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평]

심사위원: 김종헌
(배재대 교수, 건축학)

『한국 ‘근대부엌’의 수용과 전개』를 중심으로
최근 주거의 양상은 1인 가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한편 소위 4차 산업의 등장과 함께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른 자율주행의 자동차가 보편화가 될 때 주거 유형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부동산이라고 생각했던 주거가 자율주행의 자동차와 결합하면서 자동차와 주거가 결합하여 움직이는 주거 즉 동산으로 변화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부엌에 대한 문제는 가장 큰 숙제이자 과제로 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주거 공간의 변화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지만 부엌은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엌에 대한 변화는 남녀의 사회적 역할의 변화 등과 더불어 주거 변화의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의미뿐만 아니라 불의 원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도 가장 큰 변화를 지닌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젬퍼가 이야기 했듯이 불의 저장소로서 주택을 정의한다고 보면 불을 다루고 있는 부엌은 주거의 핵심이자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근대부엌’의 수용과 전개는 한국 사회에서 주거에 대한 의식과 생활 변화를 살펴봄에 있어서 시의 적절한 논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단순히 사회적 변화의 현상을 살펴보기보다는 우리나라 ‘근대기 부엌’의 양상이 수많은 변화과정을 거쳐 현대의 LDK형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최근의 몇몇 단지에서는 아침식사를 같이 공유하는 개념이 아이디어 차원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논문이 시사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논문의 가치는 아파트의 주거 평면의 변화뿐만 아니라 서구의 페미니즘의 주장을 비롯해서 ‘부엌’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과 함께 서양 주거의 부엌에 대한 변화과정을 함께 비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가 있습니다. 이는 한 국가나 한 지역의 주거 양상의 변화를 한 지역의 고립된 사회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인류사의 보편적인 사회적 흐름으로 살펴보는 데에 있어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의 주거 양상의 변화 즉 부엌의 변화 과정을 정확한 하나의 담론으로 성숙시키지 못하고 변화 과정에 대한 현상만을 파악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서구의 담론은 많은 자료들을 섭렵하여 매우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으나 우리의 주거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분석 정도에 그치고 있어서 하나의 담론으로 풀어낼 만한 이론적 정리가 부족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편 당선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김민아 선생의 『북한의 주택 소구역 계획에 관한 연구』는 소련의 마이크로디스트릭이라고 하는 사회주의적 도시 이론이 북한에 들어와서 어떻게 변용되었고 북한의 특수한 사회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가를 살펴보고 있는 매우 가능성 있는 연구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자료 자체의 취득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탓인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한 실증적인 자료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해 아쉬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금회 심원건축학술상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의 학문적 열정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심사위원: 박진호
(인하대학교 교수, 건축학)

추천작 1. 『한국 ‘근대부엌’의 수용과 전개』
이 논문은 기초자료의 수집과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시대 및 사회적 배경에 따른 생활방식,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 그리고 여성성 등이 반영된 담론에 근간한 비판적 해석을 통해 근대부엌으로의 수용과 전개과정을 고찰하고 있다. 이 점에서 저자는 기능적 혹은 유형학적 관점에서 부엌의 변천 과정을 논의하는 다른 논문들과 차별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논문은 먼저 가사노동과 가족 개념의 변화에 따른 여성의 역할, 그에 따른 서양 부엌의 진화 과정과 구성적 변화를 고찰하면서, 근대부엌이라는 개념의 수용 과정에 나타나는 동선의 합리화, 효율성 그리고 위생의 중요성을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는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의 산업화에 따른 부엌의 근대화와 합리화에 기반한 부엌의 형성과정 및 부속 공간의 변화, 한국적 생활문화를 반영한 공간개념으로의 발전 및 이후 아파트로의 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근대부엌의 진화 과정과 우리 주거로의 수용 과정에 대한 논의는 흥미롭게 읽었으나, 이 논문이 기존 연구의 담론적 헤게모니에 머물러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학위논문이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한 이론이나 방법론 구축, 분석이나 해석, 합리적 비판을 통한 연구자의 지식 성장의 발판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 연구에서는 기존 지식을 연구하고 답습하여 관점의 차이를 읽어내는 수준을 넘어서는 어떤 새로운 연구 내용이나 독창적인 연구성과가 조금 미흡하다는 판단이다. 나아가 후속 연구로의 확장 가능성이 어떨지에 대해 기대와 회의감이 교차하기도 한다.

추천작 2. 『북한의 주택 소구역 계획에 관한 연구』
이 논문의 주제는 구 소련의 마이크로디스트릭 주거계획을 북한의 실정에 맞추어 현지화한 주택 소구역 계획의 기원과 이해 및 사례 분석을 통한 “북한 주택 소구역 계획을 파악”하는데 있다. 논제나 연구의 가치 및 중요성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지 답사나 고증 작업을 통한 사례분석 등의 실질적 연구조사가 불가능한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논문을 읽다 보면 그 흐름이나 내용이 북한의 기관지나 출판물에 근거한 자료의 서술에 가깝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기초자료의 분석이나 해석, 적용의 문제점 및 변용 사례 분석 등 좀더 비판적이거나 이론적 관점에서의 분석이나 논의가 부족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보니, 연구물을 읽어가는 중 연구내용을 추론하고 추적하고 분석해 나가거나, 새로운 사실이나 해석을 강구해내는 데서 오는 연구의 긴장감이 부족해 보인다. 논문에 삽입된 도면과 도해에 대한 설명과 해석도 부족하여 논고와 함께 잘 읽혀지지 않는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현장조사가 불가능한 여건상, 구 소련의 마이크로디스트릭 주거계획 개념이 적용된 유사 사례의 현지 답사 및 조사, 당시 북한의 상황과 비슷한 정치 경제 하에 있던 해외 사례의 실증조사를 통한 실천적 변용이나 추론 및 해석이 부가한다거나,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의 심층적 분석 및 글과 그림이 상호 보완적 역할이 잘 이루어진다면, 보다 나은 연구결과물로의 발전 가능성, 나아가 향후 연구분야의 심화 및 확장 가능성도 많아 보인다.

심사위원: 함성호
(스튜디오 EON 대표, 건축비평)

추천작 1. 『한국 ‘근대부엌’의 수용과 전개』
서구든 한국이든 주거에서 부엌의 중요성이 소홀히 취급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일단 서구에서 ‘근대부엌’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그 논의는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며, 그것이 우리에게 수용되는 과정을 서술한 이 논문은, 부엌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환기시킨다. 부엌은 인류가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했고, 주거에서 가장 중심적인 공간을 차지했다. 선사시대 움집이나 동굴 주거에서도 불은 항상 그 중심에 있었고, 거기서 음식이 만들어졌다. 오히려 이러한 취사행위가 주거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은 주거의 형태가 보다 문화적으로 변형된 다음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것은 분명히 가부장 제도가 확립된 이후의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 논문에서는 이러한 부엌의 인류문화사적 접근보다는 서구의 근대부엌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다. 당연히 논문 저자의 의도는 오늘날의 부엌을 근대적 산물로 보고 접근하자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저자는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상황, 여성과 남성의 공동 작업장으로서의 부엌이 여성이 혼자 일하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근대적 산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근대는 혼잡을 두고 보지 못한다. 전문화를 바탕으로 분화와 분리를 꾀하는 데서 여성이 가사를 전담하는 현상이 근대에 생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 근대의 다양한 이념들이 부엌에 미친 영향을 자세히 거론한 다음 그것이 어떻게 한국에 수용되었는가를 면밀히 밝히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부엌에 대한 다양한 당대의 목소리까지 담고 있는 것은 이 논문의 장점이다. 서구의 합리화와 능률이 뜻밖에 가사노동의 젠더분리를 강조하고, 그것이 한국에 수용되면서 전통적인 관념과 결합해 편리와 합리라는 명목으로 부엌을 여성이 전담하는 공간으로 규정했다는 것은 앞으로 여성성의 관점에서 우리의 부엌을 다시 보게 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추천작 2. 『북한의 주택 소구역 계획에 관한 연구』
우리가 왜 북한의 주택 소구역 계획에 대해서 알아야 되느냐? 란, 의문이 든다면 다른 질문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왜, 베를린의 도시계획이나 파리의 도시계획을 알아야 하느냐? 는, 질문을 당연시 한다면, 앞의 물음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근대의 생활양식은 해방 전부터 우리의 전통적인 근간을 뒤흔들었고, 전쟁 이후 이념의 대립을 겪으며 남과 북은 확연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도시가 어떻게 우리의 전통적인 근간을 혁신하며 두 지역에서 나누게 되었는가는 지금 우리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될뿐더러 통일 이후의 한반도의 삶을 조망할 때도 필요하다. 이 논문은 1955년부터 1967년까지 계획된 북한의 주택 소구역들을 분석하면서 사회주의 양식의 합리성과 주민 복지,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을 자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북한이 주택 소구역 계획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모델로 삼았던 것이 흐루쇼프가 주장했던 마이크로디스트릭트였다. 흐루쇼프 시대에는 과거의 사회주의의 금욕적 실천에서 보다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모든 인민이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복지야 말로 사회주의 도시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 한 마디로 도시는 인민의 행복을 위한 인프라가 되어야 했다. 소위 ‘흐루쇼프식 근대’라고 불렸던 이 시기의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이 마이크로디스트릭트였고, 여기에는 거주자의 모든 수요를 충족시키는 하나의 자족적인 단위를 만들었다. 북한은 이 모델을 가지고 평양, 함흥 등의 지역을 계획해 나갔다. 이 논문은 그러한 흐루쇼프식의 마이크로디스트릭트가 북한에 수용되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 나갔는지를 한정된 자료지만 그 추이를 성실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당시 북한의 경제상황과 소규모 주택계획을 연결하는 지점이 누락된 것은 크게 아쉽다. 북한은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진행된 3개년 계획으로 연평균 41.7퍼센트라는 엄청난 성장률을 기록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소련 경제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공업을 육성하며 남은 자원들을 소련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했다. 여기서 마이크로디스트릭트란 행복 인프라로서의 도시계획이 수립된다. 그러나 북한은 모든 자원을 중공업에 투자했다. 한 마디로 민중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여유가 없었다. 이 논문에서 이러한 북한의 경제상황과 주택 소구역 계획이 어떤 연결망 위에 있는지 살피는 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결론
논의 끝에 『한국 ‘근대부엌’의 수용과 전개』를 당선작으로 꼽았다. 앞선 연구들을 꼼꼼히 소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부엌에 국한될 이유는 없지만) 페미니즘 건축의 논의를 열어두고 있다는 점은 이 논문의 한계를 저자 스스로도 깊이 인식하고, 그 한계를 연구범위로 정확히 선을 긋고 있어 믿음직했다. 공부는 한순간에 터득하는 돈오(頓悟)와 같은 것이 아니라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이상한 물리법칙과 같다. 당선자의 끊임없는 정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