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
나중에 흙을 만지며 지낼 요량으로 올해 첫 농사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거리에 밭이 있어서 주말에나 한 번씩 나가 밭일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작물을 심고 뿌렸는데, 고추가 잘 되고 고구마 잎이 무성하여 신이 났었습니다. “잎이 이리 무성하면 뿌리가 안 자라. 고구마는 거름 안 주고 척박한 땅에 하는 거여, 허허.” 옆 밭 할아버지 말씀입니다. 작물마다 필요한 게 모두 다른 모양입니다. 해서 고구마 줄기라도 많이 먹자고, 갈 때마다 한 짐씩 해 와서 무침, 볶음, 김치를 해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땅은 내 수고의 몇 십 배 보답을 하였습니다. 해 준 것도 별로 없는데 수확은 짭짤하여 미안하기까지 합니다. 밭 갈 때 거름 좀 뿌려주고, 갈 때마다 물 좀 주고 풀 좀 매 주는 게 다인데, 볼 때마다 쑥쑥 자라있는 것이 신비롭습니다. 땅의 힘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세상을 살아감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내고 보니, 세상을 위해 한 일도 별로 없는데 수많은 것을 거저 받고 얻은 것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받고, 사람들에게서 얻었습니다. 수없이 거저 받고 얻었습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왔다면, 누구든 할 이야기도 많고 나눌 것도 많을 것입니다. 그 일을 막 시작한 이들에게는 그 경험이 절실한 거름이 되어줄 터입니다. 밭에 비료가 뿌려져야 작물이 잘 자라나듯, 많은 것을 거저 준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거름이 되어줄 경험과 이야기가 뿌려지면 좋겠습니다. 자기를 뽐내려는 뜻이 아니라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거름이 되어 주려는 뜻에서의 드러냄과 내놓음은 모두가 즐겨 해야 할 일입니다.
글, 사진_임근배(간향클럽 대표고문, 그림건축 대표)
[<와이드AR> 47호, 2015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