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호 BEST] 건축공모전 입상작 저작권의 설계자 귀속 판결 사건

2009년 한국 최고, 저항의 건축사건 원고

 

건축설계경기지침상 입상작들의 저작권은 발주기관에 귀속된다는 약관조항 무효 판결

-건축공모전 입상작 저작권의 설계자 귀속 판결 사건-

 

글: 박철수(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2009년 5월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정책국 약관심사과의 이름으로 다음 날 석간신문부터 보도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달아 ‘건축설계 입상작의 저작권은 설계자에게 있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당시 위원장 백용호)가 2008년 12월의 대한건축사협회의 심사청구에 따라 결정한 이 자료는 ‘건축설계경기지침상 입상작들의 저작권은 발주기관에 귀속된다’는 약관조항은 “무효”라는 것으로서 보도자료 배포 당시 조달청, 용인시, 안양시. 대한주택공사 및 한국토지공사(현재는 한국토지주택공사로 합병) 등 5개 발주기관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그들이 관행적으로 사용하던 설계경기 지침서상의 저작권 귀속조항을 자진 시정하였다고 알린 바 있다.

 

이 같은 판단은 건축설계경기(建築設計競技)가 발주기관 등이 2인 이상의 설계자로부터 각기 설계안을 제출받아 그 우열을 심사․결정하는 방법 및 절차 등을 말하는 것으로서 건축설계경기의 입상작은 통상 최우수작(당선작), 우수작, 가작으로 구성되는데, 최우수작(당선작)은 당해 건축의 설계권을 부여받고, 우수작과 가작은 설계권의 일부 혹은 소정의 상금을 수여받는 것을 설계경기지침의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이 약관조항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발주기관이 설계자의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전부 양도받는 조항으로써 그 양도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설계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므로 무효라는 것이 그 취지이다. 이에 덧붙여 이 조치를 시작으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건축저작권 분야의 저작권의 일방적 양도 관행을 시정함으로써 설계자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여 건축설계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 나름의 기대를 담고 있다.

 

이 일은 두 가지 차원에서 한국 건축계의 자성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건축계 내부의 동력에 대한 자괴감의 유발이며, 다른 하나는 건축설계산업에 대한 각성의 필요성 제기라는 측면에서 살펴야 할 일인 것이다. 공정위의 판단대로라면 이미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되어 있던 설계경기 발주기관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대한 건축계 내부의 그동안의 몸사림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스스로 인지하게 된 사건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건축설계산업에 대한 주변부의 지적에 대한 건축계 스스로의 창피스러움에 대한 자성의 기폭제가 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여전히 건축계 일부에서만 평가될 뿐 광범위한 건축계의 새로운 추동력이 되고 있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의 전말은 이렇다. 2007년 말 건축사 최동규와 박인수 등은 우리 건축계의 발전을 위해 실천가능한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 자그마한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대략 10개의 아젠다를 만들고, 이 가운데 우선적으로 설계자가 감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후 숭실대학교를 정년퇴임하신 이선구 교수가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로 ‘발주제도’와 ‘요율’에 대한 정책적 의견개진을 합의하였다. 한편 이 와중에 서울대학교의 김광현 교수가 건축가 하태석, 박인수 등과 특허청의 설계안 특허에 대한 교육을 위해 준비를 하던 중 ‘설계경기지침서상 설계저작권이 발주기관에 귀속’되는 상황에서 저작권과 설계안 특허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냐는 반론이 제기되었고, 서울시청 신청사 설계 당선 후 저작권이 아이아크에 없다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던 박인수는 대형 마트에 입점한 업체들이 매장 인테리어와 수리를 위해 경비를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는 상황이 불공정하다는 취지의 내용을 공정위에 제소해 승소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변호사인 친구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연후에 대한건축사협회의 한명수 당시 회장을 만나 일의 추진과정에 대한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받고 이어서 소송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최동규, 박인수, 김소라, 민규암, 이동우)을 구성하였다.

 

태스크포스팀의 구성으로 인해 본격적인 움직임이 전개되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소장(訴狀)을 만들고, 선임한 변호사 입회하에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를 피고인으로 하는 논란이 계속되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내부의 격론이 이어졌고, 저작권위원회의 자문 등이 수용되면서 태스크포스팀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같은 판결에 따라 당시 설계경기가 있었던 석유공사의 설계지침서 내용이 ‘입상작의 저작권이 갑에게 귀속된다는 것으로부터 저작권법에 따른다’로 변경되었다. 그 후 대부분의 설계경기에서 저작권은 저작권법에 따른다는 것으로 내용이 변경되었다. 따라서 설계저작권이 갑에게 귀속된다고 하는 지침서들은 모두 개별 소송을 통해 무효 판결이 날 것으로 정리된 것이다.

 

이 사건은 건축설계 업무를 정하는 것이 건축주의 일방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 거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건축을 둘러싼 모든 내용들이 국토해양부나 서울특별시 등 주무 관청이 임의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생산하는 주체가 참여한 업역에서 사회적 합의와 정의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드러낸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시공사 등이 발주하거나, 공공에서 발주하는 경우도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들에게 설계저작권이 귀속될 수 있도록 꾀를 내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건축계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정보의 공유가 필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