전진삼의 para-doxa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