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글: 이종건(본지 자문위원,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식민지로 전락한 대한제국의 상황에서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려워 자결한 황현의 절명시 중에서)
오늘로서 우리의 국권이 침탈된 지 만 100년이 되었다. 한 세기를 꽉 채우는 이 연한은, 세 세대를 떠나보내고(한 세대를 대개 30년으로 잡으니), 바야흐로 네 번째 세대의 초반을 마감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나는 이 역사의 마디가 넘어가는 시점 언저리를 거의, 마치 하이데거가 언급했던 역운처럼이나 우발적으로 찾아든 호미 바바(Homi Bhabha)의 책(Bhabha for Architects; 가제: 건축과 탈식민주의 비판이론) 번역에 매달려 보냈는데, 거기서 만난 바바는 나로 하여금, 식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우리 땅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우리건축은 지금도 확실히 식민성의 질곡에 붙잡혀 있다)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새삼 절절히 느끼게 했다.
공부를 마치고 1994년 귀국했을 때, 내 앞에 펼쳐진 가장 인상 깊었던 우리 건축사회의 장면은, 탈식민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논의하던 모습이다. 나는 그 때, 바바를 위시해서 대부분의 탈식민주의 비평가/이론가들을 몰랐다. 그 쪽 진영에 속한 지식인들 중 유일하게 책을 좀 읽었던 사람은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사이드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겁 없이 그 논의에 뛰어들었다. 글도 하나 써서 발표 했다. 탈식민주의 비평/이론을 공부하지 않은 채 말이다. 우선, 내가 아는 만큼 발언하고, 논의하고, 그래서 배울 건 배우고, 파고들 건 파고들어볼 심산이었다. 이러한 다소 무모한 움직임은, 건축을 심각하게 공부하기 시작한 후, 건축의 주체성/정체성(탈식민화의 목표이자 목적) 문제로부터 의식의 끈을 놓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물론 그러하다. 거기에다, 한국 건축가들의 소위 작품들은 내 눈에 늘 마뜩했다. 이뿐 아니다. 건축에 대한 생각들도 그랬다. 내가 파악한 건축이란 것과 그들 사이엔 메우기 힘든 간극이 존재했다. 그러니, 그들이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을 건축이라 부르기도 석연찮고, 그렇다고 건축이 아니라고 부르기도 이상한, 그래서 늘 무엇인가의 빈틈에 끼어있는 느낌이었다. 바바는,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고서야, 나의 낀 느낌의 정체를 분명히 볼 수 있게 했다.
탈식민성 논의가 한참이던 당시, 나는 바바가 우리 건축사회에서 거론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지금도 별 다르지 않다. 바바의 주저 문화의 위치(The Location of Culture)가 내가 귀국한 해에 출판되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파농도, 스피박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당시, 학위논문을 위해 주로 퐁티, 하이데거, 니체, 데리다, 푸코, 블룸, 비트겐쉬타인 등의 철학자들과 바르트, 피어스, 소쉬르, 프라이, 폴 드 만 등의 문학비평 쪽에 온통 주목하고 있던 터라, 그 이외의 주요한 지적 흐름들, 예컨대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 담론 등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아마도 내 기억에 따라 추측컨대, 대부분의 논자들 또한 나처럼 탈식민주의 비평/이론에 그다지 식견이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우리 땅의 일부 사회학자들의 견해를 참조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 같다. 건축의 탈식민성 논의는 그리고선 말끔히 사라졌다. 물론, 설득할만한 길을 찾았다거나, 그 논의를 한계까지 밀어붙여서가 아니다. 우리 건축사회의 대부분의 논의들이 그러하듯, 무엇인가 유행하는 언어/개념들은 늘 그렇게 바람처럼 왔다가 다른 유형어가 들어서면서 소멸될 뿐이다. 그와 더불어, 나의 주목도 흩뜨려졌다. 주체성/정체성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 이후, 주로 우리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예컨대, 유승준 사건)을 통해 우리건축의 기형을 해석해내거나 고유성을 발견하는 데 주목해 왔다.
바바의 탈식민주의 비판이론을 읽으면, 몇 가지 고통스럽거나 난처한 주장들과 대면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국가, 곧 현대 국민국가(nation-state)는 대부분 식민지 혹은 식민주의의 역사의 소산이라는 것, 그러한 식민화 전략에 건축이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 게다가 그러한 식민주의 헤게모니 전략은 식민지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시대의 세계의 불균형적인, 불공평한 (문화, 정치, 경제 등 삶의 전 영역을 장악하는) 권력의 구축과 행사에 여전히 동원되고 있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게다가, 국가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동질화하는 하나의 지배서사에 토대를 둔 상상된 공동체로서, 근본적으로 반문화(따라서, 반건축)적이라는 것, 오늘날 세계의 건축(뿐 아니라 건축에 대한 정의 그 자체까지) 또한 그리스와 로마에 기원을 둔 서구건축의 단성(單聲)의 역사에 지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비-유럽권 건축들이 지금도 여전히 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부당하게, 심지어 경멸적으로 취급되고 기입되고 있다는 것 등도 그러하다. 물론, 현대성의 문제도, 오늘날 확고한 권위를 부여받은 현대건축의 역사도, 서구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지속시키는 식민주의와 모종의 공범관계에 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이면, 이 땅의 건축의 문제는 풀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다.
바바의 그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당장 몇 가지 치명적인 건축 사태들을 직면한다. 우선, 소위 한국 근대건축이라는 학문분과의 토대가 매우 위태롭다. 한국 근대건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식민지 지배자(대개 일본 제국주의)의 건축을 우리의 근대건축(혹은 초기 현대건축)으로 여긴 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식민주의를 위해 우리 땅에 구축한 제국주의 건축을 상세히 도면화 하고, 심지어 우리 문화재로 판정하여 보존하고, 나아가 한국근대건축사의 일차자료로 삼는다. 현대 건축운동과 연관된 건물들, 현장들, 근린주거들을 도서로 만들고 보존하는 운동인 도코모모(documentation and conservation of buildings, sites and neighborhoods of the modern movement)를 주도하는 우리나라 학자들의 정체들과 활동들을 보라. 현대성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유럽중심주의 현대건축사에 대한 지식에 정통할 뿐 아니라, 탈식민주의 이론이나 비평의 시각도 가장 날카롭게 견지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들이 그러한가? 서구에서 서구현대건축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학자들은 왜 배제되어 있는가? 지금 우리가 우리 땅에서 벌이고 있는 일체의 건축행위 또한 지극히 곤란하다. 설계와 토론과 담론을 포함한 우리의 현금의 모든 건축행위는, 서구 건축사에 포섭되지 않는, 혹은 포섭될 수 없는 우리의 건축 서사를 창안(혹은 발견)하지 않는 한,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연장 혹은 모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구 건축사뿐 아니다. 탈식민주의 관점에 따르면, 국가 또한 건축(문화)와 대립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건축을 포함한 모든 문화행위는 국가주의로부터 분명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해야 마땅하다. 말하자면, 우리 고유의 건축 혹은 한국건축이라는 국가적 수준의 건축 기획은, 그 자체가 이미 건축(문화)적이지 않다(내가 쓰는 ‘우리건축’이라는 낱말은, 우리 땅에서 우리가 연구하고, 고민하고, 논의하고, 실행하는 건축을 뜻하는 것으로서, 한국건축 혹은 한국적인 건축이라는 낱말이 함축하는 본질주의와 국가주의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주의해주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식민주의 이론/비평은 대학교육에도, 건축문화 현장에도 찾아볼 수 없다. 학연으로 얽힌 건축가협회와 같은 우리건축 단체들도 그렇지만, 건축교육 현장은 훨씬 더 고통스럽고 심각하다. 식민주의에 포섭된(혹은 식민화에 동원된) 건축(서)사를 가르침으로써, 우리 스스로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인정하고, 그리고 우리도 모르게 그것을 연장하고 있는 셈인데, 건축교육의 탈식민화 프로젝트라는 말은 우리 교육현장에서, 내가 아는 한, 언명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서구 건축문화를 답습하고 흉내 내는 우리 건축문화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식민주의에 대한 의식(그리고, 탈식민화의 의지)이 전무한 채 건축가를 작가로, 그들이 설계한 건물들을 작품으로 자리매김하는 우리의 문화놀이(비평이 거의 빈사상태에서 사실 문화라기보다는 각종 연에 붙잡힌 불온한 건축패거리의 작태라 불러야 마땅하겠다)는, 바바의 탈식민주의 이론/비판의 관점에서 보면, 무뇌증 인간들이 벌이는 별종 촌극(afterpiece)이다.
대한제국이 식민지 국가로 전락한 경술국치 앞에서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려워 황현이 자결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식민주의에 단단히 붙잡혀있는 우리건축의 항차의 운명을 우리 건축지식인들은 도대체 어찌 고민하고 있을까? 아니, 탈식민주의 방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지식인(들)이 있다면, 과연 몇이나 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