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호 BEST] 르포, 70년대 생 건축가의 리얼real 인터뷰

글: 박창현(간향클럽 멤버, a round 대표)

 

70년대 생 건축가 그들은 젊다. 오늘날 건축 사회에서 3~40대 중반에 걸쳐 있는 기성 세대를 지칭하는 젊다는 수사가 늘상 희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땅의 건축계에서 ‘젊은’ 건축가는 여전히 마뜩한 정의의 우산을 받고 있지 못하다. 신진으로서 기회의 세대임과 동시에 중견세대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중간세대로서 시행착오를 통해 건축가로서의 일신을 세워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외로운 존재다. 건축가 세대의 층위가 두터워지고 있는 세태를 반영하듯 이들 젊은 건축가들은 한국건축의 중심세대로 부각되면서 조차 존재감 면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3~40대를 달려나간 직전 세대에 한참 밀려난 형국이다. 더욱이 그닥 밝지 않은 국내외 경제상황이 저들의 활동 폭을 옭아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건축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건축의 성과들이 하나,둘씩 세인의 시선을 사로잡아가고 있다. 저들은 분명 가까운 미래 우리건축세계의 주역으로 등장할 터이다. 저들은 응원을 필요로 한다. 본지는 올해 줄곧 젊은 건축가, 그들을 향한 의미 있는 기획을 연속으로 선보이고자 한다. 첫 포문은 70년대 생, 동 세대 건축가 박창현이 자의적으로 기획하고, 지난 수년에 걸쳐 행동으로 집적해온 젊은 건축가(집단)의 인터뷰를 매개로 이 시대 이 땅의 젊은 건축가들의 꿈과 고민을 담아내고자 한 리얼 인터뷰, 중간 보고서다.(편집자)

 

 

Interview 1 – 인터뷰의 시작

1.01 2 005년

2005년은 이진오 소장과 함께 사이라는 이름으로 사무실을 처음 시작한 해이다. 햇수로 치자면 벌써 10년이 되었다. 온전한 나(우리)의 시간을 갖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왔기 때문에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주변의 또래 친구들은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있거나 해외 유학 중이라 자신의 사무실을 시작한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사무실을 시작하면서 처음 했던 일은 비슷한 연배의 일본의 젊은 건축가 리서치 작업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동년배 건축가들이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 건축가 사회의 관계 지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일본 건축계는 여전히 도제 식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고,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계보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사무실이나 학교의 선생님 또는 선배와의 위계가 명확하였다. 이는 21세기 초입인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2012년 ‘한일현대건축교류전-같은 집·다른 집’ 서울전시(2012.11.16~12.9, 토탈미술관)에서 만난 일본의 젊은 건축가들 중 몇몇을 인터뷰하게 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일본 건축계의 토대가 넓고 탄탄하구나’라는 생각에 내심 좀 더 깊이 알아 보고 싶은 욕구가 발동했다.

 

1.02  2013년

동경에 들러 근처에 있는 후지모토 소우(藤本壮介)가 설계한 무사시노 미술대학 도서관에 들렀다. 도서관의 한쪽에 건축 책이 있었고, 그 중 서가 구석에 한단 정도 한국 건축 관련 책들이 가지런하게 꼽혀 있었다. 그 책들 대부분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들이었고, 양으로는 50권이 채 되지 않아 보였다. 눈에 띄는 것은 그 중 약 1/5 정도가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준 선생이 70~80년대에 쓴 한국미술과 한국 전통 건축에 관한 책이었다. 한국과 관련된 책의 양이 적다는 사실에 적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동시에 저술 당시 자신의 건축작업만으로도 바쁜 일정을 소화했어야만 했을 이타미준 선생이 ‘한국 건축과 미술을 일본에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구나’ 라는 생각에 존경심이 끼어들었다. 그로부터 우리 세대의 젊은 건축가들은 후배들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자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1.03  1995년 이후

그 때 동경에서 또 다른 반가운 책을 만났다. ‘한일현대건축교류전’ 전시에 함께했던 후지무라 류지(藤村龍至)의 『1995년 이후』’(2009년 발간)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1971년에서 1983년 사이에 출생한, 일본 전역에서 활동하는 32명의 건축가들과의 인터뷰를 실은 책이었다. 책 제목에서 보이는 ‘1995년’은 윈도우95가 출시된 연도이고 컴퓨터의 보급과 정보 인프라의 가능성을 보인 해이기에 이 때를 중심으로 세대를 구분하여 제목을 달았고, 그 세대의 중심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은 건축가들이 위에 언급한 이들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책에서는 그 시대에 건축을 배우기 시작한 건축가들이 점점 사회와의 접점을 잃어버린 세대로 언급하고 있고, “인터넷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난 부분도 있지만 익명성으로 오히려 생산적인 건축 논의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인식하에 후지무라 류지는 인터뷰를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섬세하고 역동적인 논의를 일궈내어 책에 담을 수 있었다. 젊은 세대가 안고 가는 각각의 고민을 공유하고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에서의 돌파구를 찾아가는 다양한 시도와 방식이 책 전반에 걸쳐 꼼꼼히 정리되어 있어서 동년배 일본 건축가들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1.04  2014년

대중들의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인지, 해마다 건축과 관련된 전시나 출판과 관련된 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건축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별나라 이야기인 듯, 개인이나 여러 단체에서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가 기획되었고, 또한 기획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의 정체를 확인해볼 요량으로 전국 각처에서 활동하는 70년대 생 건축가들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이야기와 생각을 구체적으로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 인터뷰는 2014년 여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서울, 대구, 부산(동경, 오사카, 런던, 리스본, 포르토 등 해외에서 진행한 인터뷰도 다음 기회가 있으면 전달 하려 한다.)의 건축가 약 20여 명과 진행하였는데, 본고에서는 그 때 나눴던 내용 중 일부를 떼어내어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관심주제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의 고민 등 구체적 내용을 압축하여 전달하고자 한다. 미리 밝혀두는 것은 인터뷰가 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자기한계를 가지고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뷰 대상자 선정과 그 내용이 편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한 필자 자신이 전문 인터뷰어의 경험이 일천하기에 내용의 수준과 빈약한 질문이 한계였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동시대에 작업하고 있는 또래 건축가들의 여러 고민들을 잡지, 사진 또는 피상적인 글이 아닌, 작업을 직접 둘러보고 대면하여 그에 대한 생각과 구체적 내용을 심도 있게 서로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판단한다. 전체 인터뷰 내용은 이후 별도의 저작물을 기획하고 있는 바 이 글이 강호의 여러 고수들로부터 따끔한 지적과 제언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Interview 2 – 세대의 변화와 환경

2.01  2세대 이후의 세대

앞서 사무실에서 했던 리서치를 통한 일본에서의 세대 구분과 마찬가지로 한국 건축계에서도 변화가 보이는 세대가 있었다. 이종건 교수의 책에 세대의 구분과 관련된 글이 있는데 “한국 현대 건축의 계보로 보자면 김수근과 김중업(이 둘이 우리 현대건축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지점으로 보고 1세대 건축가)과 이들의 영향권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건축가가 2세대 건축가로, 그리고 그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건축가들을 3세대 건축가로 칭하자.”라고 하면서 세대를 구분 짓고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타난 내용에서도 정확하게 세 부류의 세대로 구분되는 경향이 보였는데, 그것은 시대와 함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된다. 60~70년대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김수근(1986년 작고), 김중업(1988년 작고)이 해방·건국부터 두 분이 작고하는 1980년대 중반까지 약 40년을 1세대. 그리고 김수근의 ‘공간’과 함께 1세대의 직·간접적으로 영향 받은 4.3그룹을 포함한 건축가를 2세대라고 한다면, 3세대 건축가들은 선배들과의 연결이 아주 미약하거나 단절되어 있는 세대로 보여진다. 그들은 이전 세대에서 경험한 격렬했던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거의 끝날 무렵 대학에 들어오게 되고, 오렌지족, X세대라는 단어와 함께 해외유학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와 맞물리게 된다. 이는 1989년 ‘해외여행자율화’가 가져온 큰 변화 중 하나였다. 굳이 해외 유학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자율적 해외 여행이 가능하게 되고, 윈도우95의 보급과 함께 인터넷 사용이 생활화된 것도 주효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도면을 캐드로 그리면서 이전에 손으로 도면을 그리던 설계 사무소의 풍경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결과는 세대를 구분해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이유가 되었다. 먼저 선생님이나 선배의 언급이 적어지고, 해외유학의 경험이나 외국 사무소에서의 경험이 더 중요한 밑 바탕이 되었다. 인터뷰했던 건축가의 60%가 유학을 경험하였고 그때의 경험을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작업을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2세대 건축가와의 직접적인 연관을 경험한 건축가는 대략 20%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선배 건축가와의 단절은 큰 변화 중에 하나로 비춰졌다. 이런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가벼운 접근으로 건축을 바라보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차이는 미학적인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기 보다 시각 중심적인 경향이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인터넷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 그리고 이를 향한 쏠림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내용보다 건축물의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몇몇 해외 사이트에 올려진 이미지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2세대 건축가는 형이상학적이고 근본주의적이고 언어적이고 도덕적이고 구심적이다. 반면에 3세대 건축가는 기술적이고 자유주의적이고 비언어적이고 윤리적이고 원심적이다. 2세대 건축가는 건축 행위를 뒷받침할 모종의 명분을 필요로 하는데 그러한 명분을 우리의 역사를 읽어내든 한국의 전통 문화라고 알려진 것을 차용하든 혹은 옛 것에서 찾고 그것을 섬기고 주창하고 퍼트린다. 반면 3세대 건축가는 그러한 인식의 무거움으로부터 비껴가 있다. 명분을 필요치 않고 따라서 건축 바깥의 언설보다 건축술 그 자체에 집중하고 그래서 교설적이라기 보다 사물적이다.”라는 내용과 나은중(네임리스건축)은 “선배건축가와의 대화에서 종종 ‘너희들의 철학이 뭐냐?’라는 질문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때 철학을 말하면 빈틈을 지적하십니다. 그 빈틈이라는 것이 젊은 건축가들만의 특권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젊은 건축가들은 이 허접함, 검증되지 않은 상황들이 훨씬 젊은 건축가다워 보입니다. 우리도 언어로 얘기하지만, 규정된 철학은 부재(유동적)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전 세대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시각적인 것에 관심을 더 가지는 것 또한 세대를 구분하는 주요한 관점 중에 하나로 보여진다.

 

2.02  이전 경험의 영향

앞서 이야기한 내용에서와 같이 3세대 건축가들은 선배들과의 관계나 영향이 적어 보이는 경향도 있지만 그 중 김수영(숨비건축)은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한다. “저는 좀 전에 언급되었고 직접적으로 함께 작업했었던 세 명의 스승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준성, 김종규, 알바로 시자 입니다. 숨비건축에서 보이는 건축적 영향이나 작업의 종류에 대해서는 별개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현재 건축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스승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 많은 상황에서 결정을 하기 전에 ‘이 스승은 어떻게 할까? 아니면 저 스승은?’이란 상상을 통해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갑니다. 다른 젊은 건축가들에 비해 창조적인 결정이 부족할 지는 몰라도 숨비건축이 하고자 하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긴 실무과정을 지나고 비교적 늦게 독립해서 이것 저것 실험을 하기 보다는 완성도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또한 김수영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디테일에 대한 내용에서도 알바로 시자의 고전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 어휘를 통해 완성도를 올려나가는 것이 자신이 받은 중요한 영향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경우로 민우식(민워크샵)은 “스티븐 홀의 사무실 운영 방식과 구조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감각과 공간감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어떤 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가 지금 현재 사무실 운영에 있어서의 작업방식과 태도에 많이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소정(OBBA)은 “제가 OMA에 있을 때 PM, 팀장, 직원, 인턴의 관계구도가 어떤 하향식 지시체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파트에 있어 각각의 전문가 개인이 모인 집단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파트에서 전문가의 자세를 취한 채 바라보는 공동의 목표점이 있기에 결과물이 잘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개개인에게 욕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한다면, 결국 좋은 프로젝트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경험했던 사무실에서의 일 자체의 성격보다 구성원의 전문가적인 시스템이 도움이 되었다 말하고 있는데, 이 내용은 대구에서 활동하는 우지현(오피스아키텍톤)에게서도 똑같은 톤으로 들을 수 있었다. 각자의 경험들은 자신의 사무실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사무실마다의 독특한 풍경과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 사무실의 철학을 이루는 토대가 되며 작업의 결과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3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

3세대로 불리는 세대들은 4.3그룹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만들었던 교육의 틀을 통해 다양한 관점의 접근과 논리적 과정을 경험하였다. 학교에서의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90년대의 일부 학생들은 서울건축학교나 경기대와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그리고 선경스튜디오와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을 받고 실무경험 또는 유학으로 무장된 초보 건축가들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누구에게서도 들어보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경황없이 시작된 일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결국, 난감한 환경에 처해진 우리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건축주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영업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건축주를 만났다 하더라도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우리는 대부분 건축주보다 어리기에 더 어렵다.) 설사 이야기가 잘 되어 계약을 하는 시점에서는 설계비를 어떻게 책정하고, 계약서를 준비해야 하는지?(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틀리에 사무소의 설계, 감리비는 거의 변함이 없다.)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개업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별 경험들은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규모도 작고 인지도도 낮은 아틀리에 사무소는 함께 일할 직원을 뽑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원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어렵기는 매양 마찬가지이다. 또한 현장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의 영역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시공사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현장 규모가 작고 지방 공사라면 더욱 더 어렵다.) 도면의 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현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진행해야 하는지?(적대적 관계 또는 동반자적 관계 둘 다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등의 설정이 더욱 어렵다. 모두가 잘 준비되지 않으면 바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나중에는 법적인 상황까지도 내몰리는 형국이다. 이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경영이다. 아무리 구멍가게 규모의 작은 사무소라 하더라도 돈과 관련된 부분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세무와 관련된 내용은 처음 사업자등록증을 내면서 봉착하는 문제이다. 이렇게 수많은 중요한 내용들을 혼자 헤쳐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이것들을 학교나 사무소의 선배들이 이전에 쌓아 놓은 경험(그것이 꼭 성공담은 아니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구걸하듯 듣고서는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나가지만,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젊은 건축가는 싸잡아 생계형 건축가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실제로도 ‘살아 남기’를 목표로 연명하는 사무소가 대다수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무소의 수는 많아지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사무실을 시작한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은 항상 ‘위기’라는 심리적 부담을 떠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것은 그들 모두 자신만의 생각과 내용을 담기 위한 고민들을 지속하고 있음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4  좋은 결과물은 좋은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1962년 한국건축작가협회(이후 한국건축가협회), 1965년 대한건축사협회, 1967년 대한건축학회, 마지막으로 2002년 새건축사협의회가 생기면서 제도적으로 좋은 건축환경 조성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아틀리에 사무소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은 일부 특정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아주 어렵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고 좋은 관계(시스템)가 필요하다. 김수영과의 인터뷰에서 공감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는 “먼저 우리나라의 건축 베이스는 근본적으로 일본 혹은 유럽과는 다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가가 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건축가의 역할이 어떤 것을 예쁘게 만드는 디자이너 정도라 생각하면 다른 문제이긴 한데, 책임질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건축가의 사회적인 책무를 논하기에 앞서 건축을 만들어내는 영역 내에서의 책임과 역할 그리고 소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앞섭니다. 건축 내에서조차도 불분명하고 이야기되지 않는데 건축 외부적인 것을 함께 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의 책무 자체도 모호한 상태에서 그에 딸린 수많은 협력업체들은 정말 말할 것도 없죠. 건축가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축적인 가치들을 건축주, 시공사, 협력업체에게 이해할 것을 강요하고, 외국 건축물 사진을 보여주며 왜 이렇게 못하냐는 물음 자체가 미안할 뿐입니다. 한마디로 건축은 내부적으로 너무 빈약합니다. 건축가가 원하는 건축물의 가치에 도달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심지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도 힘들죠. 일본이나 유럽처럼 명확하게 구분된 책임과 역할을 토대로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면서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외국의 상황과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불평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러한 상황을 껴안고 가는 수 밖에는 없는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라도 건축을 직능으로 삼고 있는 건축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한국적으로 다시 규정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건축가를 직능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알 것입니다. 또한 건축가를 직능으로 생각하는 건축가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죠. 이런 건축 구조에서 사회의 요구에 대한 반응 혹은 결과물의 질은 매우 낮거나 잘못된 방향을 만들어내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은중은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은 물리적인 시공이나 그 자재를 컨트롤하는 다양성은 이미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기둥의 이질적인 배치나 기둥을 얇게 쓰고 싶다.’ 안 되거든요. 일본에서는 쓰는 기둥인데 이것이 왜 안 되냐? 다 제한해야 된다는 거에요. 일본에서 100만원인 것이 한국에서 하려면 구조하시는 분이 솔직하게 이야기 합니다. 설계는 제대로 했겠지만 시공을 하려고 견적을 뽑아 보면 실제는 대부분 수공예적으로 시공해야 하고, 그러면 거의 5배 정도의 비용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수입을 해서 일본의 자재를 가져와도 비슷하다는 것이죠. ‘100만원짜리 건물 신축이 일본에선 가능한데, 한국에서는 5배 예산이 있어야 가능하다.’ 제가 생각하는 이 시스템이라는 것이 저희 내부적으로는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프로세스 자체가 전혀 사회적으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시스템(환경)이 뒷받침되어있지 않은데 우리가 원하는 것을 현장에서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어떤 태도와 역할을 취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 드는 대목이다. 스스로가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해나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다 이내 사라진다.

 

2.05  처한 현실

앞서 소개한 내용에서 선진국과의 비교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전 선배들과의 비교에서도 현실적으로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적인 시스템의 어려움과 함께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도 좋은 상황이 아니다. 건축가의 위상도 좋지 않은데 젊은 건축가가 사회적으로 신뢰받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인식은 내부적인 시스템의 부재와 연결되어있다. 이에 대해 김수영은 그런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능동적으로 건축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시공사나 협력업체가 적기 때문에 더욱 명확한 치수 원칙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공사나 협력업체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가 갑니다. 시공사는 저가 수주에 시달리고, 협력업체는 저가 설계비에 시달리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능동적으로 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건축가의 위상도 빈약한데 협력업체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점점 빈약해져만 가는 건축생태계를 생각하면 고민이 많이 됩니다. 이 모든 출발이 건축가의 역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건축가보다 더 많은 역할들을 수행해야 한다. 지금의 건축가들은 이전의 건축가보다 일의 영역 폭은 현저하게 좁아졌고, 역할도 줄어들었다. 반면에 일의 폭이 줄어 들었음에도 사회적으로 건축가를 포함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위치의 각 분야 사람들이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먼저 우리 스스로 전문가답게 행동하고 협력업체도 전문가로 인정하면서 대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공감을 하였다.

 

Interview 3 – 단어들

3.01  다양한 재료와 디테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건축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고 관심 가졌던 단어들이 재료와 디테일과 관련한 것이다. 유행처럼 사용되거나 관심 가지게 된 재료들도 있고, 그 재료들의 사용에 있어 어떻게 새로운 디테일로 마감을 할 것인가의 실험이나 스터디가 공통된 내용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어휘와 관점으로 재료를 다시 보기도 하고, 재해석해 표현하기도 한다. 어느 시기인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외부마감에서 외단열시스템과 벽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쌓기 방식과 기능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방편으로 디자인 된 외장재료는 그 숨어 있던 재료의 가치가 다시 알려지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들 중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가치가 경제적인 현실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또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각 선택된 재료가 가지고 있는 획일화가 지역의 색과 특징을 지우고 있는 상황도 동시에 엿보였다. 어디에서나 비슷한 재료의 사용 사례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지금, 또 한가지의 질문인 무엇을 쓸 것인가도 같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정현아(디아건축)는 자칭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작업 방식을 설명하였는데, 자신이 사용하는 재료들을 각 프로젝트마다 다르게 사용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더 확인하고 준비하는 자세로 작업에 임한다고 말했다. 이정훈(조호건축)은 “대지에서 적합한 재료를 찾아 소재로 삼되, 제 나름대로는 다양한 재료를 실험해 보고 있는 과정이에요.(중략) 벽돌도 쓰고 다른 소재들도 다시 가공하여 변형을 하는데, 예를 들면 단면을 끊어버린다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도장을 하는 등 변형을 많이 해보려고 해요.” 그는 다양한 재료의 실험과 함께 대지에서의 인상이 형태와 재료 선택에 많은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재료를 탐험하는 관심을 실험이나 구체적인 방법에 적합한 디테일로 만들어 나감으로써 작업을 구체화 시키고 있었다. 최진석(원오원건축)은 “내가 생각하는 디테일에 대한 경험 중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기술적인 뒷받침이 된 디테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쾰른에 줌터가 한 건물을 보러 갔었는데 내부에 있는 핸드레일을 잡아 보았어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안 흔들릴 수 있지? 통상 콘크리트에 핸들을 꽂았을 때 분명히 이 정도 강도를 가지려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콘크리트 칠 때부터 무엇인가 정착을 해놨을 것이라는 거죠. 그리고 문을 열면 손잡이가 있잖아요. 보통 독일 창들도 열면 딱 5mm정도 살짝 젖혀야 열리잖아요. 피터 줌터는 그 정도보다 훨씬 얇은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요. 바로 열려요. 미쳐 버려요. 뭔가 있는 거죠! 이런 것만 봐도 기술의 뒷받침과 동시에 사용할 때의 느낌들까지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좋은 디테일은 그것이 수반된 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 차이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디테일에 있어서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슷한 내·외부재료가 사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권형표(바우건축)는 “대부분의 건축주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안전하다는 것은 이미 최근 검증된 방향으로 쉽게 편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상을 원하는 건축주는 드물죠. 편승을 할지, 조금 더 적극적인 제안과 시도를 할지는 결국 건축가의 몫입니다.” 권 소장은 그 선택을 건축주와 함께 결정해 나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했던 건축가들 대부분은 좀 더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3.02  공간감과 구성

인터뷰 했던 건축가들의 대학시절 분위기는 다양한 교육과 경험이 시작되는 시기였다.국내에서는 선배 건축가들의 관심으로 새로운 건축교육에 대한 시도와 열망이 있었고, 외국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넘어 해체주의 건축과 같은 수많은 시도의건축가 활동이 두드러졌던 시기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했던 건축가 대부분은 모더니즘의 선상이나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결되어 있었다.공간에 있어 구성적이고 구축적인 어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현상학적인 경험이나 공간감에 대한 관심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부산에서 오신욱(라움건축)의 작품‘들띄우기’에서 보이는 겹의 벽이나 옥상으로 연결되는 계단의 시도는지역에서 보이는 지형과관련지어 설명한다.서승모(사무소효자동)의 ‘공간의 분절’은 기능과 사용성이 다양한 공간의분절과 함께 구축적인 형식의여러 시도 중 하나라고 이야기될 만하다. 또한 민우식이 이야기하는 절대감각의 공간감에 대한 유지는 철저하게 현장과 긴밀하지 않으면 얻기 힘든 결과를 의미한다.이렇듯 많은 건축가들이 비례와 공간감에 대해 구현하려는 관심은 어느 정도 결을 같이 하고 있어 보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간의 연결에서 나타나는 구성과 각 공간에서의 공간감을 유지하거나 구현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모더니즘의 관점에 맞닿아있다.

 

3.03  문법과 어휘

건축 작업 내용에서 구축적인 모습이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요소와 문법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건축에서의 요소는 구조와 함께 다양한 해석이 있었는데, 서재원(에이오에이건축)은 “건축은 기본적으로 자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소를 말씀하셨는데 요소들을 쪼개는 방법도 많습니다. 어디서부터 요소로 볼 것인가 하는 것도 본인의 주관적인 설정이죠. 물론 우리는 꼬르뷔지에의 돔-이노 시스템 이후로 슬라브, 기둥, 계단 등으로 요소를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물성으로 요소를 나눌 수도 있고, 계단만하더라도 더 세부적인 요소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이번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렘 콜하스가 보여준 요소도 생각보다 훨씬 더 세분화된 다른 방법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이 모두 작가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정해진 요소라는 것은 없죠. 제가 보고자 하는 부분은 요소를 어떻게 분류할 것이냐의 문제는 아니고, 요소 자체와 그 요소들을 엮는 일종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중략) 저는 강의와 건축 현장 모두 기본적인 요소 혹은 문법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그런 문법을 약간씩 어기며 만들어내는 변형들, 혹은 자연스럽지만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무언가, 결국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느낌들이 있습니다. 작가적 태도와 과정으로 보면 두 가지가 상반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제가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결과적 상황 혹은 분위기? 그런 것입니다. 대단히 일상적이고 당연해 보이지만 뭔가 이상하고 어딘가 어색한 것? 그런 것이겠죠.” 서 소장은 요소의 다양한 접근과 그 요소들의 교묘한 만남을 문법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어색한 만남은 결국 독특한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보고 그것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반면 다수의 인터뷰했던 건축가들의 공통적인 상황은 아직은 이러한 자신만의 내용을 글 또는 말로 정리해 진행하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피터 아이젠만이 문법 없는 언어의 나열을 보는 듯하다고 렘 콜하스를 비판하면서 문법의 부재를 아쉬워하지만, 한편으로 인터뷰했던 건축가는 그렇게 문법을 만드는 것을 건축가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인가?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것에 의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경직된 태도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계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고유 언어를 찾고 정리하는 과정은 필요하다는 것에 대부분이 공감하였다. 단지 시간에, 일에 쫓기듯 지내고 있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다고 이유를 대신했다.

 

3.04  전통과 한국성

우리에게는 참 쉽고도 어려운 단어다. 한국성이나 전통성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의 폭은 각자가 다르다. 외국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거나 한국을 잠시 떨어져 지냈던 건축가들의 시선, 그리고 국내를 떠나지 않았던 건축가 모두가 이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선배들이 고민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정훈은 “사실은 ‘전통’ 이라는 단어를 꺼내 드는 순간 어마어마한 언어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단어이기는 합니다.”라며 전통이나 한국성에 대한 부담감을 말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서재원은 “사실 그 부분은 이미 지역을 떠나서 너무나 보편적인 형식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감을 가지고 앞서 말씀하신 우리 것으로부터 끄집어내는 태도, 예를 들면 한국적인 고유의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거나 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정훈은 다시 좀 더 유연하게 이야기하는데 “’한국성’이라고 하는 것이 전통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공유될 수 있다는 접점에서 풀어가는 방법이 저는 ‘한국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성’이라고 하는 것이 이 땅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한국성’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건물을 지어서 그것을 구현해 내는 것이 ‘한국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건축가들의 인터뷰에서 나타난 ‘이질적이라고 느끼는 것’ 자체는 그 땅과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 정리할 수 있었고, 대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빚어진 결과는 자연스럽게 한국성이 따라온다고 것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3.05  담론(화두)에 대하여

전통이나 한국성과 관련된 질문과 함께 인터뷰이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했던 질문 중 하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화두나 담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문법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시기상 아직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그 중에서도 여러 다양한 생각과 관점이 드러났다. 담론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상황에서는 나오기 힘든 토대라는 견해도 채집되었는데 이정훈은 “일본이 그것을 너무 잘해 놓은 거에요. 그래서 그 후배들은 그 컨텍스트 속에서 조금만 덧붙이면 ‘담론’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거에요. 그런데 ‘담론’이라는 것이 하나도 형성이 안 되어 있으면 덧붙일 말이 없어요. 우리는 그것이 없는 것이고 일본은 그것이 있는 것의 차이이지요.” 비슷한 생각으로 서승모는 “카즈요 세지마까지 나오면 다른 게 뭐 나오겠어? 했는데, 이시가미 준야가 나오고, 다음이 나오겠어? 하면 뭐 또 다른 이가 나올 거에요.(웃음) 저는 후지모토 소우가 등장하는 정도는 그냥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이시가미 준야가 나왔을 때 어떻게 이런 것이 나오나?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게 연결되는 룰이 있어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꼬집어서 설명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 해외 건축가들 중 성격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에 대해 이정훈은 “그것이 바로 건축의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그 방향에 대해 자하 하디드가 너무 심플하게 정리를 한 것이죠. 그것이 운이었든 실력이었든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앞으로 가야 될 방향에 대해서는 분명한 색깔과 자기의 성향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고, 그러한 것들이 시대적인 컨텍스트에 맞춰져 묘하게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굉장히 힘들었겠지만 자하 하디드는 결국 그걸 넘어섰고, 저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시게루 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의 특징은 자신이 생각하는 건축에 대한 화두가 있어요. ‘나는 이게 건축이다’ 라고 생각하고, 처음에 누가 그것에 대해서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겠지만 그것으로 자신만의 미학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하나의 미학을 만들어내면 그것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것이 예술이에요. 그것이 건축이고요. 루이스 칸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만의 화두가 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건축을 쌓아나가는 것입니다. 그 방향이 한국 사회에서 모더니즘이라고 했던 것은 사실 토대가 좀 약하지 않았나 싶어요.(중략) 중요한 것은 역시 건축적 화두인 것 같아요. 자기가 어떤 모티브를 갖고 시작을 했고 어떤 모티브를 끝까지 조금씩 조금씩 진화시켜 나가느냐. 지금 작품이 평생 걸작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어차피 그것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화 시키는 습득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지금이 저는 그 시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작업에서 화두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작은 실마리를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어 붙이는 힘이야 말로 우리에게 필요로 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3.06  논리와 감성

인터뷰 과정에서 다양하게 분출되었던 내용 중에 하나는 자신의 논리와 감성을 어떻게 작업과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구분하자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태도와 선배의 작업 분석을 통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 있었다. 김수영은 이것에 대해 “거장들은 두 단어에 대해 모순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적확성 때문에 시적이고 감성적인 공간들이 연출된 것이라 확신합니다.”라면서 감성적인 공간들을 정확한 의도와 연결시켜야 함을 역설했다. 한편으로는 “작업의 내용이 절대 논리적으로만 진행되지는 않지요. 이런 소통의 과정에서 분명히 개입하게 되는 것이 직관적인 작업입니다. 땅을 대하고서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기도 하고, 스케치를 하던 중에, 건축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문득 떠오르는 무엇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직관적인 작업도 결국은 논리적인 것과 균형을 이뤄야만 구축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순주(바우건축)의 말이다. 이 내용에서 그녀는 직관적인 상황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도구가 적절하게 대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최영준(오피스아키텍톤)은 리노베이션 작업과정을 통해 논리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옛 구조체에서 다시 새롭게 만들어낼 결과물과의 만남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감성으로 시간을 연결시키는가에 대한 방법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내용이었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조율하면서 색깔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07  사회 구조 모순의 대응 자세

마지막으로 우리가 설계를 수행하면서 만날 수밖에 없는 고착화 된 사회 시스템과의 관계이다. 이는 대관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도 튀어나오고 공공프로젝트에서는 더 많이 풀어야 할 숙제처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몇몇 건축가들에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질문 했는데 하나는 자신의 경험 중 행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모순이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저마다 해법은 여러 층위를 이루었다. 먼저 나은중은 이런 상황을 삼각학교 프로젝트 때 경험하였다고 말하면서 “싸울 것이냐, 파도타기를 할 것이냐? 젊은 사람들은 싸우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분법적이지는 않아요. 처음에 이 시스템을 알았다면 효율적으로 끌고 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시스템에서 내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관계들을 무시하고 가면 과정이 너무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만약에 인지하고 있다고 하면 활용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로 이용해야 되는 건 분명합니다. 제가 볼 땐 과정상에 우선은 싸우는 것이에요. 파도타기라는 것으로 안 되는 게 더 많습니다. 알아도 고정된 시스템에서 안 이루어지는 것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교식(오우재건축)은 “어떻게 보면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서 또 다른 시스템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요. 결국은 뭔가를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고칠 수 있는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정치이고 행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겨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윤재민(제이엠와이아키텍츠)은 “여느 건축가나 마찬가지로 느끼겠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뭔가 다른 건축을 하고자 하면 결국 원하는 사람이 피해를 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잘 만들어진 것을 하겠다는 의지는 그 사회와의 싸움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건축계의 구조, 자재시장의 공급, 그리고 건축가 작업 자체에 관한 것들까지 상충되고 조율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같은 질문에 대해 김순주는 “싸운다고 대수는 아닌 것 같아요. 그 사회의 구조가 무조건 부정해야만 하는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많긴 하지만 어느 부분을 받아들여야만 다음으로 나갈 수 있죠.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점을 찾고 그 안에서 좋은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저는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협의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누구라도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건축가는 우리가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있다 말하고, 반대로 무거운 문제나 큰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있는 경험 많은 선배 건축가들이 해결해 주고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는 건축가도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피하지 않고 변화시켜 나간다면 조금씩 변화된 좋은 환경을 후배들에게 물려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Interview 4 – 2015년

4.01  조급함

20여명의,한국의70년대생 건축가들을 인터뷰하면서(짧게는 3년, 길게는 10여년 동안 사무실을 유지해온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한편으로는 수없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언어와 생각을 좀 더 다듬고 실천하는 과정은 여러 선배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무의식 중에 언제든지 힘들어 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묻어 나오는 정황도포착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심적, 물질적, 기회적 부담을 안고 사무소를개업하지만현실적으로도일이 계속하여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현실이다. 현재 한국의 저출산 문제, 고령화 문제와 앞으로의 불투명한 경제 상황에서어찌 보면 이러한 인식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일이 없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거의 없다. 우리는일이 없는 시간 동안 초조해 하고, 자신의 주변과 비교하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더 압박을 받는다. 그런 중에 만약 설계 문의가 들어오면 앞뒤 보지도 않고, 상황 판단이 흐려져 덥석 일을 물고 보게 되는데 그 결과는 우리를 더더욱 곤경에 빠뜨리게도 한다.좋지 않은 예를 들긴 했지만 지금의 조급함이 멀리 본다면 우리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조급함을 역으로 해석하자면 현실적으로 안정적이기 위한 것인데,이것 역시 자신의 위치를 교란시키는 주범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세대에게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조급함이다.

 

4.02  우리가 달려온 시간들

우리는 꾸준하게 일이 이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바빠 왔다. ‘왜 우리는 늘 시간이 없고 시간에 쫓길까? 왜 시간은 그토록 빨리, 그토록 허망하게 지나가버리는 것일까? 그토록 바쁘게 일을 하며 지내왔지만 어째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네 시간의 무게는 말할 수 없이 가벼워졌고, 그만큼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시간을 일에 묶어 두고, 시간을 곧 일에 국한된 시간으로 고착시켜 버린다. 단언컨대 일의 시간은 향기가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하는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이 없다. 일의 시간은 오늘날 시간 전체를 잠식해 버렸다. 긴장의 이완 역시 노동력의 재충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일의 한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8) 고 한병철은 말한다. 바쁘게 일을 해내며 지나간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토록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들을 가진다면, 그 시간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된다. 이제 시작했다고 위로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위치와 연령대에 들어서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조급함을 가지고 빨리 달려나갈 길을 찾기보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볼 수 있다면 그 조급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자문해본다.

4.03  인터뷰 후기

지금까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는 ‘사무소를 시작한지 3년 이상 유지되어온 건축가, 그리고 1개 이상의 완공된 작업, 마지막으로 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건축가들’ 중 먼저 1970년대 생으로 한정하다 보니 생각의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대화를 이어나간 부분도 많았다. 필자는 인터뷰를 처음 시작하면서 당장의 질문에 적합하지 않는 답을 하거나 힘들게 애써서 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시간이 지난 뒤 답하지 못했던, 그리고 인터뷰 당시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질문과 답변들이 스스로 또는 서로에게 또 다른 질문과 답변으로 엮여질 수 있다면 이 인터뷰가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한국은 지금 여러 기획자들에 의해 다양한 전시의 움직임이 있다. 후지무라 류지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세대는 건축 안팎으로 다양한 생산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에 동의한다. 다양한 접근과 방식은 우리 세대에 익숙한 방식이며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대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선배들은 보여주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미 인터뷰했던 건축가를 3년 또는 5년 후에 다시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나아가 60년대와 50년대생 선배들의 소중한 경험과깊은 지혜를 듣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해 보고 싶다는 희망으로 지루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끝)

 

*원문에는 다수의 각주가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선 일부러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필자 박창현은 2005년 ‘건축사사무소SAAI’를 공동 설립하여 <SKMS 연구소>로 제32회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였고, 2013년 ‘에이라운드건축’을 설립하여 <미얀마 아웅산 순국사절 추모 공원><아틀리에 나무생각>등을 설계하였다. <조은사랑채>로 2014년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하였고, 지금은 <제주무진도원><상수동주택><젊은 건축가와 대화> 등 설계와 리서치 작업을 함께 하며 경기대와 고려대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