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字 02]

일상

 

그림字 02_이미지

 

1997년 우리나라는 국가부도의 위기를 겪으며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였다. 발전과 성장 일로에서 나날이 번창해 가던 우리나라 경제에 일침이 가해진 역사상 잊히지 않을 큰 위기였다. 온 나라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3년 만에 구제금융을 전액 상환하고 IMF관리체제를 종료하였다.

그때 우리는 어느 수도원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설계가 마무리 되고 착공을 할 시점인데 공사를 잠시 보류한단다. 이유는 나라와 국민이 어려운데 모른 척하고 새 집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들의 사정상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지만 새 집의 착공은 연기되었다. IMF 사태에 들어서자 온 나라는 허리띠를 졸라매었다.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을 삶의 규칙으로 지향한다. 세상이 경제적으로 풍요롭든 말든 그들은 오로지 필요한 만큼만 쓰며 산다. 더 이상 졸라맬 허리띠 구멍이 남아있질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일상인 것이다. 나라 경제 사정이 어느 정도 회복의 단계에 들어서자 그들은 비로소 건축을 시작하였다.

지금도 전 세계 금융 위기 및 불황은 계속되고 있다. 노력으로 극복되는 정도가 아닌 것 같다. 모두가 이 불황이 빨리 끝나기를 학수고대한다. 호황은 아니더라도 일거리가 있고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안정된 경제 사회를 꿈꾸며 지금을 견디고 있다. 다만 그때를 기다리며 좋은 시절의 생활 수준과 습관은 바꾸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시절이 안온다면 어찌해야 할까? 늘 IMF체제 같이 사는 수도자들과 같이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상황에 생활을 맞추어 장기적 안정체제로 변환하여 일상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그러다 상황이 좋아지면 여유로워져 좋고, 더 지속된다하더라도 이미 일상이라 여기니 부담 없이 그 안에서 평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니.

 

글, 사진: 임근배(간향클럽 대표 고문, 그림건축 대표)

 

[<와이드AR> 40호, 2014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