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호 베스트] 건축 아카이브는 어떻게 소용되는가?

WIDE FOCUS 16: 건축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단상

글: 김영철

 

근대건축 탄생의 사상적 배경을 주제로 니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스위스 바젤대학교 도서관(Universitätsbibliothek Basel)과 독일 바이마르 소재 니체아카이브(Nietzsche-Archiv)를 오간다. 니체가 코지마 및 리하르트 바그너와 어떻게 교류하였는지, 바젤대학의 동료였던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와 건축가 젬퍼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특히 그의 양식론(Der Stil)을 어떻게 수용하였는지 등의 내용을 밝혀주는 사료가 이곳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저술에서 철학과 음악의 근본개념들이 왜 건축개념들의 유추인가라는 질문도 그곳에 보존되어 사료들, 즉 니체의 저서 및 그 초안들, 서신 교환, 메모들, 일기 등에서 해답이 찾아질 것이다.

 

근대건축의 주제를 공간으로 이해하는 건축역사가나 이론가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인 아우구스트 슈마르조August Schmarsow의 사료들은 처해진 상황이 니체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가 활동(1893-1919)했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보관하던 자료들은 이차세계대전 중 파괴로 인해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전쟁 이후 복구 과정에서 남아있던 사료를 대학도서관에서 분류해 보관하였다.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선작업이 시작되었지만 도서관에서 관리하던 자료들의 사료보관소 이관이 마무리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현실이 건축이론분야에서 슈마르조에 관한 연구를 어렵게 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독일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300 여개의 도서관, 박물관, 사료보관소들의 통합 포르탈이 구축되었다. 이로 인해 슈마르조 연구에 새로운 장이 열려서, 슈마르조가 건축이론을 구축할 때의 시대적 환경, 독자적 이론의 학파 형성 과정, 또 왜 교수직을 자의로 그만 두었는지, 대학 행정상 박사학위의 저작권 소유 문제, 예술학 이론체계의 성립과정에서 인접 학문간의 연계 문제 등 슈마르조 지적 전기를 서술할 미발굴 사료들의 접근이 가능해졌다. 12개의 기관에서 이 주제에 관련한 사료를 보관하고 있다.

 

시야를 넓혀서 건축의 사료가 어떻게 학문연구에 조직적으로 활용되는지는 취리히연방공과대학 건축학과의 경우가 잘 보여준다. 1967년 대학내 건축역사이론 연구소가 탄생할 때 사료보관소개념은 고려대상이 아니었지만 대학도서관으로부터 젬퍼아카이브를 넘겨받는 계기를 통해 먼저 공간이 확보되면서 제도화 되었다. 이곳에 수많은 건축분야 사료들이 70년대 이후 점증적으로 수장되었다. 젬퍼의 도면들, 원고들, 칼 모저, 지크프리트 기디온, CIAM의 사료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 이곳에서는 단순히 보존의 기능만이 아닌 연구 및 출판의 기능도 수행한다. 사료보관소가 도서관과 박물관 및 연구소와 함께 단일 체계로 효율적으로 연계된 후 매년 200여 연구자들이 방문해서 연구 활동을 한다. 문제는 공간의 규모가 한정되어 있고 유고나 자료들의 양들이 기부와 기증을 통해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을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료의 재분류를 통해서 일정 양을 폐기하기도 한다.

 

건축 아카이브는 건축분야의 자료들이 수집, 분류, 체계화되는 과정을 거쳐 사료로서 인정되면 이들이 연구 등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보관의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이다. 국내에서 건축 아카이브가 구축된다면 이곳에 수집될 자료들은 건축역사가나 건축학자 혹은 행정의 전문인 등이 판단하고 제안할 것이다. 법적으로 되어 있는 사료화 가능성의 기간이 인물의 경우 사후 30년 혹은 탄생 후 110년 등의 외국의 조항을 국내 건축계에서도 지켜야 하는지는 법제정안의 사항이지만 국내 근현대 건축가들의 자료가 장소의 문제로 인해 방치되거나 소멸되는 것을 막는 일은 시급하다. 아카이브가 무엇보다도 공간적 개념(archeion)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면 자료들이 보관될 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료와 사료는 분명히 서로 다르다. 정의에 따르면 아카이브는 더 이상 운영, 실무 혹은 행정상의 과제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자료, 즉 기록물이 수집, 체계화, 평가 이후 보존되어 이용 가능하도록 하는 기관이다. 여기에서 사료선별의 원칙은 변형불가능, 장기간 보존 및 활용 가능, 반복적 사용 가능 등이다. 자료가 아카이브의 사료로 인정되기까지는 절차상 서고와 임시아카이브(Registratur; filing cabinet)를 거친다고 하면 국내 건축계에서 아직 전문 아키비스트의 숫자가 극소수임을 고려할 때, 아카이브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엄밀하게 선별된 사료가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아카이브의 과제는 사료의 평가 및 분류이지만, 가장 중요한 업무는 폐기(Kassation; cassation)라고 하기 때문이다.(폐기근거:ISO15489) 여기에서 남게 되는 것이 보관된다.

 

공공기관, 즉 건축분야의 협회, 기관, 학교, 행정부 등의 공식 서류와 자료들은 일정 시간이 후 아카이브로 옮겨져야 한다. 최근에는 민간 차원에서 개별 건축가의 자료들도 아카이브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일반인의 접근이 허용된다면, 보관된 사료들의 내용 정보 공개와 활용가능 방법이 중요하다. 국내에서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에서 추진하려는 것처럼 아카이브들의 네트워크 구성이 실현되면, 무엇보다도 건축과 도시 분야 연구자들은 물리적 공간이동의 많은 수고를 덜 것이다. 최근 독일내에서는 칼수루에 대학과 베를린 국립도서관 포르탈(Kalliope)이 이 역할을 수행하며, 스위스 취리히공대 아카이브는 로잔 공대와 멘드리시오 아카데미아의 아카이브와 연계하고 있다.

 

일반 아카이브의 규모가, 독일의 예를 보면 주립/국립아카이브는 20-40 서가 킬로미터, 시립아카이브 2-5 킬로미터라고 한다. 뮌헨공과대학의 경우처럼 기존 박물관에서 소장하던 건축자료들이 아카이브로 이전되어 연구자들에게 접근, 활용이 용이해진 것과 같은 예가 우리 국내건축계에도 고무적일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었던 근현대 국내건축가들의 중요한 자료들이 새롭게 분류되고 여러 아카이브 공간에 소장되어 연구자들에게 개방된다면 한국 건축역사 연구와 서술은 훨씬 더 효율적인 차원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김영철 건축평론동우회 회장, 베를린 공과대학교 건축학과 박사과정, 건축이론 전공, 아우구스트 슈마르조의 건축이론과 그 수용을 연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