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對岸)
박목월
가을 빗줄기에 비쳐오는 강(江) 건너 불빛.
—- 이 소슬(蕭瑟)한 경지(境地)의 대구(對句)를 마련하지 못한 채, 십오년(十五年). 반백(半白)의 연치(年齒)에 시정(市井)을 배회(徘徊)하며 의식(衣食)에 급급하다. 다만 강(江) 건너에서 멀리 어려오는 불빛을 대안(對岸)에서 흘러오는 한오리 응답(應答)이냥.
어둠 속에서 이마를 적시는 가을 나무.
출처: <청담> 1964
소슬한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득하나, 이룬 바 없이 나이를 먹었고 먹고사는 일에 급급한 삶을 살고 있다. 도달할 수 없는 강 건너 불빛이 있고 강의 이편에 가을나무가 있는 그런 강 풍경을 안고 흐르는 강물일 때, 그 인생 자체가 소슬한 경지가 아닐까? 꿈이 있는 사람에게 절실함을 공감케 하는 시다.
박목월의 시에 문학평론가 이남호(고려대 교수)가 풀이를 더했다.
시인이나 건축가나, 마음을 끄는 경지에 도달하려고 정진하고자 하나, 세상사는 일이 만만치가 않구나. 그래도,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늘 바라보고 머리에 이고 사는 삶이 꿈 자체가 아닐까?
시인의 깊은 마음에 위안을 얻고 희미해진 꿈에 다시 불을 지핀다.
글, 사진_임근배(간향클럽 대표고문, 그림건축 대표)
[<와이드AR> 42호, 2014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