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총평]

[심사총평]

심원건축학술상은 새로운 자료의 발굴, 새로운 해석으로 건축지식의 경계를 흔들며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건축학의 기본적 관점과 태도를 중요시해왔다고 자부한다. 심사위원회는 이 같은 상의 의미를 상기하며 최종심사 결선에 오른 두 편의 추천작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다음은 각각에 대한 심사평을 정리한 것이다.

 

S-9-A-3. “경복궁 궁역의 모던프로젝트(강난형 )

이 논문은 연구의 주제와 목적 그리고 연구방법이 명확하며 선행연구와의 차별성과 내용의 객관성, 도면과 구술자료, 공문서자료, 보고서 등을 포함한 1차 자료들을 기반으로 주제를 논의하고 있어서, 매우 독창적인 연구물이라고 판단한다. ‘발전국가시기 광화문과 국립종합박물관을 중심으로(1962-1973)’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논문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문화유산으로 파악하고, 경복궁 궁역을 배경으로 광화문과 국립종합박물관을 중심으로 건축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으로 나누고, 다시 그것을 장소의 해석, 기술적 상황, 건축의 주제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이 논문을 움직이는 중요한 주제는 목구조를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치환하는데 따른 기술적, 정치적 조건들을 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건축을 복원하는 정치적인 문제와 그것이 왜 철근콘크리트 구조였는가 하는데 있어, 과거와 같은 전통성의 잣대보다는 사회적 조건을 통해서 접근하자고 하는 취지는 역시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 논문이 사회적 조건과 상황적 조건을 다소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 심사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다. 이 논문이 피력한대로 전통건축의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1962-1973년의 사회적 조건에서 가장 큰 주제는 바로 경제발전과 민주정의 대립인 것이었다. 이 논문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이 대립으로 인해 시민의 생활과 정치, 경제, 문화가 왜곡되었던 때였고, 이 현상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저자는 건축만을 중심에 놓고 당시의 시대 상황을 다소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지적이 있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 사이에 극심한 의견의 대립이 있었다는 것을 부기하여 둔다. 당시의 사진자료와 기술적 문제를 생생하게 전하는 구술까지, 풍부한 자료를 생산하고 가공하여 수록하고 있는 저자의 논문은 철근콘크리트로 전통을 구축하던 시절의 정황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참신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 장소해석이나 광화문 앞길 변화에 따른 주변 공간의 해석, 광화문과 국립종합박물관의 건축주제로서 근대성 재해석 부분 등이 사실적 자료 나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료를 더욱 분석하고 심도 있게 해석하였더라면 보다 좋은 논문이 되었을 것이다. 또, 광화문 궁역의 변화와 광화문 및 박물관 등을 한데 묶어서 유기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편들이 모여 있기만 한 것 같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앞으로 한 권의 저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체 구성이 더욱 통합되기를 바라며, 일관성 있는 글의 흐름과 깊이 있으며 긴장감 있는 논의로 논문을 재구성하기를 기대한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새로운 시도인 것만큼이나 깊이와 논리 전개가 다소 약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한 전통건축의 구현 방법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시각을 떨치고 새롭고 과감하게 물질과 구축에 대한 논의를 열어가고자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의미와 가능성이 매우 큰 논문이라고 판단하였다.

 

S-9-A-2. “현대건축의 자율성과 비판성(이경창 )

이 논문은 무엇보다도 건축외적 논리를 이용하여 현대건축의 난해한 담론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눈에 띈다. 그런데, 저자의 논의에 차용되는 언어들이 사전적 의미의 나열 혹은 원문 용어들의 직역에서 오는 의미 전달 문제 등은 이 논문을 읽어내려 가는데 있어 많은 장애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 저자의 논의나 설명 또한 문제의 핵심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어려워 보였고, 전체적으로는 다소 현학적인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가 관련 담론들의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여 본인의 글로 이끌고, 자신의 논의로 풀어 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예술의 자율성과 비판성은 아도르노와 바흐친의 문학이론 등에서 무수히 다루어졌던 주제이다. 이 주제를 건축으로 끌어들여 만프레도 타푸리가 현대건축에 던진 질문들을, 또 광범위한 담론들(벤야민, 푸코, 들뢰즈, 가타리, 하이데거, 하버마스, 짐멜…)을 인용하며 한국 현대건축의 질문들로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이, 저자가 바랐던 이 논문의 목적인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미국과 유럽의 건축적 상황을 수많은 인용으로 전해주고 있다. 아도르노가 촉발시킨 예술이론은 문화산업론을 위시한 계몽비판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는 문화비판에서 출발한다. 다만 만프레도 타푸리가 거기에서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일단 우리는 알 수 없다. 이 논문이 차라리 아도르노를 시발점으로 삼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 지적에 따르면, 건축이 아도르노의 예술이론과 어떻게 정합되며 부합되는가를 밝히고, 대안을 제시한 후 미국과 유럽의 건축사조들을 점검하여, 그와 연관된 실제적인 건축 작업들을 살피고, 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결론을 맺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이때의 가장 핵심적인 링크는, 아도르노를 위시한 서구 예술이론과 건축이 연결되는 지점이 될 것이다. 아쉽게도 이 논문은 이러한 링크가 결여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논문의 제목 “현대건축의 자율성과 비판성”이 갖는 의미는 전체 내용과 비교해 볼 때, 다소 모호해 보인다. 또한 현대건축가의 해석부분에서는 이미 알려진 건축물이나 접근방식에 대한 건축가 자신들의 원래 설명보다도, 저자의 설명과 해석이 독자들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명료한 논점이나 철저한 연구에 의해서 어떤 철학적 견지를 새로이 규명하는 데까지, 혹은 저자 본인의 비평적 사고나 대안적 사고를 제시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채, 논문이 마무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이 논문을 통해서 기대했던 소위 “한국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이 부족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크게 남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론

심사위원회는, 전원 합의제의 전통을 고수하고, 또한 상기 두 편의 추천작 중 한 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 위하여, 지난한 논의과정을 통해서 심사위원 간의 극심한 의견대립을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하였다. 곧, 강난형의 응모작 “경복궁 궁역의 모던 프로젝트”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수상자가 향후 1년간의 출판 준비기간 동안 앞서 미흡하다고 지적한 내용을 충분히 보완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 심사위원: 김종헌(배재대 교수, 건축학), 박진호(인하대 교수, 건축학), 우동선(한예종 교수,건축학), 함성호(스튜디오EON 대표, 건축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