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평]

1.심사위원∣배형민(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최종 심사에 올라 온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와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 두 논문의 주제가 무척 매력 있다. 건축계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주제이면서도 그 동안의 연구가 미진했던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논문들이다. 동시에 모두 학위논문이기 때문에 일반 서적이 갖추어야할 체제로 재집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단지 장과 절을 재구성하는 것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논문의 기반이 되는 이론과 입장에 대한 치밀한 재점검이 선행되었을 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S-4-1-B>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

이상은 우리나라의 건축계가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인물이면서도 그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며 무엇을 배워야하는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된 적이 없었다. 그가 한 때 건축 공부를 했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건축에서 모더니즘을 설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상의 문학 작업과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는 이상을 공간과 장소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왜 집이 아니라 방인가, 그리고 왜 아내의 방과 내 방은 나뉘어져 있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학문 영역을 망라하고 폭넓은 사유를 열어주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데 현재의 원고는 아직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원고는 지리적 위치, 가족관계, 근대적인 개인공간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따라 장별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서두에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과 이론적인 틀을 소개한다.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는 경성부 도시구조에 대한 설명,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당시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와 핵가족과 퇴폐적 문화의 등장, 그리고 개인 공간에 대해서 근대이후 동서양에서 개인 공간의 등장에 대한 개괄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개괄 내용과 이상과 직접 관련된 텍스트와의 관계가 모호하여 전체적인 글의 짜임새가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개인공간의 사례(페트라르카, 부드와, 다실, 자금성 양심전)가 너무나 이질적이며 당시 상류층과 귀족들의 개인공간에 한정된 것이다. 이상이 기거하고 있는 하숙방도 개인공간이겠지만 전자의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이론과 역사 간의 교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상의 문학과 그의 성장 배경을 잇는 심리주의적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분석의 결과가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상 소설을 가정의 해체과정을 따라 삼 단계(“전근대적인 가족관계를 와해를 그리는 작품,” “비정상적인 부부생활을 그리는 작품,” “연애하는 개인을 그리는 작품”)의 시기로 나눈 표3-1이나, 개인공간을 하나의 고정된 공간 영역으로 규정하는 표5.1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개인과 공동, 정상과 비정상 등의 개념은 모두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관계의 입장에서 접근해야함이 마땅하다. 어떤 장소나 작품에 공존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상과 그의 지인의 글을 통해 당시의 지적과 도시적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학문적으로 흥미로울 수 있으나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확인된 장소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술되어야 독자들이 그 추적 과정을 함께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다.

 

<S-4-1-C>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는 몇 가지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연구의 의의가 한국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 둘째,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론적인 관심(텍토닉스)가 주제라는 점, 그리고 세 번째, 주제 자체의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독해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이다. 국내외에 목구조/양식을 논하는 글들은 대개 구조 형식 자체를 설명하고 분류하는데 치우쳐 있는 반면에 이 글은 역사 문헌을 이용하여 이를 개념화하려고 했다. 특히, 동아시아 건축사학에서 양식론, 구축 체계와 장식/공간 체계와의 관계에 대한 서술은 그 어느 논문에 비해 명쾌하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그 주제가 “구조 원리”에 대한 것이냐는 질문이다. 논문이 기대고 있는 목구조의 적층원리와 입가원리의 구축 체계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구조적인 원리에 기반을 둔 것인지는 논증이 되지 않았다. 논문의 후반부에 가서 구축 시스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목구조에서도 쌓는 원리와 끼우는 논리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점이 매우 흥미로우나 석조나 벽돌조의 쌓기와는 분명 다른 논리의 구분이다. 이 문제가 분명해질 경우 논문의 입장이 더욱 명쾌해질 것이며 연구의 파장이 훨씬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종합>

두 논문 모두 저술로 재집필할 경우 이론적인 기반과 테제를 재점검하면서 책의 체제와 내러티브의 흐름을 조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는 장소성에 대한 신념을 하나의 실천 양식으로 수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장소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주체와 객체를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인데 지금의 원고 구성은 기계적으로 주관적 관찰과 도시와 사회의 상황을 분리시켜 놓았다. 재편된 내러티브는 대개 세 가지 방향이 있을 것이다. 이상과 그의 지인들이 세상을 보는 입장, 역사가의 시선, 그리고 장소성의 철학에 입각한 언어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논문의 저변을 이루는 기본적인 개념(근대, 공간, 장소, 커뮤니티)이 이미 규정된 것이 아니라 연구의 과정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 고찰되는 열린 개념으로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는 구조 원리에 대한 논문이기 보다 구축체계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라고 생각한다. 저서로 접근했을 때 동양의 목구조에 국한 하지 않고 (공간질서를 포함한) 건축의 구축원리를 소개하는 것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적층원리(도리구조)와 입가원리(서까래구조)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보다 정확하고 포괄적으로 그 의미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론과 내용이 확장되면서 다른 한편으로 많은 기술적인 내용들이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논문이 모두 잠재력이 크지만 현재의 원고 상태에서 저술로 옮겨가는데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가 보다 수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는 내러티브의 구조뿐만 아니라 글쓰기 방식 자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재 집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기 매우 어렵다. 상대적으로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는 연구의 깊이와 폭을 확장해야겠지만 글쓰기 방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없는 원고이다. 이러한 점에서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를 금회 심원건축학술상의 당선작으로 추천한다.

 

2. 심사위원|안창모(경기대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S-4-1-B>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

2010년에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많은 행사가 있었다. 문학계에서의 다양한 행사는 물론이고 미술계와 무용계 그리고 타이포그래피 계에서도 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기렸다. 이상이 갖고 있는 존재감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기회였다. 건축계에서도 작은 행사를 치렀기에 최소한의 구색은 맞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필자는 이들 행사 중 일부에 직간접으로 관여할 일이 있어 모처럼 이상에 대해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대부분의 행사가 건축계 밖에서 이상을 기념하는 행사였기에 건축 내부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고 상상하기 어려운 이상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시에 가졌던 의문의 하나가 건축계에서는 ‘왜, 이상에 주목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상에 대한 건축계 밖의 많은 관심은 이상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의 하나겠지만, 지나치게 자체적인 논리로 접근하다보니, 해당 분야에서의 이상에 대한 논의가 마치 근친상간의 부작용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는 무척 반가운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유행처럼 학제적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실제로 행해지고 있지만, 정작 이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과 함께 하는 연구는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의 연구에 장소를 매개로 인문 지리학적 연구를 행한 본 연구의 가치는 매우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대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를 읽는데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이유는 글의 곳곳에서 연구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내용들의 오류와 가정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학제 간 통합연구에서 주요한 점은 통합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 수 있다는 점일 텐데, 각 분야의 기초 연구가 튼튼할수록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통합연구의 시너지 효과가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에서 이상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에 도시공간과 장소를 도입한 참신함으로 인해 이상의 소설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제가 되는 기초 연구의 부실함으로 인해 글을 읽어 갈수록 신뢰도에 의문이 생겨났다. 특히, 선행연구의 미진한 부분을 직접 검증하고 성과를 더해가는 노력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가정을 한 후에 가정이 맞는다는 전제 하에서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시키는 과정은 논문의 근간이 흔들릴 수 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판단된다.

 

<S-4-1-C>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

전통건축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필자가 ‘동아시아 문명과 목조건축의 구조원리’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글을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라는 큰 틀 속에서 매우 제한된 문제를 들여다 보고자하는 독특한 제목의 연구 성과를 한달음에 읽었다. 필자는 근대건축을 업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전통건축에 대한 관심 역시 근대의 입장에서 기초하고 있고, 기존의 전통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의문은 전통건축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필자의 어리석음 때문이었겠지만, 필자가 갖고 있는 의문 중에는 우리의 근대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의문이 많다. 그러나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전통건축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전통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해 볼 수 있는 상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를 읽으면서, ‘필자의 생각’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가 전통건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문을 풀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이 글에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는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주제이지만, 동시에 동아시아건축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이 있어야 해법에 접근할 수 있는 주제다. 이 주제는 많은 공부가 있어야 제기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과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보다 폭 넓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필요로 하는 연구 성과를 읽으면서 연구자의 건축에 대한 인식이 우리 건축의 틀 속에 묻혀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주제였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주제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에 앞서 연구자가 정리한 동아시아에서 건축역사 연구의 큰 얼개는 연구자의 본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여전히 본 주제가 갖고 있는 무게를 생각할 때, 본 주제에 대한 결론은 오랜 시간 동아시아건축 전반을 아우르면서 끊임없이 회의(懷疑)하면서, 다지고 다진 후에 그리고 다시 한 번 미쳐 못 다한 것은 없는지 살핀 후 조심스럽게 내 놓을 수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연구자는 해냈다. 학위도 취득했으니 관문을 통과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일단락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본 연구가 출판이 되면 연구자의 주장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 아닌 검증의 시도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활발할수록 좋다. 그 과정에서 본 연구는 앞으로 전통건축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자극과 새로운 상상력을 가져다주면서 우리의 건축 역사학의 외연을 더욱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종합>

위와 같이 심사 소견을 정리하며,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를 2012년 심원학술상 후보로 추천한다.

 

3. 심사위원|전봉희(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이번 심사에는, 다음의 두 편의 논문이 심사대상으로 올라왔다. 먼저 해당 논문들에 대한 개별 평을 하기로 하자.

 

<S-4-1-B> 이상 소설의 인문 지리학적 연구

이 논문은 이상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와 그가 실제 살았던 장소들에 대한 연대기적 추적과 장소성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전통의 시대에서 근대로 이행되어가는 과정 속에 어떻게 공동체의 공간이 사라지고 개인의 공간이 등장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논문의 구성 역시, 먼저 2장에서는 이상이 실제 생활하였던 장소, 즉 경성의 통동, 관철동, 입정정 그리고 동경의 간다(神田) 등 네 곳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발굴하면서 실증적으로 재현하고 있고, 3장에서는 그의 소설들, 즉 [십이월십이일], [지주회시], [날개], [동해], [실화] 등 다섯 편에 묘사되어 있는 인물들의 성격을 분석하여 전통적인 가족(부부) 관계가 해체되고 자유로운 개인이 등장하는 과정으로 설명하며, 4장에서는, 이와 같은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정이 그가 실제 살았던 장소 그리고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의 성격과 일치함을 논증하고 있다. 나머지 1장은 서론, 5장은 본론의 종합이며, 6장이 결론이다.

필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논문은 한편의 ‘소설론’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등장하는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정을 구체적인 공간의 변화와 연결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도시론의 시각을 발견할 수 있고, 더욱이 그 중간의 연결 고리로써 작가 이상이 실제로 생활하였던 장소들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은 그의 추론이 결코 상상에 기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이미 문학계에서는 작가 이상에 대하여 많은 – 아마도 가장 많은 비평서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작가일 것이다 – 논문이 나와 있어, 그의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나 연보에 대한 추적은 일부 구체적인 장소에 대한 추론을 제외하곤 새로울 것이 없고, 따라서 이 논문의 독창성은 구체적인 공간의 재현과 장소성에 대한 논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 논문이 가지는 힘과 약점 모두 이 지점에 있다. 즉, 그가 5장에서 정리한 주거형태의 근대적 변이 즉, ‘전통 한옥 – 셋방1/유곽 – 셋방2/하숙방’의 3단계 구분과 ‘가족-부부-개인’라는 인간관계의 변화 단계는 놀라울 정도로 잘 연결되어 있다. 즉, 전통 한옥은 대가족, 불완전한 도시 주거의 유형은 당시 막 등장한 부부로 이루어진 단독가족이,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근대 주거유형인 하숙방(과 아파트)는 근대적 개인의 공간으로 호응한다. 중간 단계인 셋방1과 유곽은 조금 어색해 보이는데, 이는 이상이 실제로 생활하였던 공간이라기보다는 소설 속에서 재구성한 공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셋방1은 전통 한옥과 같은 형태이지만 – 물론 소재지의 위치는 성 안과 성 밖으로 서로 다르다 – 주인공들의 주관적 상황에 따라 구분한 경우이고, 유곽은 주거와 비주거의 중간에 놓이는 근대적 도시 공간을 임의로 설정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중간 단계로서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이 글은 잘 짜인 플롯을 가지지만 굳이 결점을 찾는다면, 저자에 의한 새로운 사실의 발굴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 특히 도시와 건축의 상황을 상정하는 부분에서 잘못된 서술과 오류가 일부 눈에 띤다는 점이다. 이는 저자가 기왕의 근대 도시건축 연구 업적에 대한 충분한 독서가 부족하며, 몇몇의 연구자가 낸 논쟁적 성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불과 6∼7년의 기간에 집중된 한 작가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상, 주거상이 실제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된 시대적 변화를 과연 대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고, 작가의 다른 단편들을 함께 고려하면 어떠한 정리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S-4-1-C>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

이 논문은 부제 ‘동아시아 문명과 목조건축의 구조원리’에서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구조원리가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의 두 가지 원형적 모델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두 가지의 구성 모델이 서로 경쟁적으로 작용하며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역사를 만들어 왔음을 밝히려고 하고 있다.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의 구분은 상부의 지붕틀을 지탱하는 방식에 대한 연역적 추론에서 비롯한 가설이며, 이와 같은 원형적 구조 모델을 낳은 원리로서는 적층의 원리 및 입가의 원리를 들고 있다. 즉 목조건축물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쌓아서 만드는 법과 짜서 만드는 법이 원리로서 존재하며, 이것이 구체화된 원시 모델로서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원리와 모델을 이용하여 동아시아의 목조건축 일반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공간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및 베트남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시간적으로도 선사 및 고대의 유적에서 중세말까지의 유적을 두루 상고하고 있으며, 고대 경전에 묘사되어 있는 건축구조에 대하여서도 살펴보고 있다. 이와 같은 분석에 따라, 고대에는, 목재가 풍부한 동아시아 남부에서는 서까래 구조가 우세하였고, 황하 중류와 황토고원 지대에선 도리구조가 우세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원지역에서 발원한 고대문명이 점차 주변으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도리구조가 점차 강화되었고, 서까래 구조는 하나의 건물 전체를 지배하기 보다는 건축물의 일부에 채용되는 작은 단위로 분화되었다는 가설이 저자의 주장이다.

도리구조가 확산되어가는 과정에서 중국의 정치적 통일이 큰 역할을 하였으나, 당(唐)대에 이르러서는 약화되었던 서까래 구조의 장점을 대폭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중국식 목가구조의 전형을 이루어내었다고 보고 있다. 가령, 차수와 탁각과 같은 합장재나 하앙과 같은 서까래 방향의 지지재는 모두 서까래 구조의 모델에서 비롯한 것이며 뒤늦게 채택된 것이다.

건축물을 만드는 기본적인 원리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현상을 환원주의적으로 고찰한 이 연구는, 기존의 물건 중심의 귀납적 추론에 의지하였던 목조건축론의 연구에 하나의 전환점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목조건축은 ‘적층식 가구조’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단지 가구조, 조적조라는 다분히 나무와 돌에 기반을 둔 구분법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웠던 동아시아 건축의 특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앞으로도 해결해나가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은데,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원리와 두 가지의 원형적 모델로 전 역사기간에 걸친 수많은 현상들을 설명해나가는데 있어서 저자의 판단과 심사자의 생각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명‧청대의 건축에서 볼 수 있듯이 정면 칸에 인방재가 중첩되어가는 상황이나 공포의 역할이 축소되어가는 상황은 도리구조가 강화되는 상황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입가의 원리가 강화된 것이냐 아니면 적층의 원리가 강화된 것이냐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거대 담론이 늘 그렇듯이, 이 논문 역시 큰 틀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원리와 모델을 제시하지만, 각론에 들어가서 세세한 현상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그 거대 담론이 정밀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종합>

이상과 같이 두 편의 작품은 모두 일정한 성과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편의 대상 논문 모두 기존의 논문들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주장을 펼치고 있어서, 심사자로서는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심사에 임할 수 있었다. 작년 이 맘 때 적당한 수상 논문을 찾지 못하여 ‘당선작 없음’을 결정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스스로의 능력에 자괴하고 건축학 분야의 발전에 대해서도 암울한 전망을 떨칠 수 없었다. 이번에 이렇게 수작 두 편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말 그대로 행복한 고민이었다.

실제로 두 작품 모두 시상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칙을 지켜나가자는 논의가 우선하였고 결국 한 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학문적 성과와 파급효과를 우선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우리 학계에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지적 체계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목구조론에 새로운 활력을 넣을 것으로 기대되는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를 이번 해의 수상작으로 선정하는데 심사위원 전원의 의견이 모아졌음을 알린다.

수상자는 더욱 분발하여 책으로 묶어내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주길 바란다.

 

[<와이드AR> 27호, 제4회 심원건축학술상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