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곽선아_4기]

 

 

우연히 시작하게 된 건축이 좋았고, 이십 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엉켜 있던 공간과 다른 공간을 거닐면서, 본래 좋아했던 글쓰기와 사진 찍기를 기억해냈다. 그것이 바로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에 지원하게 된 동기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은 오묘한 것이라 한다. A라는 사건이 B라는 상황을 만든다는 공식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A라는 사건이 B라는 상황으로 이어질지 C라는 상황으로 이어질지, 혹은 아무런 사건으로도 이어지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다만 시간의 흐름은 보편적인 성질인 듯하다.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을 수료한 지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가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남아 있는지를 되새겨 본다면, ‘반전’이라는 두 글자로 축약할 수 있다. 건축과 글쓰기,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는 특성은 ‘건축에 대한 글을 쓰는 이’로 연결되기에 충분했으나, 그가 ‘내가 좋아하는 일’로 연결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세상의 대부분이 보고, 듣는 것과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듯, 그도 그러했다.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의 신분으로 건축에 대한 글을 쓰는 것과 사진을 찍는 것은 즐거움이었지만, 학생 기자의 신분으로 건축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압박으로 다가왔다. 좋아하는 것들의 결합이 반드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과 아직 나에게는 압박을 ‘적당한 스트레스가 가져올 효율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에 대한 애착이 여전한 것은 그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꿈꾸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을 단단하게 엮어주는 ‘소통’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꿈꾸는 이가 참 많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현실이라는 가림막으로 자신의 꿈을 감춘 채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갈수록 그들은 함부로 그들의 가림막을 들춰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꿈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에게도 그들의 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저널리즘스쿨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가림막을 걷어내는 것을 돕는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1년에 한 번 겨우 얼굴을 마주할 지라도 함께 하는 소통의 공간은 다양한 꿈들의 교류로 이어진다. 현대적인 가치관이 만들어낸 합리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이라면, 이와 같은 교류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이곳은 더욱 소중하게 존재한다.

오늘 현재, 반(半)오십의 나이를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 지금의 나에게 그는 여전히 ‘반전’이라는 깨달음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흐를 것이며, 그가 앞으로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존재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단지 내가 살아온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살다 돌아온 시점에 저널리즘스쿨을 만났고, 삶에 대한 고민이 짙은 시기에 저널리즘스쿨과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곽선아, 2013, ‘아모르 화티(amor fati), 내 삶과의 연애’, 저널리즘스쿨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