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호 BEST] 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REVIEW: 건축학 5년제

▲일시: 09년 2월 20일(금) 저녁 7시 30분∼11시

▲장소: 장충동 평안도 족발집 2층 골방

 

참석자 프로필

김택구 2002년 아주대학교 건축학부에 입학하여 2009년 2월 졸업했다. 재학 중 극장건축대전 입선(2006), 인천도시설계공모전 은상(2007), 행복도시공모전 입선, 대한민국건축대전 입선(2008)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현재, (주)DA그룹 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민동구 2001년 숭실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2009년 2월 졸업했다. 재학 중 호주 설계사무소에서 2개월 근무했고, 아이아크(유걸 스튜디오)에서 인턴십을 거쳤다. 현재, (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박정수 2002년 서울시립대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2009년 2월 졸업했다. 재학 중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 공동작품전 건원건축상(2008), 삼성전자 Yepp (MP3) 신제품 개발 공모전 입상(2008)의 경력과 부동산 컨설링 리슈 인턴십(2007), 건원건축 워크샵 수료, 인턴십(2008) 과정을 거쳤다. 현재, (주)종합건축사사무소 건원에 근무하고 있다.
박효영 2003년 고려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2009년 2월 졸업했다. 재학 중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작품전 건축가 협회장상(2008)을 수상하였다. 현재, (주)창조건축에 근무하고 있다.
양은주 2003년 연세대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여 2009년 2월 졸업했다. 재학 중 서울시 공공디자인공모전 입선, 서울시 비전제안서공모전 입선, 디자이너 잡 BI공모전 장려상, 중랑디자인공모전 우수상(2008)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현재, (주)designcamp moonpark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 들어가며

여러분들은 우리 대학의 건축학 5년제 과정을 마치고 올해 졸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동안은 대학과 교육정책 당국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5년제 인증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대학의 강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이 일부 대학은 건축학 5년제 국제인증을 득한 상태에서 졸업생을 배출했는가 하면 많은 대학들은 5년제 커리큘럼이지만 미처 국제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있기도 합니다. 이번 <와이드> 이슈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우리나라 건축학 5년제 교육현장의 수용자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함에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제도와 강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들을 되짚어보며, 기성 건축인 사회에 학생 사회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갓 사회에 나온 여러분들이 각자의 시간을 쪼개어 본 프로그램에 동참할 생각을 가져 준 점 대단히 감사합니다.

 

 

ⓦ 5년제 인증학교 출신이라는 자긍심이 있나?

(수도권 외 지역에서의 인증학교인 부경대 졸업생도 초대되었지만 개인사정이 생겨 참석지 못했다. 그 바람에 박정수씨만이 건축학 5년제 인증학교를 졸업한 유일한 참석자다.)

입학이후 인증준비는 수시로 이루어졌다. 인증단 실사가 진행되기 1년 전부터 집중준비 과정을 통해 서울대, 명지대와 함께 서울시립대가 최초의 5년제 인증학교가 됨으로써 교수님과 학생들은 저마다 자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박정수)

 

 

ⓦ 건축과 또는 건축학 5년제에 대한 정보를 언제 알았나? 그리고

입학 전 수시1학기로 지원하는 과정에선 5년제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고3 여름방학에 전공예약제로 건축공학 입학허가를 받고 익년 3월에 입학한 케이스다. 처음에 들어가선 막연히 건축학과와 토목학과로 구분되는 정도만 알았다. 2학년 때 망설임 없이 건축학과를 택했다. 이름도 좋고…부모님은 오히려 4년, 5년에 대한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박효영)

 

공학계열로 입학했다. 1학년 때는 건축에 대한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다. 대신 수학, 화학 등 주로 기본과목의 수업을 들었다. 2학년이 되면서 건축과로 배정되었다. 그전까진 전혀 정보가 없었다. 건축과를 가고 싶어서 공대를 택했지만 그에 비해 정보는 미흡했다. 저학년 때는 건축과 하면 당연히 설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학교는 2007년부터 건축도시공학과로 바뀌면서 학부제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내 또래의 애들을 보면 방황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었다. 설계는 어려운 것 같고, 공학 쪽은 더 아닌 것 같고 하는 친구들이 한의대, 의대, 교대로 진로를 바꾸는 것을 보았다.(양은주)

 

우리학교는 현재 예비심사는 마쳤고, 올해 본 심사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담 교수님이 많이 힘들어하시는 걸 보고 졸업했다. 내 경우, 복학당시 교수님과 면담을 하면서 5년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엉겁결에 선택하게 되었다. 학교 측에서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따른 경우다. 집에다가도 “5년제 해야 한대요” 식으로 그냥 통보하는 수준이었다. 여학생들과 달리 군제대 후 복학한 남학생들은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학교의 인증준비 때문에 졸업생들은 마지막 학기까지 인증 프로그램에 준하여 과다하게 학점을 이수하는 등 문제점도 많았다.(김택구)

 

 

ⓦ 학교 밖에서 건축학 5년제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나?

3학년 때, 새건축사협의회가 주최한 5년제 인증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학교에서 듣지 못했던 내용을 듣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 느낌은 이 제도가 한편으론 정치성이 짙다는 것과 협회 간 알력의 부산물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물론 5년제 인증 교육프로그램을 받으면 해외유학 시 별 문제없이 석사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등 굉장히 좋은 얘기들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분명했던 건 그 당시, 법제화 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막연한 지침만 무성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그 때 이후로 건축학 5년제에 대하여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굉장히 고민도 많아졌다. 주위 분들에게 많이 묻고 듣고 했는데, 중요한 건 정작 학교에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라는 점이다.(김택구)

 

 

ⓦ 졸업 전, 인증되지 않은 학교에서 졸업하는 마음은 어땠나?

2008년 심사에 참여하고 졸업했다. 곧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전에 졸업한 학생들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졸업 후 3년 기한 내에 인증 받지 못할 경우, 혜택 받지 못한다는 의구심이 많다.(양은주)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지 않다. 졸업 후에라도 수혜 가능하다고 들었다.(박효영)

 

준비하는 과정에서 커리큘럼에 대한 것은 어렵지 않다고 봤는데 우리 학교의 경우 사용공간의 확보문제가 관건이라고 들었다. 그것 말고는 교수님들이 큰 걱정 안하고 있는 눈치였다. 내년쯤에 인증심사 신청예정이라고 들었다. 나는 인증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는 건축학, 건축공학, 인테리어학과가 함께 있다. 배우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증제도는 그걸 불가능하게 한다. 학생들의 개성을 죽이는 방향성 그리고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적 발상도 보인다.(민동구)

 

그렇지 않은데…준비 자체가 쉽지 않은데…(박효영)

 

 

ⓦ 5년 동안 학교에 다닌다는 것에 대한 부모님들의 반응은?

03학번 이상은 5년제를 알고 선택한 사례라 큰 문제는 없었다.(박효영)

 

5년이 길다는 부담보다는 의대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하신 게 사실이다.(양은주)

 

 

ⓦ 5년제 이수과정에서 혼란은 없었나?

내 경우 전공 필수과목은 다 들었지만 5년제 인증과목을 다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를 안고 졸업했다. 사실 그때까지 5년제 이수과목 몇은 권고과목이었다. 필수과목이 아니었기에 소홀히 취급했다. 근데 막상 졸업을 하려니까 “너는 학교가 5년제 인증을 받더라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나중에 유학을 가서라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럴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 학생이 5년제를 선택한 것은 인증 이후의 삶을 예비한 것인데, 준비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할밖에.(박효영)

 

 

ⓦ 그 밖에 다른 문제점은?

건축학 5년제에 따른 사회적 이해와 지원이 따르지 않은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외부 장학제도가 대표적인데 다른 학과들이 4년제이니만큼 그들과 똑같이 취급되어 4년 동안만 장학금을 받는 등 불이익한 면이 있었다. 건축과 5년제가 건축계 안에서만 의미가 있지, 사회적으로는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컸다.(박효영)

 

 

ⓦ 5년제 건축학과를 바라보는 타 대학의 시선은 어떠했나?

알력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컸다. 인증은 관련 교수님 개개인의 관심이 모아졌을 때 수월하게 풀린다. 인증조건에 보면 개인별 컴퓨터 보유현황, 개인 작업공간의 확보 등 세밀한 부분에까지 간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학교 내에서 곤란한 점도 많이 생겼다. 건축학 5년제 인증을 위한 별도의 공간 확보에 따른 타 대학(학과)의 시샘이랄까, 특정과에 대한 특혜시비에 휘말릴 여지가 상존했다. 우리 학과는 별도 건물 추진과정에 따른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기 위해 디자인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고 들었다.(박정수)

 

 

ⓦ 5년제 건축학과와 4년제 건축공학과 사이의 관계는?

철골과목의 경우 4년제와 같이 들었다. 대체로 4년제 학생들의 평균점수가 높았는데. 4, 5년제의 학점을 별개로 매기는 바람에 수치적으로 같은 점수 임에도 학점이 낮게 나오는 4년제 학생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4년제 학생들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양은주)

 

명칭에서도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의 위상이 비교되었다. 개중에는 겉멋으로 건축학과를 선택한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애들은 대부분 1년 만에 전과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박효영)

 

 

ⓦ 5년제를 선택하면서의 고민?

나는 원래 건축가가 된다는 꿈을 가졌다. 중학생 때 막연하게 시작된 꿈인데 개인적으로 건축 관련 책도 사보면서 관심을 키웠다. 대학 진학 시에도 당연히 “건축과를 가야돼”, 식으로. 군대에 갔다 와서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복학해서보니 5년제 과정을 통해야 만이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들었다. 친구들 중에는 4년제에 남은 애들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한때는 4년제로 돌아설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쉽사리 4년제로 가지 못한 이유는 학교에서 5년제와 4년제 학생에 대한 대우가 달랐기 때문이다. 5년제 인증 준비에 밀려서 찬밥신세로 전락해 있는 4년제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 한번 정도 진로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나 스스로 좋게 좋게 생각하다보니 5년제에 남게 되었다.(김택구)

 

설계하고 싶은 사람은 결국 5년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5년제를 선택해야 설계할 수 있다는 기본정보만 있었다. 설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거나 적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람은 공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박효영)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교수님은 처우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도 없이 무조건 건축학과로 바꿔야지 인정받을 수 있고, 나중에 건축사도 딸 수 있다, 식으로 말씀하시며 4년제를 나오면 건축사를 못 딴다고 했다. 그 때 무척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그냥 4년제를 졸업하고 빨리 사회로 나가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바뀌게 되었다. 웹서핑을 하던 중 AA스쿨의 커리큘럼을 보게 된 것이다. 평소 관심이 컸던 써스테이너블 디자인(Sustainable Design) 코스가 눈에 들어와 확인해보니 그 안에 두 개의 과가 존재했다. 4년제를 나온 학생들은 1년짜리 코스가 있고, 5년제를 나온 학생들은 1년 6개월짜리 코스가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까 4년제 나온 학생들은 엔지니어 파트이고, 5년제를 나온 사람은 디자이너 파트로 구분되어 있더라. 실제로 일하는 것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디자이너는 창의력 있고 창조적 행위를 하는 전문직의 위상이 있어 호감이 큰 반면 엔지니어는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영국에서조차 4년제 졸업생을 엔지니어로 구분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느낌이 왔다.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로 5년제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몇 년 전부터 공간에서 5년제 졸업생 아니면 취업의 기회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설계사무소에서도 4년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구나 하는 것이었다.(민동구)

 

 

ⓦ 5년제 선택 과정에서의 명암?

똑같은 설계전공도 02학번의 경우 설계지망생들 대부분이 4년제로 졸업을 하게 되어있는데 그들 중 계속 설계를 하고 싶어 하는 경우는 자기들도 5년제의 혜택을 받고 싶다며 5년제 시스템에 속하지 못한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는 선배를 보았다.(양은주)

 

주변에서 군대를 빨리 갔다 온 바람에 5년제를 선택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는 경우를 보았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민동구)

 

 

ⓦ 막상 취업에 당하여 5년제 졸업생의 진로는 어땠나?

삼성물산 등 대기업 건설사의 경우에서는 거꾸로 5년제를 안 받더라. 겉으로는 구분이 없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많이 달랐다. 친구들 중에 대기업에 지원한 이들이 몇 있는데 면접에서 “당신은 5년제를 나왔는데 왜 여기에 지원했냐?”, “구조나 시공기술에 대해서 뭘 아냐?” 식으로 홀대하더란다.(박효영)

 

근데 그건 학교의 문제와 함께 개인차의 문제 아닐까? 건설사에 입사하려면 시공과목이나 철골 등 구조과목을 많이 들어야하는 게 당연하다. 대기업 같은 경우 그 과목에 대한 성적을 중점적으로 보는 것으로 안다. 혹시라도 설계가 아닌 시공분야의 진출을 생각했다면 그 과목의 점수 관리가 필수란 얘기다. 5년제를 나와서 대기업 건설부문에 지원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는데 전적으로 5년제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5년제가 진입할 수 있는 문이 더 넓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5년제 학생들은 건설사와 설계사무소 모두 지원 가능하지만 시공, 구조 등의 4년제 학생들의 경우 졸업 후 바로 설계사무소의 취업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으니까.(양은주)

 

 

ⓦ 5년제 각 학교의 독특한 프로그램 또는 과목의 추억?

5년제 인증의 세부지침 중에는 영국이나 미국에서 만든 규정 즉 소위 커리큘럼을 수용하되 지역건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있다. 나는 한 학기 내내 한옥을 설계한 적이 있었다. 일선의 건축가가 한옥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도시한옥 전문가로서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한 건축가가 와서 결구방식, 모형작업 등을 지도했다. 나름 유익했다. 다른 하나는 5년제 교육을 이수했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그 학생이 국제적으로도 능력이 통용 되어야하는 것이다. 우리학교의 프로그램 중에는 일부 학생을 외국 사무소에 인턴십으로 보내는 코스가 있다. 물론 학생 전체가 대상이 될 수는 없었지만. 한 학기에 두 명 정도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의외로 인기는 없었다. 굳이 이유를 말하라면 외국 사무소라는 것이 잡지책에서 보듯 하는 작가급 사무소가 아니고 미국 현지에 있는 중견사무소라는 점이 작용했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사무소에서의 인턴십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인턴보다 보수도 적게 받고 했다는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박정수)

 

 

ⓦ 와글와글 1, 나라면 같을 텐데

그건 보수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나 같으면 돈 안 받고라도 가고 싶었을 것 같다. 우리학교는 스미스그룹이나, 엔비비제이 사무소로 보내주었는데, 주로 석사생들의 몫이었다. 지난 학기말부터는 학부생을 선발하여 인턴십을 보내주고 있다.(박효영)

동감이다. 거기서 하루종일 아무 일 안 해도 좋았을 것 같은데(민동구)

그러게, 외국사무소를 경험했다는 것의 희열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양은주)

 

 

ⓦ 다시, 5년제 각 학교의 독특한 프로그램 또는 ‘강의실’의 추억?

근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한 학기에 2명을 뽑는데 경쟁률이 1:1 조금 웃도는 정도였고, 내가 졸업할 때까지 10명 정도가 다녀왔다. 주로 3∼4학년 때에 보내준다. 그밖에 아시아 5개국의 건축학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아시아 건축도시 연합스튜디오(ACAU)’와 ‘서울∼베를린 국제교류전’, ‘국립 싱가폴대학 건축학부와의 교수 및 학생교류 프로그램’, ‘GLP 프로그램에 의한 유럽 및 아시아 건축기행’, ‘해외건축사무소 인턴십’ 등 다양한 국제화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 아카우는 중국, 태국 등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대학과 조인하여 각 지역의 도시문제를 함께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각국의 학교를 돌아가며 워크숍 형테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인데 이것은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었다. 사이트플래닝&디자인(Site Planning and Design)이라는 과목을 이수해야했는데. 교수님이 그러더라. 이건 우리의 건축환경과 맞지 않는 전형적인 서구식 교과중 하나라며 그 시간에 우리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배치를 배워보자는 거였다. 한옥의 평면구성에서 아파트 평면구성까지, 공통주택의 역사를 개괄하는 시간이었다. 인증 프로그램이라는 정해진 룰 안에서만 교육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판단에 의해 융통성 있게 진행된 사례를 말하고자 함이다.(박정수)

 

우리학교도 지난해부터 국제워크숍을 시작했다. 중국에서부터 했는데 9박 10일의 기간으로 합숙하며 공동의 주제로 함께 어울리는 설계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5년제 인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강의실 리모델링과 별도의 전시실을 만들었다. SPC 항목의 준수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프리젠테이션 룸이다. 매주 진행된 강의내용을 알 수 있는 PPT 자료, 학생들의 리포트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초청강연이 수시로 이뤄졌다. 개중에는 1학점짜리가 있고, 수업의 일환이 아닌 것으로도 2주 한번 꼴로 지속적인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그 자리엔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을 초청한다. 건축과가 주최하지만 일반인들도 들을 수 있다. 그 면에서 특히 강석원 선생님의 역할이 크다. ‘진짜 진짜’ 좋은 ‘건축가 할아버지’란 느낌이시다. 학교 내에 설계 동아리가 하나있다. 그냥 평범한 학교 동아리로 멈출 수도 있었는데 강석원 선생님으로 인해 외국 건축가를 초청하거나, 그분들을 사적으로 만나는 경우에도 그들을 학교에 데리고 와서 학생들과 만나게 해주는 등 큰 역할을 하고 계시다. 현재 설계 강의 중이시며. 70대이심에도 불구하고, 너무 정력적이시다. 매력이 넘치는 분이다.(박효영)

 

우리학교는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국제설계웍크숍 스튜디오를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학교 전체분위기가 글로벌화를 표방하기에 건축교육에서도 영어강의가 강화되었다. 당장의 목표는 30% 이상을 영어강의로 추진한다고 했다. 그 통에 설계수업의 프리젠테이션, 크리틱을 전부 영어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외부 초청 크리틱도 영어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철골과목도 영어로 수업했을 정도다. 그리고 우리는 학부과정에서 대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당연히 학점이 인정되었고, 내 경우 5학년 1학기 때 한 과목, 2학기 때 한 과목 해서 두 과목을 대학원 수업으로 들었다. 대학원 수업은 자유로운 점이 많았다. 논문작성의 방법론도 익힐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점이 매우 유익했다.(양은주)

 

 

ⓦ 학교마다 영어수업이 많은가? 그 효과는?

인증 요건에 외국인 교수의 비율도 있어서 기회가 많다.(양은주)

 

우리학교는 규모가 작다보니 5년제로 바뀌었다고 해서 세미나 등 지원 프로그램이 활성화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번에 같이 졸업한 친구둘이 15명가량 되는데 교수님들이 변화를 주고자하는 부문은 설계에 치중되어 있다. 돌아보면 은퇴하신 이선구 교수님은 일찍부터 영어수업과 학부생들의 논문작성 지도를 시작하셨다. 우리는 5년제이기 때문에 뭔가를 새롭게 도입하지는 않았다. 이미 학교 자체 프로그램이 그렇게 짜여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5년제로 인해 바뀐 것은 외국인 교수 몇 분 정도가 새로 영입된 점을 들 수 있다.(민동구)

 

설계의 경우 한 학년에 한 과목씩은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개설되어 있다. 우리도 철골과목이 영어강의로 진행되었는데 솔직히 학생들은 피하고 싶어했지만 그 수업밖에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었다. 영어수업을 하니 좋은 점은(다음은 수강한 친구들의 얘기다)영어로 대화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지만 그보다는 우리말로 할 때는 돌려서 말하는 방식에 쉽게 빠져드는데 영어로 하니까 최대한 간단하고 정확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하더라. 표현이 직접적이다 보니 허튼 소리를 안 하게 되는 이점이 생겼다고나 할까.(김택구)

 

나도 같은 생각인데 우리학교의 경우 영어로 수업을 해서 오히려 좋은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중에는 영어를 잘 하는 애들도 많이 있었고, 잘 안 되는 애들도 물론 있지만 오히려 영어로 발표를 시키다보니까 발표가 점차 순수해지더라. 짧은 영어로 설명하다보니까 좀더 명확한 단어를 찾아 쓰게 되었다.(양은주)

 

개인적으론 우리 대학에서 영어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외국으로 인턴십도 갔다 왔지만 중요한 것은 외국인과 만났을 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건축에서는 도면이 언어라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게 아니고 영어가 최우선이 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전통에 기반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5년제 건축학 제도는 너무 사대주의적 발상이란 생각까지 하게 된다.(민동구)

 

학과의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함께 빌딩시스템(Building System)이라는 건축공학 관련 이론과목을 수강했는데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솔직히 우리말로 들어도 어려운 전문 어휘들에 대한 원어적 접근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다.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교육효과가 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박정수)

 

 

ⓦ 5년제여서 좋았던 점?

개인적으론 5년제로 인해 좋아진 것은 1년이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학교 졸업하면 사실 다 똑같지 않나? 1년이란 여유가 생기니까 교수님들도 여유롭게 가르치시게 되었다. 내 경우 초고층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는데 거의 1∼2주에 한 번씩 외부에서 설비, 구조 엔지니어들이 오셔서 실현 가능성에 대하여 자문해주시고, 그 과정에서 엄청 많이 배웠다. 결과적으로 보면 5년제 이후 수업의 내실이 탄탄해진 것 같다. 우리학교는 해외랑 조인트 프로그램은 그닥 활성화되어있지 않지만 목요강좌를 통해서 초청된 외국인들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대체효과가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의 국제적 감각은 그 정도에서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민동구)

 

 

ⓦ 기억나는 외국인 강사의 인상은?

인증규정에 의하면 여성교수 몇 %, 한국에서 교육받지 않은 외국인 교수가 몇 분 이상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 기억나는 한 분은 스페인에서 태어나신 분인데 대학은 네덜란드의 베를라헤를 나왔다. 누가 봐도 선진국의 표준화 교육을 받았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분인데 이 분의 교수법이 무척 특별했다. 처음 그 분이 학교에 오셨을 때 학생들은 그 분의 이력만 보고 그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가히 인기폭발. 이 분의 수업에서는 두 달 동안 다이어그램만 그리도록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주제도 특이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이어그램”이라고나. 옆 반 수업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나름 인정받는 건축가가 지도하고 계셨는데 학생들에게 통상의 도면그리기를 시키고 있던 그 모습을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았다면 우리의 중견건축가 분은 조류에서 한참 밀린 구시대 건축가인 양 해보이더라. 학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 외국인 교수님이 이전까지 없었던 학풍을 만드니까. 일단 결과물이 틀렸다. 통상은 패널 한 장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패널 다섯 장, 혹은 벽면을 패널로 가득 채우기도 하고, 다른 교수님조차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겠다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긍정적이었다 라는 점이다.(박정수)

 

 

ⓦ 와글와글 2, 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나?

새로우니까 그랬을 것이다.(박효영)

다른 교수님들 입장에서 보면 보통 “이건 건축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학의 관점에서 그들의 고민을 받아주면 될 걸, 왜 네가 하지?” 했을 텐데 그 분 스튜디오 안에서는 그게 디자인으로 접근 가능했다는 점이다. 애들은 다소 황당한 접근조차 연신 “OK, OK” 하며 받아주는 선생을 만났으니, 신이 났을 밖에. 자신을 전적으로 밀어주는 환경이 좋았던 거다. 거기에 감동을 받아서 그 수업을 들었던 애들은 다음 학기도 벽안의 그 교수님을 좇아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 반 학생들은 거의 스튜디오의 이동이 없었다.(박정수)

 

 

ⓦ 최종 결과물은 어땠나? 그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과의 차이?

개들은 항상 화려하게 끝냈다. 시각적인 결과물만 보고서도 솔직히 콤플렉스가 생기더라. 서로가 동일한 기간 내에 작업을 했는데 너무 차이가 컸다.(박정수)

 

 

 

ⓦ 그 밖에 외국인 교수의 수업은 무엇이 달랐나?

우리학교는 교수님들의 친분으로 설계실에 불쑥 찾아온 외국인들과 만나는 기회가 잦았다. 학부 2학년 때 처음으로 외국인으로만 이루어진 스튜디오가 만들어졌다. 그 때 영어로 설계수업을 받았다. 그 후로는 딱히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설계스튜디오는 없었다. 가끔 외국인 크리틱을 만나는 정도였다. 그 때마다 느껴졌던 게 외국인들은 칭찬을 참 많이 해준다는 점이었다. “가능성이 보인다. 열심히 해봐라, 이렇게 하면 재밌지 않겠냐” 하는데 보통 국내에서 외부 크리틱으로 오시는 분들을 보면 대개가 부정적이었다. 크리틱에 당하는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이게 뭐야, 나는 이 공간이 무슨 공간인지 모르겠는데, 이걸 설계라고 했어.” 막 이런 식으로 기를 팍팍 죽이며 대개 안 좋은 말만 해댔다. 그럼 애들은 막 울고, 특히 여자애들은 거의 쓰러졌다. 크리틱이 마치 애들 울려야 하는 것처럼 그래야 잘 하는 크리틱으로 호도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여기 참석한 누구나가 경험한 바이겠지만 크리틱에 당하여서 무서운 말 진짜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너무 속상할 때가 많았다. 차라리 한 학기동안 나를 이끌어주었던 교수님이 “너 진짜 못 풀었다”고 하면 이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분은 오랜 시간 내 작업을 봐오신 분이니까. 외국인 크리틱들은 정말 안 좋아도 대개 긍정적인 방향애서 애들을 지도해주는 점에서 많이 달랐다. 그 때 이후로 나는 비판을 할 때는 어떤 애정을 갖고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키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박효영)

 

 

ⓦ 와글와글 3, 크리틱에도 긍정의 기술을

크리틱도 긍정적인 면을 봐주고, 되도록 미소로 해주었으면 좋겠다.(참석자 일동)

 

 

ⓦ 다시, 그 밖에 외국인 교수의 수업은 무엇이 달랐나?

나는 외국인 교수님한테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설계수업을 영어로 받은 경우도 없었다. 반면 후배들은 외국인 교수님한테 배울 기회가 있었다. 옆에서 그들의 수업내용을 보니까 많이 다르긴 했다. 식빵에 잼을 발라서 건축개념을 표현하는 친구 등 특이한 접근이 눈에 띄었다. 호감이 간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그런 교육방식을 통한 효과에 대하여 의문도 일었다. 가능하다면 건축학인증원에서 각 학교 교수님들과 함께 그들의 강의능력과 경력을 검증해줄 수 있는 방안정도는 마련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민동구)

 

동의한다. 외국인 교수라고 해서 다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박정수)

 

 

ⓦ 5년제 건축 교육을 받으면서 즐거웠던 기억은?

듣는 과목수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최소한 인증에 필요한 과목이 정해짐으로써 다양하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과목이 세세하게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박효영)

 

‘아키텍토닉’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각각의 시대를 이끌었던 핵심적인 재료와 구법에 연계된 테크놀로지에 대하여 재조명하는 과목이었다. 유익했다.(양은주)

 

나도 같은 경험을 했다. 교수님이 텍토닉에 대한 강의와 설계를 연계한 재료, 기술, 구조 등 통합적 교육을 해주었는데 무척 좋았다.(박효영)

 

 

ⓦ 5년제를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내 생각엔 5년제의 묘미는 교양과목의 이수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정말 빡세게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5학년 때까지 교양과목을 들었으니까. 한번은 학교 선배님이 그러더라, “건축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인정만 받으면 된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건축이라는 게 설계만 중요한 게 아니고 사회적이고 과학적이며 다양한 지식을 하나로 통합한 사람만이 훌륭한 건축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기반 해서 교양과목을 무척 많이 들은 편이다. 가장 인상적인 교양과목은 ‘인간과 예술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는데 강의는 철학과 교수님이 맡으셨다. 예술을 철학의 관점에서 풀어주셨는데. 인간, 예술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다. 교양과목에 대해서 한 가지 덧붙이면, 서울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건축과 학생들은 전공의 한계에서 일탈하지 못하는데 타과 학생들은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직접 경험한 바는 없지만 후배들 얘기가 그랬다. 근데 건축설계는 서비스업에 속하지 않나? 예술이기 전에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데 서비스하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리그를 갖고 자기들만의 사회를 갖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일반인들은 건축가는 사회적인 의무를 가지고 예술가로서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 그래서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대학교 때만 가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다.(민동구)

 

 

ⓦ 기억에 남는 수업은?

1학년 때 우연히 정치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두었던 분으로 재야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 정치인과 지지자들과 함께 술을 먹을 계기가 있었다. 그 때 나는 건축계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건축밖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재미를 느꼈다. 그로 인해 한동안 설계수업 외에는 학교수업을 등한히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수업에서 괜찮다고 느꼈던 것은 자기주장이 강한 교수님들의 수업이었다. 지금은 학교를 떠난 분이 계셨다. 그분은 수업시간에 수퍼 통일장 이론을 건축과 접맥시켜서 말씀해 주셨다. 애들은 무척 황당해 했지만. 그분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다른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그분 수업을 듣진 못했지만 젊었을 때는 그런 류의 학문에 도전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5년제, 4년제의 차이가 아니라 가르치시는 분의 역량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한다. 대학 내에 학문적으로 개성 강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다.(김택구)

 

 

ⓦ 5년제를 졸업한 당사자로서 5년제에 대한 평가는?

3학년 때 뮤지엄 설계를 했는데 점수가 안 좋았다. 담당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다.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 나와서 말이죠.” 교수님이 그러시더라. “그건 건축이 아니야.” 엄청 충격이었다. 순간 “건축을 하지 말아야 하나?” 라고까지 생각이 미쳤다. 결론적으론 그게 되레 큰 힘이 되었다. 그 분은 왜 내가 한 것을 건축이 아니라고 했을까?에 대하여 무척 많은 시간을 고민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한 것을 건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아니라고 답이 돌아왔으니 오기가 발동했던 거다. 그 때 많이 성장한 것 같다.(민동구)

 

 

ⓦ 와글와글 4, 건축이란 무엇인가?

돈으로 연결되어야만 하는 공간디자인이 건축이다.(박정수)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어떤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 건축이다.(박효영)

인간의 본능이 건축이다.(양은주)

공간을 통해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건축이다.(민동구)

사회가 진화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건축이다.(민동구)

너는 아냐? 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건축이다.(김택구)

 

 

ⓦ 5년제 공부하고 나와서 사회에서 받은 대우? 일의 수준은?

회사차원의 대우보다 함께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담당자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냐가 좀 더 현실적일 것이다. 내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내가 푼 해법을 도면에 적용시켜준 분들께는 감사드리지만, 대체로 그리 많은 기회를 얻진 못한 것 같다. 5년제를 나왔어도 실무를 대함에 있어서는 (선배님들이 보기에) 나와 같은 존재가 작은 ‘점’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것 같다.(박정수)

 

입사 전에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았다. 무영, 해안, 원양 등의 사무소에서 모형작업을 수행했다. 창조건축에 지원하여 입사가 확정된 후 직접적인 일에 투입되진 않았다. 현재 발령대기 중에 있다. 그 사이 여러 번에 걸친 사내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직은 입사 전이라 제대로 수행한 것이 없다.(박효영)

 

이것은 회사 분위기와 맞물리는데 우리 회사는 신입사원인 내게도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지금은 현상설계 중이다. 팀장님도 기탄없이 우리 같은 신입사원의 의견을 물으시고, 괜찮으면 곧장 반영해주시는 편이다. 우리 회사 전체 분위기가 그렇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 스스로 5년제 커리큘럼을 이수한 것이 실무에서 곧장 적용하는 데에 이점이 있다고 느꼈다. 토지이용계획 확인원을 떼어보고 그걸 기반으로 작업하고 파이널 결과물이 설계설명서를 작성하는 과정이었다. 나와 몇 살 차이 안 나는 선배들도 “우리 때는 이런 것 배우지 못했는데” 하더라. 그 때 생각했다. 5년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실무에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5년제 커리큘럼을 잘 이수했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양은주)

 

마지막 여름방학 때 아이아크에서 인턴십을 했는데 나를 좋게 보셨는지 회의실 발코니 확장을 위한 디자인과 디테일 전부를 해보라고 하더라. 그때 느꼈다. 아, 이런 게 아뜰리에의 장점이구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해볼 수 있는 곳이 아뜰리에,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현재의 공간에 입사했다. 연봉 등 처우도 중요했지만 내가 목표로 하는 것 중에는 유학이라는 계획도 있기 때문에 건축가로 성장하는 프로세스를 길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큰 회사에서는 큰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계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우해준다거나, 처우가 어떻다거나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민동구)

 

나 또한 처우에 대해선 고민해본 적이 없다. 지금의 회사 DA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내가 번 돈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순 없는 것 아닌가. 독립적으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굳힌 거다. 정작 입사하고 보니 생각이 복잡한 게 사실이다. 한번은 PF의 안을 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럼에도 배울 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이라는 것이 원래 극과 극에 있는 사람들이 부딪히면서 발전해온 것 아니던가. 향후 몇 년 간은 계속 배워야할 것이다. 돈도 모아야 되고. 학생 때는 막연히 안 좋게만 바라봤던 것에 대해서 좋게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김택구)

 

이번에 같이 졸업한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다들 꿈이 있고, 저마다 유학에 대한 계획들이 서 있고, 그걸 위해선 몇 년간 돈을 벌어야 된다, 라고 아주 구체적인 끔이 있더라. 꿈이 없는 사람들은 아르바이트 하다가 시집을 간다거나 도중하차 또는 이직을 하고 만다. (박효영)

 

 

ⓦ 3∼4년 뒤엔 대개 결혼적령기가 될 텐데 유학의 꿈이 접히진 않을까?

내가 지켜본 분들은 결혼할 사람이 함께 사무실에 다니면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더라.(박효영)

 

나도 그게 걱정이 되어서 2∼3년 전부터 부모님과 여자 친구를 세뇌시키고 있다. 결혼하는 순간 유학을 간다고 말이죠. 결혼할 때 부모님이 도와주실 전세금을 가지고 떠난다는 전략이다.(민동구)

 

 

ⓦ 현재의 직장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

5년제 수업 중엔 대학원 과목이 넘어 온 것이 있었다. 한국건축가의 기율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기율? 건축가의 설계방법론을 찾는 수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론 수업이기보다는 건축가 한 사람을 선택하여 두 달 동안 파악하는 수업이다. 선정된 건축가를 찾아가서는 답을 내놓으라고 조르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자못 의미심장하게 질문했지만 그분들은 대부분 교묘하게 피해 나갔다. “나는 워드로 작업해, 내가 종이로 접은 걸 알바생들이 수십 점으로 정리한 것 중 택해”, 뭐 이런 식이었다. 중요한 건 점점 그분들에게 다가갈수록 신비로움이 사라지더라. 종국엔 그 분들 대부분에게 건축언어라는 것이 마케팅의 한 수단일 뿐이지 환상적이진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작은 아틀리에나 큰 회사나 장단점이 존재함을 발견했고 보다 폭넓게 희망회사를 생각할 수 있었다. 더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키워오던) 주거분야의 대형프로젝트를 만질 수 있는 전문회사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현재의 건원을 택하게 되었다. 5년제의 어느 한 부분을 통해서 진로에 관한 한 막연한 환상이 깨지는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박정수)

 

나는 회사 선택 시 최우선으로 본 것이 사무소의 규모가 크더라도 소규모 아뜰리에 처럼 디자인부터 실시설계까지 한 소에서 다하는 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화 해줄 수 있는 조직이 좋은 곳이라고 보았다. 내게 2천만 원을 주고 디자인을 시키는 사람보다 내가 4천만 원 이상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인정해주는 조직과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았다.(민동구)

 

 

ⓦ 와글와글 5, 회사 지원 시 그 회사의 스타일, 재무구조 같은 걸 보고 들어갔나?

확인했다.(박정수)

요즘은 일반화 된 거 아닌가?(참석자 일동)

 

 

ⓦ 5년제 졸업생으로서 지녔던 자긍심과 입사 후 비전의 의미?

5년제라고 해서 건축가의 비전에 기여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격상 지루하거나 창조적이지 않은 일은 못하는데. 비전은 나 개인적인 판단으로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학교 교육이 5년이라서 건축가로서의 비전이 향상되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마인드컨트롤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지금의 회사에 선택된 순간부터 나 스스로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했다.(민동구)

 

솔직히 학교 다닐 때는 4년에 할 수 있는 거를 5년으로 늘려가지고 하는 게 아닌 가 생각했었다. 왜냐면 설계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한 달을 주던지, 1년을 주던지 똑같은 경우도 흔하잖나. 그런 면에선 불만이 많았다. 근데 막상 실무를 하다보니까 5년제란 커리큘럼이 매우 유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이라는 기간의 이점이 아니라 5년제라는 제도가 되면서 커리큘럼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실무 최전선에 계신 분들의 강의가 많이 개설되기 때문에 실무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대학에서 5년제 교육을 잘 받았다면 실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힘든 5년제를 거쳤다는 것만으로도 어디 가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건 사실이다.(양은주)

 

 

ⓦ 졸업 후 외국설계사무소로의 진출에 대한 입장들?

우리 세대는 국경을 넘어서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연히 부르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5년제를 나왔기 때문에 외국설계시장에서 특별히 나아진 조건을 구비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은 거반 5년제 출신들이잖나.(박효영)

 

이전의 세대보다 우리 세대가 경쟁력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당당히 진출할 수 있을 것 같다.(양은주)

 

4년제와 5년제는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차이는 없다. ‘자부심+α’ 정도는 있겠지만. 대학에서의 1년이 굉장히 많은 걸 말해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5년제 출신들이 4년제 출신들보다 분명하게 나은 점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5년제를 나왔으니 비전이 커졌느냐,란 의미가 없는 말이다. 근데 실무에서는 종종 내가 배운 것과 상당히 다른 언어로 말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내 지식과 선배들의 지식이 다른 언어로 병존하더라도 그걸 번역을 통하여 어느 정도 교감이 되어 내 실력이 선배들의 언어로도 표현이 되었을 때라야 5년제 졸업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요즘 노력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선배들이 무심코 툭툭 던지는 말들을 내 언어의 세계로 가져오는 번역 작업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박정수)

 

 

ⓦ 건축가란 직업에 대한 의식? 인생을 걸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까 5년제를 택한 것이고, 이 자리까지 따라온 게 아닐까?(박효영)

 

5학년 때 나갔던 타 장르 공모전에서 건축설계의 디자인 방법론이 무척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란 직능이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하는 특징이 있다고 본다. 나는 오히려 5년의 기간 동안 5학년 때 쯤에는 건축을 베이스로 한 다른 영역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양은주)

 

와글와글 6, 건축학 5년제 졸업 이후 다른 학문을 더 공부하고 싶다면 어떤 게 있을까?

도시와 조경분야(박효영)

산업디자인(민동구)

사회학(김택구)

언어학(박정수)

모든 건축하는 사람들은 어느 쪽이든 디자인 쪽에 관심이 있고, 그걸 한번쯤은 해보고 싶단 욕망도 있다고 생각한다.(박효영, 양은주)

 

 

ⓦ 건축학 5년제 졸업생 친구들에게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졸업한 동기 모두가 30년 후에도 건축설계를 하고 있으면 무척 답답 할 것 같다. 개중에는 정반대의 마케터의 길을 걷는 친구도 나왔으면 한다. 다양했으면 좋겠단 기본생각이다. 한 가지를 배워서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구속이란 생각이 든다. 한 번은 타 분야 공모전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데 역시나 배타심이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 건축과 출신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하더라. 현실적으론 그런 것이 우리가 건축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고자 했을 때 넘기 어려운 벽이 되겠구나 싶었다.(박정수)

 

 

ⓦ 설계사무소 진출을 포기한 친구들의 사회진출은 평탄했나?

금번 5년제 졸업생 중에 LG C&S, 두산 중공업, 삼성물산 등에 입사한 친구들이 있는데 개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면접당시 질문을 받기를 “왜 5년제 건축과를 나와서 여기에 지원했나? 끈기가 없는 게 아니냐?”라고 핀잔식 질문을 받았을 때 곤혹스러웠다고 하더라. 조금 빗나가는 얘기지만 내가 아는 한 학번 선배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그분 하는 말이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군대에 갔는데 건축과에서 배운 프레젠테이션 하는 방법,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 PPT 만드는 방법,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 그리고 매일 밤을 샐 수 있는 체력 이런 것들이 되게 도움이 됐다더라. 그 바람에 군대 가서 상을 엄청 받았다던데. 그래서 자기는 어느 직업을 택하더라도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더라.(박효영)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박정수)

 

 

ⓦ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한테 부탁드리고 싶은 주문은?

자장면은 안 사주셔도 좋은데 함께 밤을 새워달라는 것이다. 교수님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철학과 마인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민동구)

 

학교마다 강사초빙의 사례가 많아져서 자기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다수 학교에 출강을 하시는데 그분들 입장에선 대학 ‘수업’이 단순히 ‘강의’라고 인식되어 있는 듯하다. 강의시간 외에는 그분들을 뵐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교수님과 학생의 관계는 소장님과 직원과 같은 관계와 다를 테니깐. ‘강의’로 생각해주지 말고 ‘수업’으로 생각해 주시고 조금 더 학생들에게 다가가주셨으면 좋겠다.(양은주)

 

우리학교는 설계 전임 교수님의 수가 적다보니 몇 분 안 되는 전임교수님들의 노고가 너무 크다. 전임교수진용의 확충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선수과목에 대한 수강의 유연성 확보가 요구된다는 점이다.(박효영)

 

같은 주제 하에 격론이 일어나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재학 중 한두 차례 경험한 바 있지만 그런 자리라야 선생님들의 논리가 학생들 가슴에 팍팍 꽂히는 감동이 있다.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들 간의 논쟁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학생들은 그걸 통해서 진짜 많이 베운다.(박정수)

 

잘잘못을 인정하는 대학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5년제에 대하여 처음엔 그분들도 굉장히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은데 그럴 때에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학생들을 지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교수님과 학생들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주문이다.(김택구)

 

 

ⓦ 10년 뒤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학교에 강의 나가서 원숙한 모습으로 지금 내가 경험한 것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줄 것이다.(양은주)

 

35살에 회사를 차리고, 40살에 학교에 출강하는 것, 그 사이 있을 수 있는 결혼이 내 꿈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박효영)

 

실패한 마케팅이론이라도 내 이론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평생 하는 일에서 하나의 주제로 관통되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박정수)

 

외국에 나가 있을 것 같다. 그 때쯤이면 국내에 돌아올 거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김택구)

 

학회나 협회의 일원으로 크게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문가로서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자가 되었으면 한다.(민동구)

 

 

ⓦ 나가며

좌담이 열린 그날은 오전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마음 한 켠에 숙연함이 가시질 않은 하루였다. 이 날에 마신 소주는 이 어려운 세상의 짐을 홀로 십자가로 떠메고 가신 그 분을 향한 눈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좌담은 그렇게 소주와 함께 진행되었다. 취기가 2층 골방의 공기를 데울 뿐 누구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날은 또한 참석자 다섯 명 중 세 명의 대학 졸업식 날과 겹쳐졌다. 친구들과 기족과 어울렸어야 할 그날 그 소중한 시간을 <와이드 이슈> 좌담에 할애해 준 참석자들이었다.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그들은 모두들 싱그러웠다. 하나같이 겉모습도 예뻤고, 속에 든 생각도 아름다웠다. 건축학 5년제 교육 프로그램의 초기 수혜자들인 이들에게서 건축은 희망의 시위를 겨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대화 중간 중간에 여러 선배 건축가들의 이름이 호명되면서 날선 비판과 찬사가 교차되기도 했다. 그 중 좌담 거의 막바지에 나왔던 한 가지만 여기에 기록한다. 건축가의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중용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박준호(공간건축) 소장의 지론이다.

 

끝으로 본 지면을 빌어 좌담 참석자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들의 창창한 내일을 소망하며.

 

진행: 전진삼(본지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