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당선작(단평론 1)]

비평의 언어: ‘비평의 죽음’ 이후의 글쓰기

글: 박정현

 

그러나 나는 (문학비평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약간 다르게 접근하고 싶다.

또 문학비평은 징후학(symptomatology)의 이론적 종류라고, 혹은

그래야 한다는 입장을 옹호하고 싶다.1

 

역사, 예술, 주체, 민족, 소설, 이론, 비평 등의 부고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종말과 죽음을 알리는 목소리에는 반복되는 논리가 있다. 하나는 자기 복귀 또는 완성 이후에 맞이하는 고요한 죽음이다. 역할을 다한 예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되묻는 것뿐이며,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도래로 완성된 역사를 기다리는 것은 말 그대로 역사 이후의 시대이다. 모든 것들은 담론이 빚어낸 구성적 결과나 언어의 효과에 불과하다는 언어적 전회 이후에 찾아온 냉소적인 종말이 또 다른 하나이다. 백사장에 그려진 얼굴일 뿐인 인간을 지워버린 파도에 떠밀려 온 것은 냉소와 회의주의다.

이는 후기 근대,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그밖의 무엇으로 부르든지 간에 지금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징후인가. 아니면 위기에 처한 담론이 구사하는 과장의 수사법에 불과한가. 이 물음에 답하는 일이야말로 비평적 글쓰기가 무엇보다 먼저 떠맡아야 할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문제는 부검의의 역할을 해야 할 역사, 이론, 비평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는 점이다.2 이때 비평과 역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과제, 어쩌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 되묻는 것, 칸트적 의미의 비판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건축이 처한 한계 상황, 나아가 건축의 죽음이라는 테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개진한 이는 이탈리아의 건축사가인 타푸리이다. 현대건축을 규방 속의 건축으로 규정하는 타푸리의 테제에는 종말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계급에 기반한 정치·경제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계급 건축(해방된 사회를 위한 건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가능한 것은 건축에 계급 비평을 도입하는 것이다”, “비평 따위는 없다. 오직 역사만이 있을 뿐이다.”3 이와 같은 악명 높은 타푸리의 테제에서 건축과 비평에 대한 사망 선고를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부고를 확정하고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 굳이 타푸리의 미로 속으로 다시 들어갈 이유는 없다. 또 타푸리를 통해 (기관으로서의) 건축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건축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도 이제 더 이상(한때나마 가능했다면) 유효한 기획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비평이 처한 뇌사 상태는 타푸리의 언명조차 불필요해 보인다.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대해 메타적인 위치를 점해야 하는 비평이 천개의 고원이 펼쳐진 곳에서는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를 설치할 수 없는 법이다. 오히려 비평할 수 없음이 비평의 조건이 되어버린 지금, 그래서 비평(criticism)이 다시 눈길을 자신에게로(critical) 돌릴 때에만 우리는 타푸리와 의미 있는 대면을 할 수 있다. 비평의 언어에 대해서, 비평의 자기 비판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이 역시 타푸리이기 때문이다.

 

언어로의 회귀와 건축의 죽음

타푸리는 제임스 스털링의 새로운 형식주의, 알도 로시의 침묵의 언어, 피터 아이젠만의 엄격한 구성주의와 같은 당대의 건축이 기호의 언어유희에 탐닉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건축을 생산체계의 연쇄에서 떼어내어 하나의 대상으로 취급하며, 그 대상의 자기언급에만 몰두하는 행위를 일컬어 “규방 속에” 있다고 말한다.4 규방 속에 있는 것은 건축이면서 동시에 비평이기도 하다. 이때 비평은 규방 속의 건축에 대한 비판이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증식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언어놀이에 빠진 건축을 놓고 언어적 측면만을 분석하는 비평은 건축을 단지 묘사하는 것에 불과하며, 건축이 쳐놓은 마법의 원환을 결코 깨뜨리지 못한다. 당연한 귀결로써 “비평은 바로 그 텍스트를 생산한 과정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며, 결국 생산성의 법칙을 되풀이할 뿐이다.”5

대상이 생산되는 것과 동일한 논리와 방식을 취하는 언어는 온전한 비평일 수 없다는 입장은 아도르노나 제임슨 같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공유하는 지점이자 글쓰기 전략이다.6 여기서 생산체계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비평의 언어’가 취해야 하는 태도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타푸리가 겨누고 있는 대상, 즉 ‘언어의 비평’이다. 왜 타푸리는 모더니즘 이후의 건축이 취한 언어로의 복귀를 실패의 근원이라고 진단할까? 내적인 자율성 안에 머물러 있으려는 형식주의 미학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사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이 문제가 건축이라는 기율 혹은 전문분야(discipline)에 내재해 있는 속성 때문인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애매모호한 원인 때문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타푸리 스스로 인정한다. 이 지점에서 타푸리는 푸코의 담론 이론을 빌어온다. 푸코는 일상에서 말하자 마자 사라지는 담론과 되풀이 되고 변형되면서 ‘말해진 채로’ 남아 있는 담론을 구분한다.7 이 두 가지 담론 사이의 차이를 소거하려고 애써온 것이 바로 근대 운동이라고 타푸리는 푸코를 독해하는데, 이는 푸코의 의도와는 다소 다른 곳을 향한다. 문화적 체계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텍스트들, 즉 권력을 행사하는 사법적·종교적인 텍스트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과학 텍스트도 담론을 분류하고 질서를 부여하고 분배하는 내적 규칙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푸코의 설명이다. 그중 한 가지가 주석(commentary)이라는 장치다. 주석은 하나의 담론을 통제하고 제한하는 내적인 규칙으로 어떤 담론이 사라지지 않도록 만든다. 이에 따르면 담론 내부에서 텍스트와 주석의 관계가 역전될 수는 있지만, 이 관계 자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타푸리는 두 담론 사이의 차이를 없애려는 시도가 가져온 최종적인 결과를 푸코 역시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다시 한번 푸코를 인용한다.

 

이 차등화를 극단적으로 제거하는 일은 유토피아냐 고통이냐의 유희일 따름이다. 보르헤스가 말한 대로 다시 나타남에 불과한 주석의 유희, 또한 존재하지 않는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비평의 유희.8

 

‘존재하지 않는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비평’ 작업이 행하는 유희가 바로 타푸리가 말하는 언어의 비평이다. 타푸리는 앞서 언급한 스털링과 칸뿐만 아니라,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 리카르도 보필 등도 마찬가지 입장이라고 말한 뒤, “발화된 담론들과 말해진 담론들 사이의 간극을 없애려는 시도는 언어의 차원에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단언한다.9 여기서 우리는 아방가르드의 잔해를 사용하는 네오 아방가르드의 작업을 평가하는 타푸리의 근본적인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유토피아의 단편들을 깃발처럼 휘날리는 네오 아방가르드의 작업은 규방 속에서 벌어지는 자위행위일 뿐이다. 그렇다면 건축의 종말은 순수성의 기사들과 함께 도래한 것인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예정된 운명의 수순인가? 예고된 죽음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그 최초의 전조를 찾을 수 있는가? 역시 물음에 대한 답은 타푸리가 설정한 근대건축, 넓게는 모더니즘을 확인하는 길이자 타푸리의 마르크스주의가 어떤 마르크스주의인지 묻는 하나의 방편이다.

 

하나의 모더니즘과 반복되는 운명

알려진 대로 타푸리는 “모더니즘의 전체 주기를 단일한 발전과정으로 규정”하고 그 어떤 시대 구분도 부인한다.10 모더니즘은 르네상스부터 (적어도)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역사 단계란 설명이다. 이는 단순한 시대 구분의 문제가 아니다. 마르크시즘의 우산 아래에 있는 이론이 단일한 모더니즘을 설정한다는 말은 단일한 자본주의를 설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11 물론 소박한 반영론만이 마르크스주의의 전부인 것도, 자본주의의 역사를 반드시 변화를 기조로 기술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근대 건축 전체를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타푸리의 건축론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역사를 규정하는 방식은 결코 하찮은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비단 타푸리만이 르네상스 이후의 시기를 하나의 덩어리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지속’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아날학파의 브로델은 15세기 이후 하나의 세계-경제를 주장하며 상업자본주의-산업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라는 단선적인 진화를 거부한다.12 단일한 자본주의-근대건축의 실패한 여러 국면-건축가 개인의 위상이라는 타푸리의 구도는 구조-국면-사건의 3가지 층위로 역사를 기술하는 브로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13 그렇지만 타푸리에게 근대건축을 장기지속의 역사로 서술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본의 종류와 계급의 상이함과 건축의 형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사태를 통해 변화하지 않는 구조를 설명하는 데에 몰두한다.

무엇이 반복되는가?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와 건축의 관계이다. 반역사주의의 기치를 내건 아방가르드의 실패와 이어진 역사주의로의 회귀는 우연한 귀결이 아니라 예정된 필연이자 데자뷔이다. 타푸리는 이 기원을 찾아 1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현실을 세우기 위해 독립적인 담론을 구체화하는 인용과 연상의 환기시키는 힘을 이용하는 이들[브루넬레스키]과, 현실의 실망을 감추기 위해 인용의 정확한 의미를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알베르티, 상갈로, 브라만테], 당대의 위선을 영웅적인 과거와 대비하기 위해 과거의 본질적인 구조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려고 하는 이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역사주의의 상아탑 안에 갇힐 위험에 처한 예술적 혁명을 옹호하는 이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14

 

타푸리에게 브루넬레스키는 최초의 아방가르드이다. 보통의 이해와 달리 브루넬레스키의 작업은 고대의 부활이 아니다. 오히려 중세도시에 자율적이고 절대적인 건축적 오브제를 삽입해 도시의 의미를 바꿨다는 점에서, 즉 역사의 단층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탈역사적이다.15 반면 알베르티나 상갈로는 중세의 흔적을 재삽입하고, 역사를 소비함으로써 순수한 고전주의의 손을 더럽혔다는 점에서 역사주의이다.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 사이의 관계는 향후 500년 동안 지속되는 건축적 긴장의 원형이다.16 반역사적/구성적 엄격주의 대(對) 역사주의/절충주의로 도식화할 수 있는 이 관계는 로지에와 피라네시로,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로 바뀌어 역사 속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 도식은 아날의 구조, 푸코의 에피스테메, 니체의 영원회귀와도 다르다. 여기에서 건축과 자본주의의 발달 사이에 설정되어야 할 매개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은 타푸리의 마르크시즘이 지닌 큰 이론적 결함이다. 오늘의 현실을 가리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이용하는 것, 즉 건축의 역사를 이데올로기 장치로 원용하는 것을 타푸리는 문제 삼는다.17 과거를 바라보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를 향하는 시선은 언제나 이데올로그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역사와 계획이 만나는 지점”인 실무적(operative) 비평뿐만 아니라 기획(project)으로서의 근대 건축 전체가 부정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논리적 귀결이다. 실행가능성(operativity)을 피할 길 없는 건축은 비판성(criticality)과 양립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판성을 추구하는 일은 곧 건축을 버리고 역사를 선택하는 길이었다. 타푸리는 『건축과 유토피아』의 결론에서 근대건축의 실패를 정식화한다. “계획이 유토피아의 층위에서 내려와 실제로 작동하는(operative) 메커니즘이 되는 순간, 계획 이데올로기로서의 건축은 계획의 현실에 의해 일소된다.”18

미래를 향해 무언가를 투사하는 행위(progetto)와 유토피아(utopia)의 만남은 언제나 파국으로 치달을 뿐이다. 자유주의자들처럼 유토피아를 곧장 나치즘과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와 연결시키지는 않지만 타푸리가 유토피아에 할애한 자리는 비판성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다. 비판의 가능성을 잃지 않으려는 역사가의 시선은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지나간 것에만 고정되어야 한다. 이로써 건축과 비평, 유토피아는 살해되었고 역사만이 살아남았다. 타푸리에게 남은 것은 역사 속에서 비판을 되살려내는 일이다.

 

다시 유토피아를 묻다

우리는 여기서 타푸리에게 되물어야 한다. 유토피아와 비판은 서로 양립 불가능한가?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 없이 좌파적 비판은 과연 지탱될 수 있는가? 역사는 이데올로기의 오염에서 자유로운 장소인가? 유토피아와 함께 비판의 가능성도 죽어버린 것은 아닌가?

 

유토피아란 다소 부정적이라는 생각, 우리가 그것을 상상할 수 없을 때 가장 진정한 유토피아라는 생각이다. 유토피아의 기능은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미래를 상상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음―역사성도 미래의 가능성도 없이 비유토피아적인 현재에 수감된 처지―을 제시할 때, 그래서 우리를 덫에 걸고 감금시킨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구속을 폭로할 때에 작동하는 것이다.19

 

우리는 여전히 규방 안에 있다. 타푸리의 규방을 단지 언어 비평에 몰두하고 있는 비평과 건축이 처한 곤란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건축 이데올로기 일반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를 둘러싼 규방은 오히려 더 육중하며 빈틈없이 단단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규방은 라캉적인 의미의 실재가 아닐까? 비평은 규방의 벽에 금을 낼 수 없어서 무기력한 것, 포기해야 할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규방 때문에 비평은 가능하고 존재해야 한다. 즉 비평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자체가 다름 아닌 규방의 존재이다. 비평은 규방을 드러내는 일, 그래서 우리가 규방 안에 있음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규방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주석]

1 Fredric Jameson, “Symptoms of Theory or Symptoms for Theory?,” Critical Inquiry (Winter, 2004), p. 407.
2 Robert Somol & Sarah Whiting, “Notes around the Doppler Effect and other Moods of Modernism,” Perspecta 33: Mining Autonomy (2002), pp. 72-77; George Baird, “Criticality and Its Discontents,” Harvard Design Magazine 21 (Fall 2004/Winter, 2005), pp.16-21; Reinhold Martin, “Critical What?: Toward a Utopian Realism,” Harvard Design Magazine 22 (Spring/Summer, 2005), pp. 104-9. 그리고 같은 저자의 “Moment of Truth,” Log 7 (Winter/Spring, 2006) pp. 15-20.
3 Manfredo Tafuri, Theories and History of Architecture (New York: Harper & Row, 1980), 이탈리아판 2판 서문; “There is no criticism, only history,” Casabella 619-620 (Jan., 1995), p. 97.
4 Manfredo Tafuri, “L’architecture dans le Boudoir,” in Sphere and Labyrinth (Cambridge MA: MIT Press. 1987), pp. 282-283.
5 같은 책, p. 272.
6 따라서 아도르노와 제임슨의 글은 결코 쉽게 읽혀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Adam Roberts, Fredric Jameson (London: Routledge, 2000), p. 7.
7 Michel Foucault, “The Discourse on Language” in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and The Discourse on Language (New York: Pantheon, 1972), p. 220.
8 같은 곳.
9 Tafuri, 앞의 책, p. 287.
10 K. Michael Hays, Architecture Theory since 1968 (edited by K. Michael Hays, Cambridge MA: MIT Press, 2000) p.2.
11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론은 결국 이전과는 다른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을 설정하는 것 아닌가?
12 마르크 브로델, “역사학과 사회과학: 장기지속”, 『역사학 논고』 (민음사, 1990), p.82
13 Jean -Louis Cohen, “Ceci n’est pas une historie,” Casabella 619-620 (Jan. 1995), p. 53. 코헨은 타푸리가 ‘장기지속’에 얽매이지 않고서 사태(state)에서 구조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타푸리의 글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또 3세대 아날 학파의 미시사가 타푸리에 미친 영향은 Carla Keyvanian, “Manfredo Tafuri: From the Critique of Ideology to Microhistories,” Design Issues (Spring 2000), pp. 3-15.
14 Manfredo Tafuri, Theories and History of Architecture, p. 15. 강조는 타푸리 본인.
15 같은 곳.
16 같은 책, pp. 30-31.
17 타푸리는 자신이 건축을 버리고 역사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1964년 로마에서 있었던 ‘미켈란젤로 건축’전시회(브루노 제비와 파올로 포르토게지가 전시기획을 맡은)였다고 고백한다. Andrew Leach, “Choosing history: Tafuri, criticality and the limits of architecture,” Journal of Architecture (vol.10 no.3, 2005), p. 237.
18 Manfredo Tafuri, Architecture and Utopia (Cambridge MA: MIT Press. 1976), p. 135.
19 Fredric Jameson, “The Politics of Utopia,” New Left Review 25 (Jan.-Feb. 2004), p. 35.

 

[<와이드AR> 31호, 제3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특집]