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평]

1. 심사위원: 우동선(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건축학)

 

지난 2016년 1월 7일에는 제8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를 진행하였다. 이번 심사를 위하여 내가 읽은 응모작은 모두 4편이었다. 이 중에서 이길훈 박사의 논문인 「일본 근세 도시사 –아키치와 다이치를 통해 본 에도」가 발군이었다. 심원건축학술상은 명칭 그대로 건축학의 학술적 가치를 지향하는 상이기에 다른 심사위원들도 이 논문이 학술적으로 발군이라는 점에 쉽게 동의하였다.

이 논문은 아키치와 다이치를 통해서 에도(江戸)의 변화상을 조명한 것이다. 아키치(明地)와 다이치(代地)는 에도에 존재했던 특수한 토지인데, 아키치는 화재를 대비하여 비어둔 땅(空地)이었고 다이치는 이미 거주하고 있는 땅에 아키치를 설정하기 위해서 소유자에게 대신 주는 땅이었다. 일본의 근세 도시는 거주자의 신분에 따라 무사지(武家地), 사사지(寺社地), 쵸닝지(町人地), 햐쿠쇼지(百姓地)로 엄격한 거주 구분이 있었고, 도시 내의 토지 소유는 신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더구나 분절적 구조를 갖고 있어서 “토지의 신분제”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일본 근세도시에서는 “사회=공간”이라는 도식이 성립하고 있었다. 이길훈 박사는 아키치와 다이치를 통해서 에도를 살펴봄으로써, 이 특수한 토지를 둘러싸고 막부의 이해와 쵸닝의 이해가 어떻게 부합하여 갔는가를 조명할 수 있었다. 막부는 아키치를 많이 두어서 “에도의 꽃”이라는 화재를 예방해야 한다는 명분과 그 땅을 그냥 놀려둘 수만은 없다는 실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했고, 쵸닝은 토지의 효과적 활용으로 이익을 극대화해야 했다. 이로써 근세 중기의 에도에서 공간은 고정한 것이 아니라 유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었다. 또 그 유동은 쵸닝지를 넘어서 무사지, 사사지로도 연쇄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으며, 에도의 도시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었다. 에도는 17세기에 급속히 거대화하였고 18세기 전반기에 50만의 인구에 달했지만, 대부분이 무사지와 사사지로 쉽사리 가용할 수 없었기에, 항상 토지부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논문은 무수한 흘림글씨의 원사료를 판독하여 사료로 구사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판독 후의 결과만이 등장하고 있어서 판독하는 과정의 어려움이 효과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또 논문의 기술방식은 마치 화학방정식의 결과만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데다가, 아키치, 다이치, 나누시, 모토치, 카이쇼지 등과 같은 낯선 개념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지금 상태의 원고로써는 일본의 도시건축사에 친숙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난독의 대상이 되기 십상일 것 같다. 앞으로 단행본으로 출간하기 위해서는 보다 알기 쉬운 글쓰기와 개념 설명과, 보다 많은 도해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도에 관해서는 수많은 형형색색의 시각자료가 자세히 전해지는 바, 이 시각자료의 적극적인 도입을 기대해마지 않는다.

이 논문은 이제껏 온축한 일본 도시건축사학계의 방법론과 시각을 충분히 원용하면서, 아키치와 다이치의 동향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살핀 의욕적인 연구로서, 일본 학계에서도 에도 연구에 일정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앞으로 이 논문을 통해서 근세 도시의 연구가 “공공공간”, “대토” 등과 같은 현대 도시의 현상을 성찰하는데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토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연구가 퍽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온 동아시아 대도시들의 같음과 다름을 살피는 주요한 시금석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또, 이 논문이 자료와 방법론에서 여전히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한국의 도시건축사학의 연구에서 하나의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

 
2. 심사위원: 박진호(인하대학교 교수, 건축학)

 

일본 근세 도시사아키치와 다이치를 통해 본 에도

이 글은 일본 에도 시대의 아키치와 다이치의 연구를 통해 당시 도시공간의 이해 및 변용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도시의 형성 및 확장 과정을 고찰하고 있다. 아키치와 다이치의 정의, 유형, 시기별 이용과 관리 및 지역별 변용 실태조사와 함께 도시의 형성 및 확장과정에서 나타나는 토지제도, 지주와 거주자와의 관계에 따른 소유권 변화과정 등을 세부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원고에 사용된 자료 및 글의 성격이나 기술 및 연구방법 그리고 논리 전개 양상을 보아서 학위논문으로 사료된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일본 에도 시대의 도시 형성과 확장에 관한 논의를 역사적 사료(original material)에 근거한 해석 및 분석은 건축사적으로 의미 있다고 평가된다. 일본의 역사적 사료를 조사하여, 차근차근 고증해 나가는 접근법으로 보아 분명 연구자가 기본자세에 충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제출물은 신진연구자를 발굴하려는 심원건축학술상의 취지에 부합하며, 수상작이 될 요건들을 구비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다만 평가자인 본인으로서는 연구 분야가 달라 이 논문의 독창성이나 학술적 가치를 심도 있게 평가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문제는 이 논문이 일본어의 혼용으로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그 주석이 충분하지 못하여 논문의 독해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내용상 역사자료나 문헌의 기술적인 전개에 가까운 부분이 많아 독자들에게 내용전달이 쉽지는 않다. 물론 이러한 점들은 학위 논문에서 오는 한계이기도 하다. 일본 학위 논문을 제출 시간 내 한글로 번역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또한 내용 전개에 있어서도 설명이 부족하여 논문의 전후좌우의 문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기본 상식이 없는 건축독자들에겐 더더욱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단행본으로 발전될 경우 논문의 앞, 뒷장을 추가하여 논문관련 일본근세의 도시사 및 건축사에 관한 충분한 해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논문의 취지, 의미, 그리고 저자의 비평적 관점 등의 부가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심사자의 평을 잘 고려하여 건축, 도시 관련 독자들이 이해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출판물로 발전되길 바란다.

 

탈락작: 상상의 아테네

건축과 도시를 소재로 베를린, 동경, 칭다오, 대련, 신쿄 그리고 서울까지 다양한 시 공간적 스펙트럼과 함께 정치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의미 있는 융합적 시도라고 판단된다. 논의 전개는 건축 양식과 도시를 둘러싼 해박한 지식과 함께 저자의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담고 있다. 또한 평가자의 입장에서는 독일 건축가 싱켈의 이론이나 작품 중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부분의 설명도 유익하였다. 건축과 도시를 소재로 베를린에서, 동경 그리고 서울을 아테네로 묶으려는 저자의 시도가 발상은 신선하지만 상당히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저서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건축물을 소재로 도시의 관계 맺음에 주목한 한 역사가의 가설적 담론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논의의 요지는 이해하나 건축전문가의 입장에선 내용이 정교화 된 개념도, 고증에 근거한 연구물도, 독창적 연구방법을 지닌 전문분야의 학문적 연구 결과물도 아닌 어색함이 느껴진다. 즉, 이 저서는 내용 전개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목표점에 전문분야의 학술적 성과나 연구 성과에 근거한 논의가 아닌 저자의 상상적 관점에서 내용을 이어가고 있다.

해당 분야 비전문가의 글은 당연히 연구물의 질적인 측면에서 독창성이나 전문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저서의 전문적 내용을 타 저자의 저서나 논문에 의지하면서 글을 구성하였기에 해당분야의 학문적 깊이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한 다면적의 주제를 융복합한 결과, 논의에 불필요할 정도의 방대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이 저서가 신진연구자를 발굴하고 건축분야 연구 성과물의 독창성과 학술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심원건축학술상 선정의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다.

 
3. 심사평: 함성호(건축가, 스튜디오EON대표)

 

총 4편의 응모작을 검토했다. 심원건축학술상이 꼭 논문의 형식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일기에 지나지 않고, 더군다나 신변잡기에 가까워 전혀 보편적인 공감조차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응모작도 있었다. 「도시건축일기」가 그랬다. 응모자 스스로도 ‘일기’라고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아 심원건축학술상의 범위를 너무 넓게 생각한 탓이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본 상의 취지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응모작은 「건축가 시인 이상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이었다고 본다. 전자는 시인 이상을 건축가로서 재조명하고 그의 건축적 이상을 재구성하여 근대 한국건축에 전위적 정신을 그려보려 했던 의도는 좋았지만 결국 시인 이상을 건축가 이상으로 자리 매김하는데 실패하면서, 그의 건축적 이상을 근대건축의 전위로 세워보려던 야심도 함께 무너져버렸다. 샤를로테 페리앙을 구원의 여인으로 보았던 점은 문학적으로 신선했지만 그 직접적 연결점을 끝내 증명하지 못하여, 그 마저도 추측과 비약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웠다. 응모자에게 신범순의 『이상의 무한정원 삼차각 나비』에서 다른 단서를 취할 것을 권한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은 식민지 서울의 모습을 도쿄에서, 그리고 도쿄의 모습을 베를린에서 찾으며 프러시아가 구현하려고 했던 아테네의 모습이 어떻게 일본을 거치며 굴절되어 서울에까지 와서 오늘날의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자세하고 집요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식민지 근대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알려준다. 단지 식민지 근대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고자 하는 몇몇 표현들이 저자의 역사 인식을 우려케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만행 역시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그 균형을 잡아 나가는데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어쩌면 심원건축학술상이 가장 바라마지 않던 내용과 형식을 갖춘 이 저서가 심사위원들을 마지막까지 망설이게 한 것은 서울의 상황에서 이전까지 얘기해 왔던 치밀한 논리들이 끝까지 긴장감을 갖고 있지 못하고 엉뚱한 예를 들면서 서둘러 맺으며 납득할 수 없는 결론으로 치달았던 점이다. 결국 서울의 얘기에서 그가 한 앞의 모든 논리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신뢰를 주었던 작업은 「일본 근세 도시사­아키치와 다이치를 통해 본 에도」였다. 꼼꼼하고 정확한 사료를 바탕으로 에도의 변천사를 짚어 나가고 있는 이 논문은 사실 본 심사위원의 재량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에도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결국 이러한 연구가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찾을 수 없었던 점이었다. 적어도 심원건축학술상은 어떠한 연구든 그것이 우리의 삶과 과거, 혹은 미래의 모습에 이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점에 있어서 심사위원 중에 한 분이신 우동선 교수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심원건축학술상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틀에 얽매인 논문이 아니다. 본 상의 목적은 건축의 외연을 확대하고, 그 내면을 깊이 있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근세 도시사­아키치와 다이치를 통해 본 에도」가 그런 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치밀함과 사료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나는 이 논문이 좀 더 많은 것을 외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고, 그것에 걸기로 했다.

 

[<와이드AR> 50호, 제8회 심원건축학술상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