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평]

  1. 심사위원∣배형민(서울시립대 건축과 교수)

 

심사번호 01 <다시 쓰는 김중업건축론, 아버지의 이름으로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의 문제>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 중에서 대조비평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와 김중업에 대한 논의를 추출하여 정리한 글이다.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관계에 집중하기로 한 것은 과감하고 적확한 판단이었다. 이 글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전략은 옳은 것 같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위상이 현대건축의 셰익스피어에 해당하는 만큼 블룸의 이론이 보다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김중업에 집중하게 된 결과 정인하의 기존 연구에 의존하는 인상이 더욱 강해졌다.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상 이들의 작업에 대한 보다 치밀한 분석이 더욱 절실해졌으며, 다른 한편, 국내외의 여러 시대적인 정황들이 무시된 채 르 코르뷔지에와의 관계에만 집착하는 인상을 준다. 구체적인 작품의 해석에서 저자 자신의 입장이 분명치 않으며 구체적인 오류가 생긴다. 단편적인 예로 1958년 서강대 본관을 1961년에 설계를 시작한 Carpenter Center를 “오독”한 것으로 서술하였다.(125쪽) 또한 이론과 사례 연구가 이분화 된 문제, 그리고 저자가 갖고 온 이론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다는 것 등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이론의 감옥”에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은 저자 자신이 구축한 치밀한 현장, 곧 작품과 아카이브의 현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사번호 02 <소통의 도시_루이스 칸의 도시건축 19601974>

국내에서 저술된 서양건축과 현대건축 논문으로서는 보기 드문, 철저하게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글이다. 1960년대 미국의 도시설계담론에 나타나는 소통이념의 맥락에서 루이스 칸의 도시 프로젝트를 주제로 하고 있다. 특히 미국적인 포스트모더니즘과 이어지는 케빈 린치(Kevin Lynch)의 지각주의와 차별화된, 저자가 주장하는 “해석학”적인 루이스 칸의 입장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도가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나 이론적인 맥락에서 “소통”이 키워드가 된다는 것에 역시 동의하게 된다. 시의성이 있으면서도 국내외 학계에서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은 뜻있는 연구서라 판단되었다.

동시에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론에서 소통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논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철학적 담론으로서 빈약할 뿐만 아니라 전체 글의 맥락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홈스 퍼킨스의 관점, 베이컨의 추상적 공간 ‘도식’, 크레인의 ‘상징도시’와 캐피털 디자인’, 주걸러와 칸의 도시론 등을 설명하지만, 논문의 주제인 소통이념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 글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칸의 프로젝트에 대한 해석이다. 해석학을 내세운 이상 아직은 어색한 해석의 글쓰기를 책의 중심에 놓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석의 대상이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프로젝트라는 측면에서 어려울 것이다. 서두에서 루이스 칸과 다른 건축가, 도시계획가, 이론가의 작품과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비교분석으로 해석학적인 입장과 지각주의적인 입장, 또는 기능주의적인 입장의 차이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을 제안해 본다.

 

심사번호 03 <탈식민지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 건축가의 정체성>(출판희망 제목; 경성의 조선인 건축가)

탈식민지 담론과 건축가의 정체성. 저자가 제기한 이 두 가지 주제는 각각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탈식민지와 정체성의 문제가 한국근현대건축의 맥락에서 논의된 것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 글의 주제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글의 핵심이 4장이라는 측면에서 장차 이 부분을 책의 중심에 놓겠다는 생각에도 십분 동의한다. 특히 저자의 논지를 구성하기 위한 인용구들의 배열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2장과 3장의 “탈식민지 담론”은 국내외 기존 학계의 입장들을 받아들였는데 저자의 연구를 토대로 이를 비판할 수 입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저자는 자신의 분석방법론을 “미시사”로 제시하였지만 실제 논문의 전개 방식은 식민지와 탈식민지적 입장이 교차하는 담론 구성(discursive formation)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민족 혼종성” “민족과 계급의 양가성” “계급과 이념의 불확정성” “이념과 젠더의 모순성”은 모두 중요한 주제들이지만 이것들이 미시적으로 분석해낸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사용하는 2차 문헌의 성격으로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와 재생산”을 순환논리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미시사적인 입장에서 일반론으로서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원고는 다소 산만하게 구성되어 있으나 저자의 훌륭한 필력으로 장차 가다듬어질 것으로 믿는다. 저자의 이론적인 입장을 재정립하고 원고의 주제와 범주를 4장을 중심으로 정리할 경우 좋은 저술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평가 종합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 원고를 과감하게 재편집하여 명확하게 책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해놓았다. 한편 <루이스 칸의 도시건축>과 <탈식민지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 건축가의 정체성>은 상대적으로 보다 명확한 저자의 입장, 그리고 풍부한 자료와 주제를 갖추고 있다. 원고의 전달력은 <탈식민지 담론으로 본∼>이 우수하지만 <루이스 칸의 도시건축>은 국내외 학계에서 인정할 수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다. 특히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도시건축에 대한 관심의 맥락에서도 시의적절한 연구서이다. 루이스 칸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태도와 건축의 도시적인 의미에 대한 실증주의적인 태도를 동시에 넘어선다는 것이 이 글의 큰 장점으로 부각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현대 건축의 이해에 바로 기여하지는 않겠으나 그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루이스 칸의 도시건축>에서 취약한 서두를 정리하고 전체 내용을 재편집하면서 글을 다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루이스 칸의 도시건축>를 최종적으로 추천하는 바다.

 

 

  1. 심사위원∣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심사번호 01 <다시 쓰는 김중업건축론, 아버지의 이름으로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의 문제>

건축가를 다양한 관심에서 조명하는 작업은 한국건축의 담론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한국현대건축의 중심에 있는 건축가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작업은 한국현대건축을 다양하게 해부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현대건축을 대표한다고 평가받는 김중업과 김수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한국현대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두 건축가가 한국현대건축에서 차지하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건축 작업의 가치나 작가에 대한 평가는 한두 줄의 짧은 글로 평가되거나 사회적 통념에 기초해서 평가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심도 있는 연구의 부족에 인한 것으로 우리사회에서 건축가가 무엇으로 평가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건축가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가 많지 않은 국내 학계에서 <다시 쓰는 김중업건축론>은 건축가 연구에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저작이라고 판단된다. 아쉬운 점은 건축가 김중업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는 점과 글의 많은 부분이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챙긴 자료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글쓴이의 시선이 일정한 정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저자의 저술이 갖는 가장 취약한 부분일 수 있다. 이러한 한계는 앞으로 저자가 극복해야할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이 시대 건축계의 신진들에게 있어서 선배 건축가들에 대해 ‘내용은 소멸된 채 이름만 신화처럼 전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현실에서, 왜? 그들의 이름이 신화가 될 수 있었는지를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연구와 출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심사번호 02 <소통의 도시, 루이스 칸의 도시건축 19601974>

국내 서양현대건축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준 연구 성과다. 루이스 칸은 거장들의 시대가 막을 내린 후 세계건축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지만, 국내에서 우리의 눈으로 본 연구 성과는 극히 미미했다. 루이스 칸의 많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었고, 작품집이 출판되었지만, 건축계의 명언으로 자리 잡은 칸의 몇몇 문구와 이에 조응하는 몇몇 작품으로 칸이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저자의 루이스 칸의 도시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는 건축을 통해서 이해함으로써 제한되었던 루이스 칸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중요한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본 연구가 건축가의 아카이브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장점이다. 국내에는 건축가와 건축에 대한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카이브에 기초한 연구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1차 자료에 기초한 연구가 당사자의 학문적 성숙은 물론 학계에 기여하는 바가 지대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본 연구는 1차 자료에 충실한 연구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와 건축의 공공성이 우리 도시의 당면과제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시대의 중심이었던 건축가의 ‘도시와 건축 프로젝트’의 공공성을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음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건축가들이 읽어 보아야할 연구 성과라고 판단된다.

 

심사번호 03 <탈식민주의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건축가의 정체성>(출판희망 제목; 경성의 조선인 건축가)

제출한 학위논문의 연구 성과를 통해 저자가 출판기획서의 내용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에 충분했다. 특히, 건축계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한인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저술 작업은 주제 자체가 주는 의의만으로도 출판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저자의 논문에서 논문의 전개과정 중 논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에 대한 검증 없는 주장 또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 인용문임에도 불구하고 인용문 없이 서술되는 단정적인 내용, 2차 자료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오류 등은 응모자의 기획서가 출판물로 이어질 경우 세심한 검증 또는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한편, 저자가 자신의 논문이 서양 중심의 역사서술과 거시사의 한계를 성찰하는 입장에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저자의 입장은 건축 외적 분야에서 이미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각을 건축에 대입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벗어나고자하는 틀을 온전하게 벗어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미시사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내용구성에 있어 미시사라고 하기에는 기초자료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 점도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연구주제가 한국건축연구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탈식민주의 담론’이어서 한국건축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각을 더해준 것은, 앞에서 언급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심화된 연구가 부족한 한국근대건축 특히 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본 저자의 연구과 관점이 갖는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제안한 출판기획서는 대중을 상대로 기획된 것인 만큼 연구논문과 달리 엄격한 논증을 요하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의 경우 내용 구성이 논증적일 필요는 없어도,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친 후 독자의 수준에 맞추어 해석되고 서술되어야 함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문가보다 대중을 상대로 한 글쓰기의 경우 근대건축 연구의 고질적인 문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원전에 대한 충실도 문제(부정확한 2차 자료 의존에 의한 오류)와 사회적으로 통념화 된 선험적 판단에 기초한 예단의 문제 등에 더욱 엄격할 필요가 있다.

아쉬운 것은 저자가 출판기획서를 충실하게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기획서는 완성된 저작 또는 그에 준하는 저작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심원건축학술상의 기준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출판기획서의 내용이 책으로 엮어지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따라야하겠지만, 한국근대건축 연구의 길을 함께 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기획안의 성과에 기대가 크다. 특히, 저자의 기획안을 통해 김수근, 김중업에 함몰되어 있는 한국건축가에 대한 연구의 폭이 다양화되고 깊이 있게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번호 04 <The World after the Eden>

건축가로서 자신의 사고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저작으로서 의미 있는 글이다. 그러나 독자 또는 본 건축학술상 심사위원이 동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는 진지하게 자신의 건축적 사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동시에 저자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제3장에 부가한 설계프로젝트가 앞의 장에서 진지하게 전개한 저자의 생각을 구체화한 안이라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사족의 성격이 강하다.

 

  1. 심사위원∣전봉희(서울대 건축과 교수)

 

심사번호 01 <다시 쓰는 김중업건축론, 아버지의 이름으로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의 문제>

작년 제1회에 응모하였던,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문제-김중업과 김수근을 중심으로>의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다시 제출한 것이다. 작년의 제출본과 달라진 점은, 상대적으로 취약하였던 김수근 관련 부분을 빼고,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활동과의 연관성이 돋보이는 김중업만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글의 구성과 논리의 진행은 여전히 헤롤드 블룸의 대조비평의 방법론을 원용하여, ‘상대적으로 그 건축의 이론화의 정도가 약했던’ 김중업의 건축 작업 전(全)시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 제출본에 비하여 훨씬 더 정제된 문체를 보이고, 논리의 설득력 역시 김중업에 집중함으로써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즉,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김중업은, ‘작가적 정체성에 대한 추구가 유달리 강했’고, 선배이자 평생을 자랑스러워했던 스승 ‘르 코르뷔지에와의 갈등적 영향관계’가 그의 평생에 걸친 건축 작업에 원하던 원하지 않던 영향을 끼쳤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승관계를 기준으로 한 김중업의 건축 작품 비평은 김중업의 건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첫 번째 제출본과 비교하면, 블룸의 문예비평이론이 건축비평에서 갖는 보편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김중업에 집중함으로써, 김중업의 건축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출본에서도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아있다. 그 하나는 여전히 블룸의 이론을 김중업의 작품 비평에 직접적으로 대입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은 물론 여타의 조형예술분야와 건축이 갖는 차이점을 고려할 때 이 두 부분은 심각하게 보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심사번호 02 <소통의 도시_루이스 칸의 도시건축 196074>

이 논문은, 루이스 칸의 작품론에 해당하지만,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왔던 루이스 칸의 대형 시설, 도시 시설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새롭고, 분석의 주된 틀을 당시 즉,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 미국 건축계에서의 담론과 실무 사이의 소통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지하다시피 1960년대는 유럽이 주도해왔던 20세기 모더니즘의 전개과정에서 큰 전환기를 맞이하는 시기로서,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대형의 도시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전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건축적 활동과 담론의 중심지로 자리잡아가는 한편,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197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는 토양을 만들어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60년대와 70년대 전반의 루이스 칸을 다룬다고 하는 사실은, 모더니즘의 세대교체와 건축적 중심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선택으로 보이며, 나아가 루이스 칸의 대규모 도시프로젝트를 다룬다고 하는 점은 모더니즘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어온 대중과 전문가,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예술가와 도시행정가 사이의 소통의 결손을 다룬다고 하는 측면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이와 같은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제로 지어진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행한 일련의 계획 작업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도 돋보이는 부분이다. 하나의 건축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수없는 조정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개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작품은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 최종의 성과물일 뿐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건축가가 과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해나갔는지의 전체의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최종적인 성과물이 갖는 의미를 완전하게 해독하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의식의 흐름을 되짚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가의 아카이브가 구축되어있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몇몇의 유사 사업과 작업이 시도되고 있는 정도이다. 따라서 이 작업은 연구방법론의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의 건축학계에 새로운 경향을 선보이는 것으로 평가받을만하다.

약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눈에 거슬리는 것은, 급하게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제1장의 내용으로서, 20쪽에 걸친 적지 않은 분량을 들여 현대도시건축과 소통의 문제에 관한 철학적 배경을 다루고 있으나, 문장이 생경하고 비문으로 가득하며, 본문의 내용과의 상관도도 떨어진다. 이 부분을 포함하여 본문의 (계획)작품 분석의 부분에 대해서도 출판 전에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

 

심사번호 03 <탈식민주의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건축가의 정체성>(출판희망 제목; 경성의 조선인 건축가)

최근 학계에 유행하고 있는 탈식민주의의 담론을 해방 전후의 한국 건축가에게 적용하고 있는 논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근대(모더니즘)와 오리엔탈리즘, 제국과 식민지, 민족과 계급, 이념, 젠더 등의 카테고리로 개별 건축가들이 느끼는 혼란과 이중적인 성격을 미시적인 분석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사실상 탈식민주의의 다양한 분석개념들을 망라하고 있다는 인상이며, 동시에 대개의 탈식민주의 논설들이 그러하듯이 ‘사실의 폭로’에 그치고 있는 점이 아쉽다.

탈식민주의의 담론이 이미 형성되어있는 담론의 해체를 통한 현실의 재인식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분석에 동원된 자료들이 대부분 2차 사료, 혹은 3차 사료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연구서로서 심각한 결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재인용의 문제가 심각한데, 재인용에 의존한 글쓰기는 인용 자료의 내용의 차원을 넘어서, 자료의 선정 자체에서 저자가 참조한 원 인용자의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역사적 가설의 성립이라는 건축역사학의 본령에 이르지 못하고 제한된 상상력 속에서 정해진 길을 가는, 기존 저작의 해설서로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더 심한 경우는, 2차 사료에 대한 관념적인 분석에 머무름으로써, 받아들이기 힘든 잘못된 인식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원 자료에 근거한 보다 ‘미시적 관찰’이 요구된다.

이 글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잘 읽힌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 잘 읽힌다는 점은 저자의 문재에 더하여, 20세기 중반의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범주화한 것에서 비롯한다. 저자는 우선 제국과 식민의 관계를 ‘서구제국-일본 의사제국-조선 식민지’로 3구분하고, 식민지 조선에 존재하였던 건축 기술자의 양상을, ‘일본인-허용된 타자로서의 조선인 기술자-금지된 타자로서의 전통건축장인’의 3자로 범주화한다.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의 개념화는 잘 읽히는 글을 만드는데 유효한 만큼,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에 빠질 함정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프레임을 단순화함으로써. 결론 역시 단순화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독후평은 저자가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다. 저자는 출간을 위하여 따로 개설서의 목차를 제시하고 있는데, 목차만 보았을 뿐이지만 여기선 보다 구체적인 그리고 ‘미시적인’분석이 행해질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눈에 띤다. 목차에서는 범주화가 돋보이기 보다는 개별 건축 기술자에 대한 분석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의도하는 범주화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개별적 인간에 대한 미시적 관찰은 우리나라의 근대건축 역사상 가장 미묘하였던 이 시기를 다루는 적절한 방법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심사번호 04 <The World after the Eden>

이 글은 크게 사물과 현상, 예술작품과 철학적 담론, 도시공간에 대한 저자의 종횡무진한 ‘사색(제1장)’을 위계 없이 다루고 있다. ‘위계 없이’라는 표현은 다층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논지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서 지식의 단순한 나열로 이끌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더블스페이스로 15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 굳이 구분하자면, 현상을 실재와 이미지의 문제로 다루고,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로서 (좀 길지만) 그 관계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후기구조주의(저자의 표현으로는 ‘신유물론’)의 사유를 바탕으로 실재의 가치를 옹호한다.

제1장 사색의 두 번째 부분은, 건축의 물질성을 서울과 뉴욕 등의 실례를 들어, 이미지에 대한 물질성의 우위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제1장의 세 번째 부분은, 다소 논의가 벗어나,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사색과 모더니즘(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렘 콜하스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견해를 밝히는데 할애하고 있다.

2장에서는, 저자가 예의 ‘유물론적 사고’를 현대의 미국의 교외도시를 대상으로 건축적으로 재해석하는 일련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현상학적 관찰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장에서는 저자의 석사 졸업 작품의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이 긴 글이 결국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글은 도시와 건축, 철학과 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 탐구를 거쳐 하나의 건축설계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어서 흥미롭다. 때론 발랄한 해석이 돋보이기도 하고, 나름의 견해와 주장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석사과정의 제출논문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저자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그것이 학문적 성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평가 종합

이상과 같은 독서를 바탕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한 심사위원 전체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심원건축학술상은 건축이론, 역사 분야의 신진을 발굴하여 출판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네 편의 후보작 가운데 세 편의 작품이 출판을 지원할만한 것으로 주된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그 가운데 특히 루이스 칸을 다룬 작품과 해방 전후기의 한국작가를 다룬 작품이 최종적으로 경합하였다. 두 편 모두 한국의 현대건축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변환이 있었던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두 작품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의 무게를 겨루는 일이었는데, 전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였다는 점이 돋보이고, 후자에 대해선 출간계획서에 따른 후속작업을 지켜보자는데 심사위원의 합의가 있었다.

 

지난해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자면, 우열을 가르기 힘든 매우 독창적이고 묵직한 성과물들이 여럿 있어서 어렵지만 행복한 심사과정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우리 학계의 밝은 내일을 기대한다.

 

[<와이드AR> 15호,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