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서 운명으로

[이재명_5기]

 

 

2013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군 제대 후 열심히 건축 설계하겠다는 게 세 학기가 지났다.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지나니 열심히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느껴졌다. 한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 사이트의 사회적 배경을 조사하고 건축·철학 이론을 공부했지만 기한 탓인지 결과는 기존 프로그램과 베끼기로 적당히 마무리하곤 했다.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학교에서 배운 건축이란 것에도 회의가 들었다. 많은 사례로부터 사용자의 요구와 건축가의 욕심이 어긋나는 장면을 보았다. 사회를 건축적으로 보기는 끝이 없었지만, 건축 결과물은 그 중간에 나와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과로서 건축물보다 지어지기 전 그 지역사회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탐구하는 데 더 흥미를 느꼈다. 그때부터 설계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회를 건축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라면 ‘건축기자’ 쯤으로 불릴 것 같았다. 아무런 정보 없이 녹색창에 ‘건축기자’를 검색했다.

와이드AR저널리즘스쿨 여기서 처음 만났다. 나 나름은 건축기자가 뭔지 알아보려 했다가 곧바로 건축기자가 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난 행운이었다. 아쉽게도 당시는 4기 모집 기한이 지나서 다음 해를 기약해야 했다. 그러던 중 2학기에 건축비평 수업을 수강했다. 이 강의에서 다양한 건축 관련 초청강연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전진삼 소장님을 처음 만났다. 건축 역사나 프로젝트를 설명하던 다른 강연과 달리 국내 세 건축 단체에 대해 정리해주셨다. 도면, 디자인에만 파묻혀있던 건축을 사회로 꺼내본 순간이었다. 두 번의 우연으로부터 다음 해는 새로운 진로로 다가가기로 정했다.

건축기자가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 반, 건축기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걱정 반으로 와이드AR저널리즘스쿨 5기에 지원했다.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욕 하나로 운 좋게 합격했다. 매달 에세이를 쓰고 강연을 들으며 현장을 체험했다. 건축 이론과 저널리즘에 대한 강연도 많은 공부가 됐지만 무엇보다 글쓰기와 첨삭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초반에는 부족한 어휘와 늘어지는 문장 때문에 안철흥 기자님께 전달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단점을 개선할 여력도 없이 부족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부분이 건축을 쓰는 기자와 글 쓰는 건축가 사이에서 어느 쪽에서 접근하여 건축기자가 될 것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 것보다 글쓰기가 시급했다.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의 격려로 건축기자는 관심이 아닌 운명으로 더 다가왔다. 그러므로 부족한 실력을 절감하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채워야 할 부분을 확인하고 목표를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내가 오를 산은 정해졌다. 저널리즘스쿨을 만난 행운과 함께 맨몸으로는 안 됨을 깨달았다. 동시에 이곳에서 몇 가지 장비와 나침반을 얻었다. 또, 각자 험난한 길을 가는 동료를 만났다. 꿈을 좇는 이들을 통해 응원과 도움을 받는다. 나는 기자로 먼저 다가가는 길을 통해 더 높은 산을 오르려 하는 중이다. 내 부족함을 직접 부딪치는 험난한 길을 택했다. 저널리즘스쿨은 힘들 때 나를 알게 하고 다짐한 기억으로 포기하지 않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우연으로 시작해 내 운명이 되도록.

 

[이재명, 국민대 건축학, 2014, “저널리즘스쿨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