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건축평론가, 택시운전대를 잡고 웃다

전진삼의 건축탐정 AQ (인천 편)

 

 

건축에는 도덕적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강요할 힘이 없을 뿐이다. 건축은 법을 만드는 대신 제안을 한다. 우리더러 그 정신을 모방하라고 명령하기보다는 권유하며, 자신을 악용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_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20, 이레

 

사설 건축탐정 사무소를 연 지 달포가 지나가고 있다. 사람 뒷조사를 하고 청부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일도 몰릴 텐데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근데 요즘은 파리조차 보기 어렵다. 아찔할 정도로 적막한 기류뿐이다.

 

조수도 없다. 한 사람 정도는 채용해야 폼도 날만한데 1인 다역 이라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차 주전자가 요란하게 소음을 내며 끓어오르다 둔탁하게 전기 끊는 소리를 지른다. 점심때가 다되었는데 모닝커피나 불고 있을 처지다. 부동산중계업소 간판을 매다는 편이 나을 뻔했다. 그건 아무나 하나? 자격증 없으면 인맥이라도 화끈해야지.

 

도대체 뭐 하는 사무소인데? 그냥 사설탐정도 아니고 건축탐정이라니? 요즘은 건축설계사무소 이름을 그렇게 부르나? 아님 뭐지? 그렇게라도 궁금증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면 응당 답변이랍시고 PR 이라도 해보지. 오늘따라 끈적거리는 아줌마 음성의 목 좋은 땅 소개 전화조차도 없다.

 

택시운전을 하는 L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명색이 건축평론가다. 전화기 저편에서 다짜고짜 고함이 들려온다.

 

“어이, 빨리 때려 쳐. 뭣 할라구?”

 

이 친구, 택시운전대를 잡고서는 건축 판에서 전문가랍시고 으스대는 꼴을 보지 않게 되어 너무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위인이다. 앞으로 2년만 고생하면 개인택시 면허를 받는다고 적이 자랑한다. 홍세화의 노작『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이후 덤으로 택시운전사의 덕을 본 최고의 수혜자다.

 

고졸자라고 대학원까지의 길고긴 가방끈을 숨기면서까지 건축업자로서의 패배를 자인하고 찾아 나선 자기구명의 길, 그는 택시운전대를 잡고 오늘도 세상과 건축의 이야기를 엮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운전 도중 틈틈이 건축가로서 성공한 ‘사부’를 찾아가 인터뷰를 따기도 한다. 그가 죽어줄 날을 기다리는 비운의 구술정리자. 비록 택시운전대를 잡았지만 제 버릇 남 주랴. 한때는 국내유력 건축 잡지의 취재기자로 시작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초특급 부편집장으로 승진했던 그다. 30대 초반에 이미 건축저널리스트로서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겉으로 화려하지만 속으론 곪는 돈 못 버는 글쟁이 지위를 버리고 건축업자로 돌아서기로 작정했고 잘 나갈 때는 거뜬히 10억 정도를 통장에 넣고 있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다 지난 IMF 시절에 조직폭력배가 개입된 공사를 하다가 공사비를 건지기는커녕 본전을 다 까먹고 알거지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화병도 생기고 건강도 나빠진 터라 생전 처음 맘먹고 가족동반 전국여행을 돌던 차에 용하다는 점집에서 택시운전사 딱 3년이면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말에 순순히 복비를 뿌리고 나섰던 참이다.

 

“택시 운전은 할만 해? 듣자니 글쟁이 전업 작가 다 되었다며?”

 

“내 글이 좋아서라기보다 택시운전사라는 직업 때문에 호들갑들이지. 그냥저냥 매달 버는 원고료가 택시기사 한 달 월급보다 나서. 지난해엔 개인종합소득세 신고까지 했지 않았겠어. 빌어먹을 세금도 만만치 않더만…”

 

종합소득세 낼 정도로 인기 있는 글쟁이라는 듯 희죽거리는 품이 귓전에 묻어온다. 세상 모든 직업 중에서 건축만 안 하면 잘 살 거라고 점쟁이가 경고했다는데 이 친구 오늘도 택시운전을 할지언정 건축 판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운명이라는 건가.(계속)

 

 

나오는 사람

L(실명 이용재)_건축평론가로 택시운전대를 잡고 있다. 1960년생. 책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2003),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 거예요』(2005), 최근『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2007)을 냈다.

“그의 글은 때로는 너무 솔직하고 화끈하여 주변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손색이 없다. 그나마 건축저널리스트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조용한 것이다. 정치저널리스트가 되었다면 그는 늘 뉴스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_김신(월간 디자인 편집장)

 

[인천신문, 제277호, 2007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