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당선작(주평론)]

차운기 건축에 나타나는 고향의 의미

 

글: 이경창

 

실내는 단순히 개인의 우주일 뿐만 아니라 방물 상자이기도 하다. 거주한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유행은 과거 속으로 뛰어드는 호랑이의 도약이다.

–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나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 황지우, 「노스탤지어」

 
거주/고향
건축의 기본적 임무는 거주를 다루는 데 있다. 바슐라르에게 집이란 “육체이자 영혼이며, 인간 존재 최초의 세계”이다. 그에게, 집은 추억과 “꿈들의 집적체”이다. 그런데 바슐라르는 추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닌 공간이라고 보았다. “우리들이 오랜 머무름에 의해 구체화된, 지속의 아름다운 화석들을 발견하는 것은, 공간에 의해서, 공간 가운데서인 것이다. … 추억은 잘 공간화 되어 있으면 그만큼 더 단단히 뿌리박아, 변함없이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집이란 기억을 담는 곳이다. 문제는 바슐라르에게 집은 과거 시제로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슐라르가 보기에, 현대인은 집이 아닌 “포개어져 놓인 상자들 속에서” 살아갈 뿐, 꿈과 추억, 기억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진정한 의미의 집은 없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고향상실”(Heimatlosigkeit)의 시대라고 한다. 진정한 거주는 고향과 통하는 개념이다. 하이데거는 짓기building와 거주Buan의 “고대어 ‘bauen’을 통해 인간이 지상에 존재하는 방식이 바로 ‘거주(Buan)’이며, 인간은 거주할 때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향상실’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은 진정한 고향이라는 의미로서의 집을 잃어버리고 거주지로서의 주택만 소유할 뿐이다. 현대인은 집을 잃어버린 존재이며, 고향을 잃어버린 존재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차운기의 건축을 관통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연을 배우며 자랐다. 그들이 아이들을 멀리한 채 떠난 후 우리의 아이들은 무엇을 벗 삼고 무엇을 배우며 어떤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까? 그들이 영원히 자기네 땅을 찾아 가버린 지금 영원한 고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어리석은 인간만 그곳에 덜렁 남아 빈 허공에 허우적거릴 뿐….

 

차운기에게 고향과 자연, 추억은 건축이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이제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을 잃어버린 세대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우리를 순화시키는 방법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전략은 잃어버린 고향을 되살리는 것이며, 자연을 닮은 건축을 짓는 것이 된다.

 
은둔과 자적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은 현대인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동양의 오랜 전통속에 고향으로의 귀환, 자연으로의 은둔은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었다. <<晉書>> <文苑傳 張翰傳>에 보면, “장한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문득 고향의 줄나물・순채국・농어회가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이 간절해지자, ‘인생에서 가장 귀히 여겨야할 것이 자적하는 삶이다. 어찌 고향을 떠나 수 천리 타향에서 관직에 묶여 명리와 작위만을 바라고 살아갈 것인가?’라고 하고는, 마침내 수레를 준비하라고 일러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하는 기록에서 보듯 이런 생각은 노장사상 이래로 동양의 전통을 이루어왔다.

 

또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은둔이 처세지도(處世之道)의 하나로서 존중되어 왔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은둔하는 것은 아니었다. 역시 자신의 사상이나 행위가 전혀 현실화될 수 없을 때, 즉 세상의 사고방식과 부합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은둔이라는 행동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이것이 시와 그림에서 산수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 나아가 자적하는 삶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졌다. 즉, 아무런 위협 없이도 스스로 은둔과 자적의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다. 도연명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도연명은 <九日閑居>에서 은둔 자적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옷깃을 여미고 혼자 한가히 시를 읊으니 歛襟獨閒謠

끝없이 깊은 정이 일어나는구나! 緬焉起深情

은둔하며 사는 삶이 즐거움이 많고 棲遲固多娛

머물러 오래 사니 어찌 이룬 바 없다 할 것인가! 淹留豈無成

 

현대 한국인에게는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 탈고향 역시 세상에 닥친 거대한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경향은 고향에 대한 향수로 두텁게 자리 잡고 있다.

 
자연/졸박(拙撲)
차운기는 자연친화적인 요소를 “오래되어도 변할 게 없는” 것,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오래 된 듯한 요소”, “편안함을 주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이것은 과거 한옥에서 찾아낸 중요한 가치이다.

 

집이라는 게 자연친화적인 요소가 있을 때 더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 되어도 변할 게 없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오래 된 듯한 요소가 있는 것이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과거 한옥의 경우 몇 대를 거쳐서 사는데 그렇게 대를 물려 살면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배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편, 자연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질문에 선이나 면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은 ‘기계적’이라고 생각하며 그에 반하는 개념으로 “너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흐트러진 듯 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너무 정형화된 것은 기계적인 반면, 조금 흐트러진 것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것이다. 그에게 자연이란 “흐트러진 듯 한 것”,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고향의 이미지와 상통하는 것이다.

 

쑥스럽지만 나의 건축관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만드는 건축이 조금은 자연에 가까웠으면 하는 것. 마음의 고향처럼 사는 이, 보는 이가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것.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컴퓨터를 모른다. 되도록 불편하지만 감각을 요하는 집, 기계가 배제된 집, 사람의 손길을 요하는 집을 좋아한다.

 

고향으로의 귀향과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차운기의 전략은 형태의 자유분방함과 재료의 사용에서 두드러진다. 또한 차운기는 기계문명 보다 수공예적 작업을 추구한다. <곤지암 주택>에서 흙담벽을 만들면서 일부러 위에서 떨어뜨려 쌓아가는 방법은 그것이 자연스러움을 만든다고 믿어서이다. <택형이네 집>과 <곤지암주택>의 경우만 보더라도, 불규칙적인 창문을 하나하나 수공예로 제작하여 만들며, 철근과 시멘트 뿜칠을 이용하여 초가와 같은 지붕을 만들어낸다. 너와를 씌운 지붕과 막돌과 흙을 이용한 벽체쌓기는 차운기 건축을 고향 재현하기의 주된 방법이다. <재즈 스토리>를 지을 때는 “6ㆍ25 때 폭격 맞았다고 가정하고 그렇다면 집주인이 어떻게 수리할까를 생각하며” 짓는다. “완전히 신축을 하되 새로운 부분들에 대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해야 된다. 오래된 이 동네의 환경적인 정서와 정신적인 정서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신축이지만 더 오래된 것 같은 집. 엉성하지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리된 것 같은 집”이어야 한다.

오래된 집이 새 집보다, 엉성한 집이 정돈된 집보다 낫다는 생각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구절은 큰 기교는 졸렬하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인위적인 기교를 배격하고 졸박함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즉, 일차적으로는 대교((大巧)와 졸(拙)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듯 보이지만, 대교약졸의 졸은 단순히 기교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교를 포괄하면서 한 차원 더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기교가 발달하기 전의 소박미와는 다른 것으로서 기교를 속에 내포하고 있는 세련된 소박미이다. 퇴계가 도산서당을 지으면서 “비로소 내가 시내 가에 거처할 곳을 골라 시냇가에 집 두어 간을 얽어매고 서책을 저장하고 졸박을 기르는 장소로 삼았다”고 한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대표적인 도학자인 퇴계와 율곡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추구한 미의식 중에 ‘졸박’의 미학이 창출”되었다.

 

차운기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요청은 바로 이런 맥락을 이어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일부러 폐자재, 고재료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방식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폐자재, 고재료는 그에게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고 사람손길이 많이 닿으면 닿을수록 좋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고졸미(古拙美)에 대한 예찬으로 볼 수 있다.

 

“나의 건축 작업에서 자주 쓰이는 폐자재, 고재료 등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고 사람손길이 많이 닿으면 닿을수록 좋아질 가능성이 있어서 좋다. 나는 그 자체를 누드라고 보기 때문에 그러한 재료들을 좋아한다. 또한 자주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를 든다면, 죽음에서 또다시 생명력을 갖게 되는 희생된 생명력은 우리에게 엄청난 희망과 기쁨을 줄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 예를 들면 목재 같은 경우, 오랜 세월을 통해 찌들고 뒤틀리고 썩고 패어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고 좋아질 것도 없는, 손길이 가면 갈수록 깊이가 더 생기는 속성이 좋고 옷도 못 입고 버려져 썩은 철판, 썩는다는 것은 산화되는 것, 산화된다는 것은 재가 된다는 것. 모든 살아있는 것은 재가 된다는 것. 그래서 이미 재로 변해가는 썩은 철판이 좋고, 멋대로 휘어지고 구겨진 철근은 삼라만상 모든 군상의 형상이 그대로 다 있어 좋고 뻐얼건 황토흙에 지푸리기를 썰어서 비빈 반죽은 뻐얼건 고추장에 맛있게 비빈 비빔밥같이 좋다.”

 

<우혁이네 집>의 경우, 창문차양으로 사용된 철판과 작은 베란다 난간용으로 사용된 철근은 일부러 모양을 그리 낸 것이 아니라 철공소에서 버려진 것을 주워 와서 그대로 붙였다. 그리고 세월에 녹이 쓸어 녹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조차 그대로 방치해 뒀다.

 

또한 그는 디테일에 신경쓰지 않는다. 완벽한 디테일은 싫어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렇게 인공적으로 말끔하게 가공된 마감재는 결코 위안을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삼회리 근생>이나 <수입리 근생>의 경우, 자유로운 곡선과 형태를 만들기 위한 처절함이 읽힌다. 이는 비슷한 시기 유명했던 프랭크 게리의 건축을 연상시키지만 프랭크 게리가 철저히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아 만든 디지털화된 건물이었다면, 차운기의 건축은 수공예적으로 현장에서 만들어낸 건물이다. 게리의 건물이 티타늄+아연 강판이라는 기계가 만들어낸 첨단의 재료였다면, 차운기의 강판엔 망치질 자국이 새겨져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차운기의 자유분방함은 치열한 작가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기억/수집
차운기는 반듯한 도면보다는 손으로 그린 스케치만을 가지고 건축주를 만난다. 건축주와 대화하며 건축주의 인상을 스케치로 남기며 그것이 그대로 집이나 건물의 이미지가 된다. 벤야민에 따르면, “거주한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사람은 살며 흔적을 남기고 관상을 보는 사람는 그 흔적의 의미를 해독한다. 벤야민이 도시의 관상학자를 자처했다면, 차운기는 건축을 집주인의 관상을 살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설계에 들어가기 전 오랫동안 집주인과 대화를 하며 그의 관상을 스케치로 남기고 그 스케치를 통해 집을 만든다. 즉, 집주인의 관상과 집의 모습에서 일종의 유비를 본다. 차운기는 “건축이 환하고 밝은 표정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며 “당연히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집안의 악을 쫓아내기 위해서 붙이던 부적도 정신적으로는 힘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집의 표정이라는 것이 그 집에서 평생 살아가야하는 구성원들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쓰다듬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벤야민이 썼듯, “수집가는 사물 세계의 관상학자들이다”. 수집가는 삶의 흔적을 수집한다. 차운기의 건축작업은 수집을 통해 이루어진다. 잠수함의 원형 창을 구해서 창문으로 갖다 붙이고 깨어진 옹이를 지붕에 가져다 붙인다. 철공소에서 철근을 수집하고, 철판을 수집하며 오래된 한옥의 고재료를 수집한다. 시골의 곡괭이를 수집한다. 뿐만 아니다. <곤지암 주택>에서 중광 스님이 거처하던 방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 있다. 기거하는 방의 벽과 천장 전체를 거대한 캠퍼스 삼아 중광 스님은 거대한 붓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다. “실내는 예술의 피신처이다. 그리고 수집가가 이 실내의 진정한 거주자이다.”라는 벤야민의 말을 이보다 더 확증해주는 사례가 있을까? 인간은 수집을 통해 시간을 탐구한다. 과거를 끌어와서 ‘저장하고’ 미래의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에 저항한다.

 

수집은 차운기에게 놀이와 유희이며 삶의 치열함이고 또한 상처치유과정이다. 우선은 일찍 어머니를 여읜 건축가의 슬픈 자기 고백 및 자기 치유과정이다.

 

다듬어서 보이는 모든 형상들은 내 자신의 고백이요, 내 살아온 인생의 얘기이며, 동시에 나의 추억이기도 하다. 또 집 만드는 작업은 내게 있어선 내 생의 한이기도 하다. 한이 한으로 남아선 한 일 뿐이겠지만 승화된 한이야말로 내겐 무한한 희망이며 기쁨이다. 한편 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나의 건축에 밝디 밝은 표정을 주려는 것은 나의 추억 찾기인 동시에 한 서린 내 인생 얘기를 기쁨으로 승화시키려는 손짓이자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이 때 수집행위는 개인적인 기억 뿐 아니라 각 개인이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하는 공동의 전통 즉 집단적 기억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그를 통해 문화적 정체성의 수립과 보존과도 연결된다. 기억이란 개인적이고 생물학적인 현상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집단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이 살아온 사회의 신조, 행동 기준 등에 절대적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기억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은 사회화된다. 언어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약속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된 개인의 기억은 집단의 기억으로 바뀐다. 그래서 차운기의 건축은 개인을 넘어선 집단의 정신적 상처 치유과정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급속한 도시화와 탈고향의 경험은 이른바 집단적 기억으로 존재한다. 차운기는 그 상처의 기억에 대한 치유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재즈 스토리>와 삼청동 <ᄋᆞ꼴에>는 도시의 기억을 남기려 한다. 50년대 전쟁의 기억, 달동네의 오래된 기억을 건축에 담으며 그의 건축은 당시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몸에 새긴 상처처럼 삶을 기록하는 장치가 된다. 한편으로는 일부러 옛 건물의 일부분을 그대로 보존해둔다. <고칠재>처럼, 기존의 한옥 부재를 활용하여 새 건물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옛 집을 기억할 수 있는 흔적을 새집에다 새기기도 한다.

 

경기대학교 옆에 있는 오래된 동네에 있는 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데 창문에 빗물 받치는 차양을 만든 적이 있다. 오래된 동네의 옛날 집들이 전부 헐리고 새집이 들어서게 되면 그 동네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어릴 때 자란 동네의 기억을 부분으로나마 남기고 싶었다. …. 이 동네에서 이 집을 보면서 살다가 지금은 딴 동네로 이사 갔던 사람이 나중에 이 동네를 찾아왔을 때 이 집에 대한 추억을 하나 정도는 살려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헐리기 전의 옛집에 남아 있던 빗물 받치는 차양을 그대로 따와서 새집에 붙인 적이 있다.

 

키치/ 소망이미지
수집을 통해 건축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차운기의 건축은 키치다. 그것은 꿈을 담는 키치다. 벤야민은 키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기술은 사물들의 외양을 마치 효용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지폐들처럼 영영 다시는 못 볼 듯이 챙겨버린다. 이제 우리의 손은 그 외양을 다시 한 번 굼속에서 붙잡으며 낯익은 윤곽들을 마지막으로 더듬는다. 우리의 손은 그 대상들을 붙들 때 그것들의 가장 해진 부분을 잡는다. …. 그런데 사물은 꿈들에게 어떤 면을 드러내는 것일까? 가장 해진 부분이라는 게 무엇일까? 그것은 습관으로 닳아빠지고 싸구려 격언들로 양념을 친 면이다. 사물이 꿈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면은 키치다.

 

이 말처럼 가장 닳은 것, 가장 습관에 가까운 것이야말로 꿈으로 전환된다. 모든 예술중에 건축이야말로 가장 습관에 관계하는 것 아니던가. 평범한 사물을 추적함으로써 “키치는 우리가 꿈 속에서나 대화에서 사멸한 사물세계의 힘을 빨아들이기 위해 두르는 평범한 것의 마지막 마스크이다.” 따라서, 차운기가 수집하는 사물은 얼마전까지 우리에게 가장 익숙했던 것들이다. 그래서 차운기는 삶의 흔적을 수집한다.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 과거의 환기가 숨어 있다고 본 프루스트의 마를린 과자처럼, 차운기는 회상에 이르는 대상을 모은다. 물론, 프루스트의 말처럼, 그 대상을 통해 회상에 이르는 일은 우연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근대의 기술이 사물의 오래된 이미지를 사라지게 만든다면, 차운기는 기술과 손이 만나는 지점 즉 수공예적 작업을 통해 기술이 가진 그 의미를 되묻고자 한다. <곤지암 주택>의 경우, 처마와 거실 천장에 철근을 똬리 틀 듯 구부려 새끼줄처럼 보이게 한 것은 조약하다기 보다는 아직 아우라를 담지한 근대초기 기술의 모습으로 읽힌다. 차운기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였지만, 근대기술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초가집의 새끼줄을 철근이 대신하고 있고, 흙대신 콘크리트—그 위에 다시 흙을 발라넣었지만—가 대신할 뿐이다. 벤야민은 사진이라는 복제 기술이 아우라의 소멸을 가져온다고 말했지만, 인간의 얼굴을 담는 초기 사진에 제의 가치의 최후 보루로서 아우라가 있었음을 인정했던 것처럼, 차운기의 철근과 콘크리트는 마치 이런 초기 기술의 형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차운기가 사용한 철근과 콘크리트는 새끼줄과 흙을 꿈꾸는 철근이며, 콘크리트이다.

 

벤야민은 훈련(Dressur)과 연습(Übung)을 구분한다. 훈련은 기계 노동에 속하는 것으로 ‘경험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밀봉 처리되어’ 있는 반면, 연습은 수공업에서 결정적인 형태인데 경험을 축적해서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차운기의 건축에 특징적으로 보이는 수공예적 모습은 결국 연습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의 건축은 어떤 실험이라기보다 장인이 추구했던 연습에 가깝다. 스스로를 장인으로 생각하였던 그는 이런 연습을 통해 경험을 되살리려는 것이다. 경험을 되살리려는 것은 어떤 소망을 이루기 위함이다. 현대건축의 대량생산기술이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의 ‘탐욕’을 위한 것이라면, 차운기의 건축은 ‘소망’을 향하고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소망은 탐욕과는 달리 ‘경험의 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오늘날은 근대화의 충격을 통해 지속되는 것으로의 경험(Erfahrung)이 상실되고, 이를 순간순간 몸으로 부딪쳐 얻는 체험(Erlebnis)이 대체해 버렸다. 경험이 (무의식적인/무의지적인) 종합적 기억(Gedächtnis)의 산물이라면, 체험은 의식적 기억(Erinnerung)에 대응한다. 문제는 이 사이에 근본적 단절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근대인은 “경험을 통해 배울 줄 모르고 또 한번 빠졌던 구덩이에 늘 빠지기 때문에, 그는 더 자주 고통을 당한다. … 그는 소리 높여 외치지만, 어떤 위안도 얻지 못한다.” 따라서 위안을 주고자 하는 차운기의 전략은 경험이 불가능한 시대에 회상을 통해 경험을 되살리는 것으로 간다. 이는 사실 모순적이다. 경험조차 불가능한 시대에 회상이 어떻게 가능할까? 회상은 결국 종합적 기억에 대응하는 것이며, 이것은 경험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상에서 경험으로 직접 이어질 순 없을 터, 하나의 단계를 우회해야 하는데, 여기서 차운기의 전략은 수집이라는 행위인 것이다.

 

차운기가 어머니의 젖무덤을 생각하며 <택형이네 집>의 둥근 지붕을 초가집 모습으로 흉내 낸 것과 시골의 담장을 재현한 것은 벤야민이 말한 “집단의식 속에 존재하는 새 것과 옛 것이 뒤섞인 이미지” 즉, “소망 이미지”에 부합한다. 차운기의 건축만들기에는 마치 이런 근대초기 기술이 보여주는 소망이 담겨있다. 현대적 재료인 콘크리트와 철근, 철판, 슬레트를 가지고 자연스러움, 오래됨을 표현하며 수공예적으로 이 기법을 표현해내는 모습에는 이런 과거의 기억과 꿈, 소망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긴 하지만 난 어릴 적 내 눈에 비치는 자연과 집 여러 풍경에 대한 추억이 많다. 내가 꿈꾸고 그리고 만들어지는 집이란? 이런 나의 추억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 그것은 몇 번의 강산이 변하는 세월동안 내 추억을 모두 앗아간 현실에 대한 반항도 있다. 내 생각일는지는 모르지만 자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모든 사고를 그때로 묶어두려는 것. 참으로 내겐 즐거움이다.

 

하지만 벤야민에 따르면, 소망 상징은 유토피아적 차원에 속하지만, 결코 진정한 의미의 이미지는 아니다. 벤야민이 파악하는 진정한 이미지는 변증법적 이미지이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현재와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되는 것이다. 따라서, 차운기의 건축이 주는 위안은 자칫 과거에 대한 아름다운 미화로 그치거나 현실에 대한 도피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벤야민에 따르면, 소망이미지는 진정한 유토피아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인류해방의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벤야민은 파리 아케이드 연구를 통해 근대사에서 근대적 기술혁신이 출현할 때에는 언제나 예외없이 역사적 복원의 형식을 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이런 소망 이미지에는 사회적 생산 질서의 불완전성을 조명하는 동시에 극복하려는 집단적 시도가 담겨 있다. 벤야민은 과거의 신화 내용이 미래의 청사진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시적인 순간으로 긍정했다. 이런 이미지는 새로운 기술과 고대적 이미지가 결합됨으로써 오히려 혁명적 잠재력을 보유한다. 여기에서 벤야민의 독특한 철학이 나오는데, 그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후 아직 남아 있는 옛 것의 이미지에서 유토피아적 흔적을 모색하려 했던 것이다. 벤야민이 파악한 진정 급진적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과거로의 회귀도 아니며, 미래로의 급진적 도피도 아니었다. 과거속에서야 말로 진정 급진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다음 시대를 여러 가지 이미지를 통해 떠올려볼 수 있도록 해주는 꿈속에서 다음 시대는 근원의 역사의 요소, 즉 계급 없는 사회의 요소들과 단단히 결합되어 나타난다. 집단의 무의식 속에 보존되어 있는 그러한 사회에 대한 경험은 새로운 것과 철저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유토피아를 낳는데, 이 유토피아는 오래도록 길이 남을 건축물에서 한순간의 유해에 이르기까지 삶의 무수한 배치 구성 속에 흔적을 남겨왔다.

 
향수/유토피아

차운기의 건축에서 어떤 향수를 느끼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위안을 주는 것이야 말로 건축의 목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새로운 것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찾거나 기댈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온 세대가 특히 그런 과도기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그것을 꼭 그대로 복제한다기보다는 것을 적용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되면 거기서 위안을 받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스탤지어는 ‘귀환’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노스토스(nostos)와 ‘병’을 의미하는 알고스(algos)의 합성어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이상화함으로써 과거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사람에게 실제 과거가 마냥 좋기만 할 순 없을 것이다. 또한 집은 과거를 회상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삶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운기의 건축에 회상되는 과거는 행복한 모습뿐이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특정 장소라기보다는 어린 시절이라는 특정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문제는 공간과는 달리 시간은 되돌아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데 그 비극의 단초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임철규가 말하듯, 역설적으로 “노스탤지어는 귀환의 불가능성을 전제로 한 욕망이다. 황지우는 시 「노스탤지어」(1998)에서 ‘나는 고향에 돌아왔지만/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라고 노래했다.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 노스탤지어의 본질이므로, 이것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차운기의 다음 고백은 자기 건축의 한계와 비극을 스스로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묏동에 띠 잔디가 벌거벗도록

미끄럼질 하던 친구들은 다 어디가고 없고,

고개숙인 할미꽃, 다래 따던 아이들도

다-아 도망갔다.

미국 사는지, 영국 사는지,

이 땅에 사는지, 답답할 뿐.

친구도 보고 싶고

가보면 다-아, 다-아 뭉개버렸다.

엎어버리고 콘크리트 덩어리로 꽈악 눌러놨다.

 

고향을 잃어버린 현 세태를 비판한 글이지만, 필자가 느끼기로 이 글은 자기 건축의 비극성을 스스로 예언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제작년 찾았던 <삼청동 재즈스토리>는 ‘가보면 다-아, 다-아 뭉개버렸다.’ <택형이네 집>은 옹이가 전부 벗겨져 아스팔트 싱글로 바뀌었으며, 수공예로 제작된 창과 문은 기성제품으로 죄다 대체되어 버렸다. 기억과 그에 대한 회상이나 위안조차 자본의 논리앞에선 사치스러울 뿐이다.

 

이런 붕괴는 바로 경험의 붕괴이다. 벤야민의 말처럼, ‘더는 어떤 경험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 무능력이 분노의 본질을 이룬다.’ 이런 분노가 현실 비판의 힘과 만나게 된다면,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기억과 그에 따른 위안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상사회에 대한 비전으로 변화될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은 현재의 희망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으며, 차운기의 건축이야말로 과거의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차운기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택형이네 집>을 짓고 난후 전국 도처에서 2, 3년 사이에 200여 채의 건물이 그의 건축을 모방하여 지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 유행의 여파를 도자기나 옹이 조각을 얹은 집에서 더러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B급 건축가가 만들어낸 이 유행은 왜 생겨났으며 왜 그런 유행이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어떤 주류 건축도 하지 못했던 ‘호랑이의 도약’ 아니었을까?

 

유행은 과거 속으로 뛰어드는 호랑이의 도약이다. 다만 그 도약이 지배 계급이 지휘를 하고 있는 경기장에서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 아래 펼쳐질 그와 같은 도약이 마르크스가 혁명을 파악했던 변증법적 도약이다.

 

물론 차운기의 건축은 퇴행적이다. 가속화되는 기술 문명의 시대에 그의 건축은 다시 반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꿈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야민의 말처럼, “눈을 떴을 때 모든 꿈의 요소들을 살리는 것이 변증법적 사고의 정석이 되어야 한다”면, 그의 건축을 통해 그 꿈이 말하는 바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차운기의 너무 이른 죽음 이후, 그의 건축은 주류 건축계에서 사라졌고 다시 반복될 수 없다 해도, 주류 건축으로는 채울 수 없는 그의 꿈은 여전히 회상되어야 한다.

 

차운기의 건축은 공동체의 삶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기억의 저장고였다. 차운기가 사용한 콘크리트와 철근, 철판, 슬레트는 초가집의 새끼줄과 흙벽이 되고자 하며, 부서진 도자기와 장독으로 만든 지붕에는 파편화된 꿈이 담겨 있다. 건축가 스스로에게 건축하기가 치유의 방법이기도 했지만 집단의 기억에 작용함으로써 과거의 상처에 대한 치유와 위로가 가능한지를 보여주었다. 이제 치유와 기억을 넘어 건강한 망각과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것은 차운기의 몫이 아니게 되었다. 앞으로의 세대는 회상할 고향조차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끝없이 현재의 고향을 만들어 가야 한다. 희망은 추구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쉰이 『고향』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와 같다. 소설 『고향』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몽롱한 가운데, 나의 눈앞에 해변의 초록빛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의 쪽빛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원문에는 다수의 주석과 그림자료가 함께 게재되어 있음

 

[<와이드AR> 43호, 제5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