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평]

  1. 심사위원: 배형민(서울시립대 건축과 교수)

 

심사번호 01 <벽전(甓甎)>

<벽전>은 방대한 내용을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서술 방식으로 사전적이고 교과서적으로 정리한 논문이다. 한국건축에서 목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비한 조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며 많은 정보가 좋은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분량에 비하여 논문의 테제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아마도 기존의 연구와 벽전에 대한 이해가 역사적인 시기마다 대단히 다르기 때문에 일관된 주제로 서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보다 힘 있는 논문이 되기 위해서는 벽전 연구가 갖고 있는 현재성이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조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기존의 한국건축론, 또는 역사론에서 벽전에 대한 이러한 탐구가 갖고 있는 의의가 논문의 전반적인 서술 구도에 스며 있었으면 한다.

 

심사번호 02 <建築家 師承關係 獨創性 問題>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는 한국 현대건축의 구체적인 작가들을 정면으로 다룬 보기 드문 논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것을 글로 명백하게 서술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정인하의 기존 연구를 비롯해서 2차 문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나 한국 현대건축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에 비하여 자료의 범위가 넓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고 저자가 이론적인 입장을 구체적으로 표방하고 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통찰들이 산만하고 저자가 갖고 온 이론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본문의 전개 방식이 블룸과 프로이드의 이론적인 언어를 선정의 단계(궤도이탈, 깨진 조각)-유아주의 단계-정체화 단계(금욕적 고행, 환생) 등으로 공식화하여 개별 건축가들의 해석에 적용하는 방식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이론적 체계를 갖고 있지 않은 한국건축에 이러한 분석의 틀을 갖고 올 수 있으나, 그 틀이 하나의 진리로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블룸의 이론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중심에 있는데 20세기 건축에서 셰익스피어에 해당되는 작가는 르 꼬르뷔지에일 것이다. 르 꼬르뷔지에와 김중업을 논할 때는 블룸의 이론이 설득력이 있겠지만 김중업과 김석철, 당게와 김수근, 김수근과 승효상의 관계에서는 질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관계인 것 같다. 저자가 인용하는 국내 문헌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정인하의 김수근론과 김중업론에 의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의 주관적 해석을 단정적인 사실로 인용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결론에서 일부(4.2 한계와 전망) 프로이드와 블룸을 비판하고 있지만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대응일 뿐 구체적인 한국 현대건축의 분석에 그 비판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저자 자신이 본문에서 계속 주체 중심의 서술을 전개한 후 결론에서 ‘서구의 주체 중심주의적 사유가 얼마나 보편성을 가질 것인가’(224쪽)를 회의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종합

두 논문은 주제 영역, 시기, 이론적인 태도의 차이가 커서 비교 평가한다는 것이 어렵다. 두 논문 모두 저자가 설정한 범주 안에서 장단점이 있지만 모두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심사자의 입장이다. 그러나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서는 두 논문 역시 많은 편집과 축약, 테제의 보다 명확한 서술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어느 논문이 책으로 편집이 되었을 때 보다 힘 있는 텍스트가 되겠느냐는 질문이 본 심사자의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이다.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는 전반부의 이론적인 서술이 건축가에 대한 본문의 분석에 스며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책으로의 편집 과정에서 제출 논문이 갖고 있는 다소 기계적인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벽전>은 새로운 서론과 결론에서 테제를 명확하게 밝히고, 이 테제에 따라 본문을 축약하면 현재 논문의 구성 틀을 유지하면서 좋은 책의 구도를 갖출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따라 책으로 편집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벽전>을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1. 심사위원: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심사번호 01 <벽전(甓甎)>

본 논문은 목구조 건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한국건축사 연구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쌓기’ 건축의 실체를 통사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본 연구가 특정 재료를 중심으로 전개됨에 따라, 한국건축사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시대 중심이나 건축물의 종별에 따른 건축사 연구에서는 밝혀내기 어려웠던 부분을 드러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재료사나 기술사적 측면도 함께 다루는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다루는 시기는 조선시대까지로 한정되어 있지만, 개항 이후의 건축까지 다루고 있어, 목구조를 중심으로 한 전통건축이 이질적인 재료와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변용이 이루어졌으며, 시대에 따라 또는 용도에 따라 어떠한 변용(근대적 변용 등)이 이루어졌는지를 밝혀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 성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 연구 성과는 목구조 중심의 한국건축사 연구의 시각을 보정하여 균형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의 중요성과 성과가 갖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본 주제의 연구 성과가 출판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출판될 경우는 한때 주목을 받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주목 받는 연구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심사번호 02 <建築家 師承關係 獨創性 問題>

본 논문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두 명의 건축가를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들여다본 연구다. 본 연구에서 연구자가 사용하고 있는 ‘대조비평’과 대조비평을 전개하기 위한 프로이드, 블룸, 들뢰즈를 비롯한 많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 성과를 폭넓게 차용하고 있다.

본 연구는 타 분야의 이론을 통해 건축 이론비평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건축비평이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국내 건축계의 현실에서 비평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두 사람의 저명한 건축가를 들여다봄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이나 평가를 드러냈다기보다는 기존에 잘 알려진 두 건축가의 모습을 새로운 틀로 재조직화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본 논문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평 방법론의 도입뿐 아니라, 본 비평론이 선택한 작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했다고 판단된다. 한편, 차용하는 이론의 생소함과 난해함은 본 저작이 출판되었을 경우 매우 제한된 범위의 독자에게만 읽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본 연구가 대중적인 눈높이에 맞추어 글쓰기가 다시 이루어져 출판될 경우, 두 건축가가 갖고 있는 한국건축계의 위상을 감안할 때 건축계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종합

심원건축학술상의 1회 수상작은 본 학술상의 향후 진행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최종적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기 전에 학술상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수상작 발표와 동시에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심원건축학술상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요절한 젊은 건축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 건축계가 아닌 건축주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상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수상작은 기회를 쉽게 얻기 어려워 사장되기 쉬운 주제나 연구자를 발굴하기 위한 상으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1. 심사위원: 전봉희(서울대 건축과 교수)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의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2편이다. 많지 않은 작품이지만, 그 질적인 수준은 둘 다 당선작으로 꼽아도 좋을 만큼 뛰어났다고 하는 것이 본 심사자의 우선 결론이다.

 

심사번호 01 <벽전(甓甎)>

이 논문은 낙랑에서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지어졌던 모든 벽전(혹은 벽돌) 관련의 건축 유구와 문헌을 망라하여 벽전건축이 갖는 형태적, 의장적, 구조적, 생산적 특성 등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논문이다. 이 작업은 벽전과 관련된 이제까지의 어떠한 시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하고 방대한 분량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학문적으로 새롭게 밝혀진 부분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다양한 용례의 추적을 통하여 벽돌 혹은 전돌 등으로 불리던 기존의 구분을 대체하는 벽전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새롭게 주장하고 있고, 전통건축 속에서 벽전건축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새롭게 해석하여, 무덤과 탑 등 온전히 벽전으로 구성된 것뿐 아니라 건축의 일부 즉, 기단이나 벽 등에 벽전이 사용된 것까지로 벽전 건축의 범위를 확대하였고, 구조재로 사용되는 벽(甓)과 바닥 혹은 벽면의 수장으로 사용되는 전(甎)을 함께 보면서 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는 시각도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확대된 개념으로 인하여 한국건축사 속에서 벽전건축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였다는 점이 이 논문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된다.

이 논문은 연구자에 의하여 1998년 석사 학위논문으로 준비되어 제출된 것으로서, 한문으로 기록된 많은 문헌이 한글로 번역되고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중국과 북한 등의 자료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진 1990년대 말의 학계가 가졌던 풍부한 자원을 잘 활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연구는 해방 이전의 일본 학자들에 의한 기초적이고 전국적이지만 선별적인 연구, 해방 이후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한 지역적으로 심화되고 실증적이지만 폐쇄적인 연구를 이은 제3세대 연구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같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이 논문이 가지고 있는 내용의 방대함과 충실도는 석사 학위 청구논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으로 필자의 기억에는 이경회 교수의 석탑 논문, 작고한 건축가 홍순인의 마을 논문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다만 단점이라고 한다면, 매우 많은 자료의 정리, 그리고 상당한 자료의 새로운 발굴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벽전이라는 주제의 성격상 한국건축의 본령에 접근하는 힘 있는 이야기로 연결되는 데 부족함이 보인다는 점이다.

 

심사번호 02 <建築家 師承關係 獨創性 問題>

이 논문은 해롤드 블룸이라고 하는, 주로 낭만주의 시를 대상으로 선배 시인의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후배 시인의 작품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자세를 ‘영향 관계’ 혹은 ‘오독의 지도’라는 독특한 프로세스로 파악하는 문학비평의 이론을 차용하여,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김중업과 김수근의 작품 세계,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그 이후 세대가 위의 두 사람의 작품과 가지는 관계를 고찰한 것으로서, 다소 기계적인 적용에 따른 성급함이 보이지만 한국 현대건축 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로 보인다.

한국 현대건축에 대한 비평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으로서 각각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 주를 이루고 매우 최근에 들어서야 중요 작가들의 작품 전체에 대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비평의 방법론을 하나 덧보탠다는 것은 비평의 풍요로움을 더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단편의 문학작품에 적용하였던 비평 이론을 건축가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의미의 미끄러짐이다. 또한,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선정―유아주의―정체화’의 단계와 그에 따른 작품의 경향이라는 것이 과연 대조 비평이라는 특별한 방법론을 동원하여야만 생각해낼 수 있는 특별한 개념인지도 의문이다. 즉, 선배 혹은 스승과의 관계 속에서 제자(후배)는 처음 선배의 작품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차츰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단계를 밟는다는 것은 굳이 블룸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예측 가능한 일반적인 경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일반론이 시 비평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짧은 시구 속에서 그러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번에 건축에 적용한 것처럼 한 사람의 전 일생에 걸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해석에서는 지나치게 일반적인 구도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이다.

 

종합

이상과 같이 분야도 다르고 각각 장단점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두 응모작 가운데 어느 것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할 것인지의 판단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고려한 점은 심원건축학술상의 제정 취지가 건축 역사와 이론 분야의 학술 진흥을 위하여 단행본의 출판을 최종 성과물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우리나라의 건축 역사와 이론계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어떤 것이 좀 더 시급한 출판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물론, 이번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향후 2년간 계속해서 후보작의 자격을 유지한다는 점도 함께 고려하였다.

이런 면에서 <벽전>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목가구조 위주로 해석되어온 우리나라 전근대 건축의 역사 서술에서 언제나 부수적인 위치에 머물렀던 조적조의 전통을 부각하였다는 점이 한국건축사의 시각을 보완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또, 비록 최초 저술한 지 10년이 지난 논문이지만, 동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건축과의 비교적 시각을 강조하는 최근의 건축사 연구의 흐름 속에서 벽전건축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그 때와 다른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하였다.

오래 전 매우 힘들게 한 작업이 뒤늦게 발굴되는 행운을 받은 <벽전>에 큰 축하를 보내며, 단행본 출간을 계기로 심기일전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 본다.

 

[<와이드AR> 9호,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